2019년 당시 경기도 고양시 한 고교 2학년생이던 A양은 선생님을 찾아가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말씀드렸다. “애들이 저를 멀리하는 것 같고 학교 생활이 너무 힘들어요···.” 초등학교 때 집단 따돌림을 당했던 A양은 학교에 정(情)을 못 붙이고 소셜미디어에서 만난 외부 사람들과 친하게 지냈다. 그러나 사소한 다툼이 발단이 되어 그들과도 틀어지자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기도 했다. 정신적 불안이 심해지자 자퇴를 결심한 것이다.

고개를 숙인 A양에게 선생님은 “조금만 더 생각해보고 (자퇴할지 말지) 결정하자”며 달랬다. 그리고 고양시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를 소개해줬다. 여기서 반전이 일어났다. 2주 동안 4차례 심층 상담을 받은 A양은 안정을 되찾았고 학교로 돌아갔다. 지난해 2월 무사히 고교 졸업장을 받았다.

매년 전국 초·중·고에서 3만~5만명이 학교를 그만둔다. 전체 학생의 약 1%에 달한다. 실제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의사를 표현하는 학생들은 이보다 훨씬 많다. 이들이 섣불리 학교를 그만두는 걸 막기 위해 학교나 교육청, 또는 여성가족부의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 등에서 상담을 해준다. ‘학업중단 숙려제’라 부르는 프로그램이다. 2011년 경기도에서 시작, 2013년 전국으로 확대됐다. 지난해만 해도 전국에서 숙려제에 참여한 학생 2만5414명 중 79.6%가 마음을 돌려 학교로 돌아갔다.

그중에서도 가장 성과가 두드러진 곳은 경기도다. 경기 지역에서 숙려제를 이용한 1만6096명 학생 중 1만4501명(90.1%)이 계속 학교를 다니기로 했다. 전국 시·도 중 숙려제 이후 학업지속률이 2017년 이후 계속 1위다. 지난해 2위 경북 74.6%와 차이가 많이 난다.

경기도 성공 비결은 먼저 찾아가는 상담 구조다. 경기도에선 학생이 자퇴서를 내지 않더라도 조퇴나 결석이 잦아 학업 중단 위기에 처해 있다고 판단되면 적극적으로 상담을 권유한다. 경기도의 숙려제 참여 학생이 전체 참여 학생의 63%를 차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경기도에선 상담을 학교나 청소년시설 중 한 곳에서만 전담하는 게 아니라, 기관끼리 긴밀하게 협조해 종합적으로 지원한다. 앞서 숙려제를 통해 자퇴 위기를 넘겼던 A양도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 상담 과정에서, 다른 학생들이 자기를 싫어하고 뒷담화를 하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학교 교사는 면담 조사를 통해 급우들이 A양이 내성적이라 다가가기 어려웠을 뿐 싫어하거나 수군대지 않았다는 사실을 찾아냈다. 센터 상담사는 이를 토대로 A양이 과거 따돌림 기억과 친구 관계에 실패했던 경험 때문에 불안이 심해졌다고 판단하고, 그런 트라우마를 풀어주는 데 집중했다. 고양시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 한완민 차장은 “학생 사정을 잘 아는 학교 선생님과 선생님에겐 터놓기 어려운 점을 들어줄 수 있는 전문 상담사가 정보를 공유하면서 학생 위기 원인을 종합적으로 파악한다”고 말했다.

이런 상담 기간이 끝난 후 마무리에도 신경을 쓴다. 경기도교육청은 2주 동안 상담이 끝나고 시간이 더 필요한 학생에게 최대 5주간 ‘매일 프로그램’을 듣도록 한다. 학교에 나가는 대신 매일 심리 치료나 멘토링, 진로 탐색 등 필요한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다.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나 청소년상담복지센터에서 많이 하는데, 올해부터는 학교 교사 중 1명이 꼭 같이 참여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A양 역시 학교로 돌아간 뒤에도 청소년상담복지센터와 교내 상담을 꾸준히 받고 애니메이션 학원에 등록해 진로 상담도 병행, 성공적인 재기를 이뤄냈다.

현장 교사들은 학교 폭력이나 가정 문제 등 여러 이유로 학업 중단 위기에 처한 학생을 학교 안에서 온전히 지원하기엔 한계가 있다고 토로한다. 청소년 상담사나 지도사 등 외부 전문 인력 도움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다만 학교는 교육부 소관이고 청소년시설은 여가부가 운영하다 보니 생각만큼 긴밀하게 연결되지 못한 게 문제였다. 경기도는 이런 부분에서 남달랐던 셈이다.

여가부는 이달 학교와 청소년시설 간 협력을 확대하는 내용의 ‘학교 안팎 청소년 지원 강화 대책’을 발표했다. 경기도처럼 전방위 상담 구조를 청소년 복지·활동 분야로 넓혀 전국적으로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27일 우선 충남교육청과 협력 체계를 만드는 업무 협약을 맺었다. 청소년상담복지센터를 최대한 활용해 학교 내 위기 청소년을 지원하고, 국악이나 테니스·골프 등 학교에서 운영하기 부담스러운 특정 예체능 종목도 수련원 프로그램을 들여와 접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