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준 대표

국내 AI 교육 스타트업 뤼이드(대표 장영준)가 세계 최대 벤처 투자 펀드 소프트뱅크 비전펀드에서 2000억원 규모 투자를 유치했다. 비전펀드가 국내 기업에 단독 투자한 건 쿠팡(30억달러), 아이유노미디어(1억6000만달러)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각각 미국, 영국에 본사를 둔 쿠팡, 아이유노미디어와 달리 뤼이드는 국내에 본사가 있다.

뤼이드(Riiid)는 “소프트뱅크 비전펀드와 1억7500만달러(약 2000억원) 투자 계약을 맺었다”고 24일 밝혔다. 뤼이드는 AI(인공지능)를 활용해 맞춤형 교육 콘텐츠를 개발하는 에듀테크(Edutech) 회사로 2014년 5월 창업했다. 2016년 AI 토익 튜터 ‘산타’를 내놓으면서 차세대 ‘유니콘(Unicorn·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인 비상장 스타트업)’ 대표 주자로 주목받았다. 작년 말 기준 자본금 3800만원, 직원 150명 규모 회사가 이번에 2000억원 투자 유치를 이끌어낸 것이다.

뤼이드는 지난달 비전펀드를 이끄는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을 상대로 경영 설명회를 가졌다. 장영준 대표는 손 회장이 직접 요청해 열린 이 설명회에서 “뤼이드를 100조원 가치의 회사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고, 손 회장은 “당신은 나의 친구다. 끝까지 지원하겠다”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양측은 세부 조율을 거쳐 24일 2000억원 투자 계약서에 최종 서명했다. 비전펀드가 2000억원 투자를 통해 확보한 지분 규모는 공개되지 않았다.

“개천의 용 사라지는 시대, AI가 해결책”

“천재는 재능을 살려주고, 도태된 학생은 장래를 탐색할 동기를 부여해 주는 게 교육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우리 생각에 비전펀드가 공감한 것 같습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이끄는 비전펀드에서 2000억원 대규모 투자를 받은 에듀테크 스타트업 뤼이드(Riiid) 장영준(35) 대표는 24일 “홀가분하다”며 이렇게 포부를 밝혔다. 그는 “인공지능(AI) 교육은 소득의 많고 적음에 따른 교육 수준 격차를 해소하는 본질적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장 대표는 지난 4월 손 회장 앞에서 30분간 온라인 프레젠테이션(PT)을 펼친 기억을 떠올렸다. 뤼이드의 사업 설명에 10분, 질의응답에 20분 걸렸다. 그는 “거인(巨人)을 마주한 기분이었다”면서 “손 회장이 단순히 돈 잘 버는 기업이 아니라, ‘어떻게 압도적 1등 기업이 될 것인가’ ‘어떻게 세계적 인재를 영입할 것인가’에 대해 집요하게 물었다”고 말했다.

24일 오후 서울 강남구 뤼이드 본사에서 장영준 뤼이드(왼쪽에서 셋째) 대표와 AI 튜터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엔지니어들이 모여 투자 유치 성공을 자축하고 있다. /고운호 기자

장 대표는 손 회장에게 “AI로 개별 학생들의 학습 동선(動線)을 마련해주고 각자 지닌 잠재적 역량을 키워주는 새로운 교육 생태계가 탄생한다면 그 주인공은 우리가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고 한다. 질의응답이 채 끝나기도 전 손 회장은 장 대표에게 “축하한다. 당신은 나의 친구다. 끝까지 돕겠다”면서 박수를 쳤고, 긴장 속에 PT를 펼치던 장 대표와 직원들은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고 한다.

뤼이드는 이번 비전펀드 투자를 계기로 기존 굴지의 국내 교육 기업인 메가스터디교육(시가총액 7600억원)이나 웅진씽크빅(4600억원) 등을 단숨에 뛰어넘는 위치에 오를 전망이다.

뤼이드는 2014년 5월 설립됐다. 뤼이드라는 사명은 ‘없애다’ ‘자유롭게 하다’는 뜻의 영단어 ‘rid’에서 따온 것이다. 뤼이드의 앱이 수험생들을 문제집과 학원, 비싼 인터넷 강의에서 해방시켜 준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2년간 연구개발을 거쳐 2016년 첫 제품인 AI 토익 튜터 앱 ‘산타’를 한국과 일본에 출시했다. 290만명이 사용한 이 앱은 20시간 학습 시 평균 165점이 상승하는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올 3월엔 이집트·아랍에미리트·요르단·터키·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5국에 미 대학입학 자격시험(ACT) 학습 앱인 ‘커넥미’를 출시했다.

장 대표는 뤼이드의 강점으로 ‘인재’와 ‘기술력’을 꼽았다. 작년 4월 미 실리콘밸리에 설립한 뤼이드랩스에는 ACT 전 CEO 마텐루다, 전 스탠퍼드대 총장이자 조 바이든 미 대통령 선거캠프의 교육정책위원회 출신 짐 래리모어 등이 참여했다. 뤼이드는 국내외 시장에 104건 특허를 출원, 26건을 등록했다. AI 교육 관련 논문도 12건 발표했다.

한양대를 다니다 UC버클리 경영대학으로 유학을 떠난 장 대표는 졸업 후 금융투자회사 메릴린치에서 일했던 3년간의 인턴 경험이 사업을 결심하게 된 계기라고 밝혔다. 그는 “한 명의 보스를 위해 일하는 회사보단, 사업을 통해 세상 구석구석 풍경을 바꾸고 싶었다”고 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사업을 구상하던 그의 눈에 띈 건 ‘시험 지옥’에 빠진 사회 풍경이었다. 공무원 시험, 수능, 자격증, 외국어 시험 시장에서 발생하는 불필요하고 비효율적인 비용과 학습 방식은 “미국 대학 시절 접했던 ‘머신 러닝’을 통해 극복 가능하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그는 “AI가 데이터를 기반으로 더 좋은 학습 콘텐츠, 더 적합한 문제를 추천할 수 있다면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했다. 이후 200명 넘는 개발자를 만나러 다녔고, 1년 뒤인 2014년 공동 창업자 두 명과 함께 뤼이드를 설립했다.

장 대표의 다음 목표는 공교육과의 협업이다. 그는 “민간이 개발한 AI 기술을 공교육에 투입하면 개인의 수준에 맞는 학습이 가능하고, 줄 세우기식 교육의 한계도 극복할 수 있다”면서 “AI 기술을 통해 이제는 사라진 ‘개천의 용’을 다시 볼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