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명가라면 ‘자기 세계 안에 갇힌 괴짜’ 같은 이미지를 떠올리잖아요. 그런데 진정한 발명은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깊이 공감하는 능력에서 출발해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당부합니다. ‘내 어려움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마치 나의 어려움처럼 생각하라’고요. 그러면 좋은 발명을 할 수 있다고요.”

지난 10일 서울 보성고등학교 정호근(가운데) 교사와 과학 발명 동아리‘사이노베이터(Scinovator)’학생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발명가이기도 한 정 교사는 지난 20여 년간 과학 발명 동아리를 이끌며 학생들과 함께 만든 발명품으로 전국 발명 대회를 수십 차례 휩쓸었다. /이태경 기자

서울 보성고에서 지난 20여 년간 과학발명동아리 ‘사이노베이터(Scinovator)’를 이끌며 다수의 발명품을 개발한 ‘발명가’이자 ‘과학 선생님’인 정호근(50) 교사가 ‘올해의 스승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정 교사는 수상 소감으로 “앞으로 더 많은 아이들에게 더 좋은 영향력을 주라는 뜻으로 알고 열심히 가르치겠다”고 했다.

1999년 보성고에서 처음 교편을 잡은 정 교사는 대학 시절 유망한 ‘발명가’였다. 대학 졸업반인 1998년 대한민국 학생발명전시회에 참여해 특허청장상을 받았다. 교사가 된 뒤에도 ‘교원발명품경진대회’에 나가 네 차례 수상했다. 교실을 자유롭게 나눌 수 있는 가벽, 조명이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장식장 등 주로 학교생활의 불편함을 없애주는 발명품이다. “교원발명품대회에서 상을 받자 당시 교감선생님이 그러시더라고요. ‘혼자 하지 말고, 아이들과 함께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당장 발명반을 만들었죠.”

보성고 발명반 이름인 ‘사이노베이터’는 과학을 뜻하는 ‘사이언스’와 혁신가를 뜻하는 ‘이노베이터’를 결합한 것이다. ‘과학으로 세상을 혁신하는 사람’이 되란 뜻에서 이렇게 붙였다. 정 교사와 학생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만든 수많은 발명품은 전국 발명대회를 수십 차례 휩쓸었다. 많은 제자가 전국 단위 발명대회에서 대통령상 등의 우수한 실적을 냈다. 정 교사 본인도 5건 지식재산권을 갖고 있고, 학생들도 지금까지 50여 건의 지식재산권을 획득했다.

정 교사가 발명반을 20년 넘게 이끌 수 있었던 건 다름 아닌 ‘발명이 가진 소통의 힘’ 덕분이었다고 한다. 정 교사는 “사실 남학생들은 웬만해서 본인 개인적인 얘기나 생각을 얘기하지 않는다”며 “하지만 발명을 하면서 아이들이 자기 평소 생각이나 마음속 불편하지만 깊은 얘기들을 조금씩 꺼내더라”고 했다.

발명가이자 과학교사로서 정 교사가 바라는 건 뭘까. 그는 “아이들 장래희망으로 과학자가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10여 년 전 미국에서 열린 한 전시회 겸 공연에 갔을 때였어요. 사회자가 마이크를 들고 ‘여기 계신 분 가운데 공학자나 과학자 계십니까’ 하는 거예요. 몇몇 사람이 손을 들자 그 사회자가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이분들이 바로 이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성장시키는 사람들입니다. 박수를 보내주십시오.’ 그 자리에 있던 아이들은 과학자인 아빠가 박수받는 걸 보며 무엇을 느꼈을까요?”

정 교사는 “얼른 코로나가 종식돼서 마스크 벗은 얼굴로 아이들을 만나 속 깊은 얘기도 하고 과학관에도 데려가고 싶다”며 “아이들이 ‘사이노베이터’에서 익힌 경험을 가지고 훗날 창업을 해서 우리나라를 부강한 나라로 만드는 데 일조했으면 하는 게 내 꿈”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