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원주에 있는 상지대는 올해 수시·정시 모집에서 전체 64개 학과 가운데 60개 학과가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지난달 실시한 1차 추가 모집에서도 52개 학과에서 663명이 미달돼 2차 추가 모집에 나섰지만 총 지원 인원은 9명(1.4%)에 그쳤다. 한국어문학과를 비롯한 45개 학과는 지원자가 한 명도 없었고, 로봇공학 등 7개 학과는 1~2명만 지원했다. 수시와 정시, 1~2차 추가 모집 등을 거쳤어도 대다수 학과가 정원을 채우지 못해 결국 신입생 모집 정원의 30%가 미달인 채로 개강했다.

◇“서울 소재 주요대 따라 하기는 안 돼”

이런 현상은 상지대뿐 아니다. 모집 정원이 2000~4000명으로 비교적 규모가 큰 지방대들이 올해 신입생 모집에서 줄줄이 500명 이상 미달이라는 처참한 성적표를 받았다. 올해 모집 정원의 19%에 달하는 780명이 미달된 대구대의 경우 모집 학과 수가 85개에 이른다. 이 가운데 한국어문학부·영어영문학과·행정학과·경영학과·회계학과 등 63개 학과(74%)가 추가 모집에서도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올해 신설한 에너지시스템공학전공, 융합산업공학과 등도 마찬가지였다. 올해 710명 미달한 원광대도 69개 모집 학과 대다수가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김경회 명지대 석좌교수는 “지방 주요 대학들조차 위기 신호등이 켜졌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주변 상권까지 ‘유령도시’로 - 지난 11일 전북 군산 서해대 주변 상가 가게 문이 굳게 닫혀있다. 서해대는 교비 회계 횡령 등 비리가 적발되고 신입생이 급감하면서 재정난을 겪다 지난달 28일 강제 폐교됐다. 이후 교정은 물론 주변 상권까지 ‘유령 도시’처럼 변했다. /김영근 기자

이런 현상을 저출산 등으로 인한 학령 인구 급감 탓으로만 돌릴 게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내실보다는 외형 키우기에 치중한 지방대들의 경쟁력 저하가 근본 원인 중 하나라는 것이다. 대학가에서 “지방대 가운데 상당수가 서울 주요대 학과 구성을 너도나도 따라 해 미국보다 한국에 영문과가 더 많을 수도 있다”는 얘기까지 돌 정도다. 경북의 한 대학 교수는 “빅데이터, 인공지능, 스마트시티 등 4차 산업혁명을 겨냥해 학과를 신설하거나 학과명을 바꾼 지방대가 많지만, 제대로 가르칠 교수도 따라올 학생도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교육의 질부터 끌어올려야”

지방대 경쟁력을 높이려면 대학 교육의 내실부터 다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학생들과 교수 모두가 ‘부실 교육'을 우려하고 있을 정도다. “프로그래밍을 배우고 싶어 컴퓨터학과에 입학했다”는 한 지방대 학생은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린 글에서 “학과 교수는 자기가 쓴 오류투성이 교재를 읽어주는 게 강의의 전부”라며 “자퇴하거나 다른 대학 편입을 고민 중”이라고 했다.

대학 생활 만족도 비교

강원대는 지난해 2학기 내내 실시간 강의 없이 자료와 과제물로 수업한 교수에게 부실 수업 책임을 묻기 위해 징계위원회에 회부했다. 조기 종강을 한 교수와 부실 강의를 한 강사들에게도 견책, 경고 처분했다. 지난해 교육부 공시에 따르면 강원대는 563명(재적 인원의 2.7%)이 자퇴한 것으로 집계됐다. 상당수는 수도권 대학으로 옮긴 것으로 추정된다. 민간단체인 대학교육연구소에 따르면, 지방대 중도탈락률(2018년 기준)은 6%로 수도권대(4.4%)보다 1.4배쯤 높았다.

한 대학 강사는 “대전의 한 대학에서 강의했는데 수강생 200명 가운데 100명은 자고 나머지는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며 “수업에 집중한 학생이 딱 1명이었는데 ROTC(학군사관후보생)였다”고 했다.

대학 교육의 질을 가늠하는 지표 가운데 하나가 ‘학생 1인당 교육투자비’다. 대학이 재학생을 위해 지출하는 기계 기구 매입비, 장학금, 도서 구입비, 인건비 등이 포함된 것으로 교육 투자 규모와 향후 발전 가능성을 나타내는 지표로 꼽힌다. 지난해 공시한 수도권 대학의 학생 1인당 교육비 평균은 1785만원으로 지방대 평균(1427만원)보다 300만원 이상 높은 수준이다. 올해 지방대의 대규모 미달 여파로 이 격차는 더 커질 전망이다.

◇정부 정책 실패도 미달 규모 키워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대학 정원 감축 등 구조 개혁이 주춤해 지방대 미달 사태를 키웠다고 지적한다. 김영삼 정부의 대학 설립 준칙주의와 정원 자율화 정책으로 대학교가 급증한 이후, 이명박 정부는 대학 평가에 따른 정원 감축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하지만 2019년 교육부는 “2024년에 입학 정원 대비 12만명이 부족해 지방대·전문대부터 운영난에 직면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도 “정부의 인위적 정원 감축 없이 대학이 스스로 판단해 수립한 계획을 통해 적정 규모를 실현하도록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2014~2017년 교육부 대학구조개혁위원장을 지낸 백성기 전 포스텍 총장은 “문재인 정부는 대학 정원 감축에 사실상 손을 놓고 대학들이 알아서 하라는 식이었다”며 “결국 대학 경쟁력이 떨어지고 학생들이 피해를 입게 됐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