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적 요구를 반영하지 못하는 건 대학뿐 아니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고교 교실부터 여전히 수십년 전 교육 시스템이 변하지 않고 있다. 인문계열 학과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은 문과 공부만, 이공계열 진학을 원하는 학생은 이과 공부만 하는 ‘칸막이 교육’ ‘편식 공부’가 21세기인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 정부가 미래 정보지능사회에 대비하기 위해 문·이과 칸막이를 허물고 융합형 인재를 육성하겠다면서 지난 2015년 ‘문·이과 통합형 개정 교육과정’을 발표하고 2018년부터 본격 시행했지만, 여전히 학교에서는 “이름만 ‘문·이과 통합’이고 칸막이는 견고하다”는 지적이 많다.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9월 모의평가가 실시된 1일 오전 충북 청주시 청주여자고등학교에서 3학년 수험생들이 시험을 치르고 있다. /신현종 기자

서울 A고교는 문·이과 통합을 표방했지만 사실상 ‘문과반’ ‘이과반’을 나눠 운영한다. 1학년 때는 문·이과 구분 없이 ‘공통과목’을 듣지만, 2학년부터는 진로에 맞춰 ‘사회탐구’(문과)를 들을지 ‘과학탐구’(이과)를 들을지, 수학은 ‘확률과 통계’를 배울지 ‘미적분’을 배울지 선택하면서 자연스레 분리가 된다. ‘문과반’ 학생도 원한다면 과학·수학 심화 등 ‘이과반’ 수업을 들을 수 있지만, 이과생과 내신 경쟁을 해야 하는 데다 수능에도 반영되지 않아 그럴 필요를 못 찾는다. A고 교장은 “인공지능과 빅데이터가 중심이 되는 사회를 살아갈 아이들이 아직도 문⋅이과로 나눠 편식 공부를 한다는 게 안타깝다”고 했다.

이런 현상은 결국 대학들이 여전히 문·이과로 나눠 입시를 치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서울대를 비롯한 주요 상위권 대학들이 입시 단계부터 인문계와 이공계를 구분해서 학생을 모집한다. 또 필수 지원 요건에도 이공계에만 ‘미적분/기하, 과학탐구 응시’를 못 박을 뿐 인문계에는 아무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인문계열 희망 학생이 고교 3년간 ‘통합과학’을 제외한 과학 관련 과목을 전혀 듣지 않았어도 문제가 없다. ‘문·이과 통합’ ‘미래 융합 인재’를 말하지만 현실은 딴판인 셈이다.

교육부도 이런 문제 때문에 수능을 문·이과 구분 없이 함께 치르는 방안을 추진했다. 고1 때 배우는 공통수학, 공통사회, 공통과학 등 ‘공통과목’ 중심으로 수능을 치르도록 해 고교 졸업 때는 최소한의 문·이과 소양을 갖추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학생들이 수능에서 사회·과학을 필수로 치게 되면 전보다 학습 부담이 너무 커진다”는 반발에 부딪혀 좌초됐다. 올해 치러지는 ‘첫 문·이과 통합 수능’ 역시 문과생은 사회 탐구, 이과생은 과학 탐구를 치는 식으로 나뉜 상태다.

전문가들은 “인문계든 이공계든 꼭 필요한 과학·수학 수업은 일정 수준 이상 반드시 이수해야 졸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경회 명지대 석좌교수는 “현재 우리나라 고교 필수 교과목은 문과 과목이 60~70% 이상, 이과 과목이 나머지를 차지하는 구조”라며 “학생들이 더 다양한 과학·수학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이공계열 과목에 폭넓은 선택권을 주고 이를 입시에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