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싱범이 피해자 돈을 다른 사람의 계좌로 송금해 카드 대금이 자동 결제됐다면 카드 주인이 부당이득을 얻은 것이 맞는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1·2심에서 패소했던 피해자는 대법원 판결을 통해 피해액을 돌려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 뉴스1

16일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대법원 2부(재판장 이동원)는 메신저 피싱 피해자 A씨가 카드 계좌 소유자인 B씨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 소송에서 B씨가 부당이득을 취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원심을 파기 환송했다.

A씨는 2021년 10월 자녀를 사칭한 피싱범으로부터 ‘휴대전화 액정이 깨져 수리비가 필요하다’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A씨는 피싱범이 시키는대로 특정 웹사이트를 접속했는데, 은행 계좌번호, 비밀번호가 그대로 피싱범에게 넘어갔다. 피싱범은 A씨의 휴대전화에 원격조정 프로그램을 설치해 B씨 계좌로 100만원을 보냈다.

이 돈은 이후 B씨 계좌와 연결된 카드 회사의 카드 대금으로 자동 결제됐다. A씨는 피해 사실을 뒤늦게 파악하고 카드 회사를 상대로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했다. “A씨의 피해액으로 카드 대금 결제가 이뤄진 것에 대해 카드 회사의 잘못이 없다”는 이유였다.

A씨는 카드 계좌 주인인 B씨를 상대로 다시 소송을 냈다. 1심은 B씨가 모르는 사이 입금된 돈이 카드 대금으로 자동 결제돼 부당이득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2심 역시 판단이 달라지지 않았다. 소송은 B씨의 행방이 불분명해 공시송달로 진행됐다.

대법원은 원심 판단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B씨가 얻은 이익은 송금받은 돈 자체가 아니라 자신이 사용한 100만원의 카드 대금 채무를 면하게 된 것”이라며 “원심 판결은 대법원 판례에 상반된 판단을 한 잘못이 있다”고 했다.

피싱 피해를 입은 A씨는 대법원 재판을 통해 구제 가능성이 열렸다. 그러나 B씨의 행방이 여전히 불분명해 실제 100만원을 받아내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A씨를 대리한 공단 소속 김덕화 변호사는 “재산 명시 등을 통해 B씨의 재산이 확인되면 강제집행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