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입학 연령 하향’에 이어 박순애 교육부 장관이 발표한 ‘외고(외국어고등학교) 폐지’ 방침을 둘러싸고 갈등이 커지고 있다. 전국외국어고학부모연합회는 5일 오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교육부의 외고 폐지 방침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반대 운동에 나설 예정이다. 학부모 150여명이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국민동의청원 사이트에는 “세계가 지켜보는 무대에 서 있는 스스로를 꿈꾸며 공부하는 우리를 보호해달라”는 외고 재학생 청원이 올라와 4일까지 1만1225명이 동의했다. 앞서 지난 1일에는 전국외고교장협의회가 “백년지대계인 교육 정책을 토론도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했다”며 철회를 요구한 바 있다. 외고 교장단과 학부모는 교육부 항의 방문과 법적 조치를 예고한 상태다. 전국에 있는 외고는 30개로 1만6000여명이 다니고 있다.

지난 2일 오전 서울 한 외국어고등학교 정문. 교육부가 "외국어 전문 인재 양성을 위한 외고는 폐지 또는 외국어 교과 특성화 학교 등으로 전환을 검토하겠다"고 전격 발표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뉴시스]

박 장관의 ‘외고 폐지’ 방침에 대해선 교육계에서도 의아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문재인 정부는 제대로 된 평가나 정책연구 없이 ‘고교 서열화와 경쟁을 부추긴다’는 이유로 자사고와 외고·국제고를 폐지하기로 하고, 이들 학교 법적 설립 근거인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조항을 없애 2025년에 일반고로 전환하도록 하면서 파문을 불렀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다양한 고교체제 구축’을 국정과제로 내걸었기 때문에 세 학교 모두 살아날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그런데 박순애 장관이 지난 29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이 가운데 ‘외고’에 대해서만 폐지 방침을 밝히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애초 교육부 업무 보고 자료에는 “학교 교육의 다양성과 학생의 교육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 자사고 제도 존치를 포함한 고교 체제 개편 세부 방안을 연말까지 마련하겠다”고 되어 있을 뿐, 외고를 폐지한다는 내용은 없었다. 그런데 박 장관은 업무보고 사전 브리핑에서 갑자기 “외고는 폐지하거나 (일반고로)전환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런 박 장관 발표에 교육부도 당혹스러운 분위기다. 교육부는 현재 외고를 포함해 과학고, 국제고 등 전체 특목고(특수목적고등학교)를 대상으로 정책연구를 막 시작한 상황이다. 이 학교들이 미래 사회 수요에 맞는 인재를 길러낼 수 있는지 따져보고 폐지·개편 여부 등을 정하고 연말에 발표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박 장관이 구체적 설명 없이 외고 폐지 방침을 밝히자 당장 외고와 그 재학생 학부모들은 “이유가 뭐냐”고 반발하고 있다. 교육부는 “외고는 미래 사회 수요에 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면서 “국제 사회에 외국어 특수 인재는 의미가 없다고 보고 있다”고 설명할 뿐 설득력 있는 근거는 대지 못하고 있다.

서울 한 외고 학부모 김모(49)씨는 “박 장관이 말하는 미래 사회 인재가 뭔지, 외고가 그런 인재를 길러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며 “그런 설명도 없이 덜컥 폐지하겠다고 하면 누가 납득하느냐”고 말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어학인재 양성’이라는 외고 설립 취지가 미래 사회 수요에 안맞다는 지적은 과거에도 있었고 교육부도 그런 점은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긴 했지만, 브리핑 때 언급한 외고 폐지 방침은 확정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른 교육부 관계자는 “(이유는 모르겠지만)외고에 대한 장관 생각이 뚜렷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경회 명지대 석좌교수는 “‘외고 폐지’는 학교 다양화와 학생의 자유로운 선택을 보장하겠다는 현 정부 국정과제와도 안맞을 뿐 아니라, 자사고는 유지하고 외고는 폐지하는 근거나 이유도 뚜렷하지 않다”면서 “특정 학교를 없애는 문제는 수많은 학생, 학부모에게 영향을 주는 정책인데, 충분히 검토하지 않고 일관성 없이 추진하면 학교 현장에 혼란을 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