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헌 광운대 총장은 본지 인터뷰에서“전자공학이 강점인 전통을 살려 ICT-인문 융합 특성화 대학을 만들겠다”고 했다. /김지호 기자

“대학 위기는 서울 지역도 예외가 아닙니다. 학령인구 감소와 재정난 속에서 경쟁력을 높이려면 각 대학이 가진 강점을 살리는 ‘마스터 플랜’이 필요한 때죠.”

김종헌(61) 광운대 총장은 최근 본지 인터뷰에서 “14년간 이어진 등록금 동결과 인구 구조 변화로 대학을 둘러싼 대내외적 여건이 악화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학령인구 급감으로 국내 대학의 신입생 미충원 규모는 작년 4만여 명에서 2024년 10만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김 총장은 “외부 환경은 대학 재정을 어렵게 만드는데, 대학은 빠르게 변하는 산업 현장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며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를 양성하려면 각 대학이 잘하는 것에 더 집중하는 특성화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광운대는 국내 최초로 전자공학·무선통신 학문을 도입한 곳이다. 설립자인 고(故) 조광운 박사가 1934년 기술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만든 ‘조선무선강습소’가 광운대의 모태다. 삼성전자 스마트폰 사업을 이끈 신종균 삼성전자 고문과 국내 여성 최초로 암호학을 전공한 이영 신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등이 광운대 출신이다. 지금도 전자정보공과대학이 별도 단과대로 운영되고 있으며, 작년 기준 공학 계열 정원이 전체의 55%로 수도권 대학 평균(29%)을 크게 웃돈다.

하지만 ‘전자 계열 강자’라는 과거 명성만으로는 대학의 중·장기적인 생존과 발전을 이어가기 어렵다는 게 김 총장의 판단이다. 그는 “한국이 전자산업의 불모지였던 시절 광운대 졸업생들이 산업 발전을 이끌었던 것처럼, 이제는 우리 경제의 미래 경쟁력이 걸린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할 ICT(정보통신기술) 융합 인재를 키워내는 특성화 대학으로 거듭나겠다”고 말했다.

광운대는 미래 사회 수요를 교육과정에 반영하기 위해 기존 하드웨어 기반의 공학 교육에서 인문·사회 분야의 아이디어와 콘텐츠를 더한 소프트웨어 융합 교육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5년 전부터 ‘C프로그래밍’ ‘컴퓨팅 사고’ 등 소프트웨어 소양 수업을 공대생뿐 아니라 모든 신입생이 듣도록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 총장은 “창의·융합 교육을 위해선 대학 강의도 기존 학제의 틀 안에 갇혀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런 신조를 반영한 것이 학년·학기·학과의 칸막이를 모두 허문 ‘다(多)학년 다학기 프로젝트(KW-VIP·Vertically Integrated Project)’다. 교수의 장기 연구 과제에 2~4학년 학생이 팀을 이뤄 참여하는 수업으로, 졸업할 때까지 최대 6번 수강할 수 있다. 하나의 강의가 한 학기 안에 끝나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깬 것이다. 현재는 ‘친환경 고용량 이차전지용 신소재 연구(2020~2028년)’와 ‘친환경 플라즈마(초고온에서 전자와 원자핵이 분리된 상태) 의과학 시스템 개발 연구(2020~2024년)’가 이 수업을 통해 진행되고 있다.

이 밖에도 광운대는 창의·융합 역량을 기르기 위한 혁신 수업 모델을 속속 확대하고 있다. 교수가 미리 정해놓은 커리큘럼이 아니라 학생이 스스로 프로젝트를 설계해 수행하는 ‘참빛설계학기’와 각기 다른 전공 수업 두 개를 한 학기에 들으면서 하나의 성과물을 만들어내는 ‘프로젝트형 공동강의’ 등이다. 광운대는 앞으로 공대 중심으로 이뤄졌던 실습이나 캡스톤 디자인(논문 대신 작품·프로젝트를 제출하는 형태) 교과를 인문·사회 계열로도 대폭 늘릴 계획이다.

김 총장은 각 대학이 고유의 강점을 키우려면 정부의 대학 평가도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획일화된 지표로는 대학마다 다른 특색을 평가하고 지원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은 재정 집행도 제한이 큰데, 앞으로는 대학이 스스로 잘할 수 있는 분야와 유망 학문에 집중 투자할 수 있도록 믿고 맡겨줘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