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2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에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와 관련 1심 결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5년간의 재판을 마무리하는 결심공판에서 이 사건에 대해 “사법부의 비극이자 잔혹사”라는 소회를 밝혔다.

임 전 차장은 2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 36-1부(재판장 김현순)심리로 열린 결심공판에서 약 15분간 최후진술을 통해 이 같이 밝혔다.

그는 2018년 11월 기소돼 5년간 진행된 이 사건 재판에 대해 “아마도 대한민국 사법사 75년과 향후 사법부 미래를 통틀어 가장 심각한 논쟁과 중대한 파장을 불러 올 역사적 재판으로 세인들의 뇌리에 영원히 기억될 것으로 생각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법부의 비극이자 잔혹사라고 평가될 정도로 심각한 상처를 입게 된 상황에 대해 무한한 책임을 느낀다. 난생 처음 강도 높은 조사를 받으면서 그 조서에 울분과 분노를 표출한 후배 법관들이 겪었을 심적 고통에 사죄를 드리고 앞으로 평생 무거운 책임감을 안고 살아가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김명수 대법원 초기인 2017~2018년 김 대법원장이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 수사를 검찰에 넘기면서 100명에 가까운 판사들이 검찰 조사를 받았다. 이들 중 상당수는 법원을 떠났고 2021년 초에는 엘리트 판사 80여명이 사표를 내기도 했다.

임 전 차장은 “존재 자체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사법부 블랙리스트와 재판 거래를 사법농단이라는 거창한 프레임 하에 기정사실임을 전제로 시작된 이 사건 수사의 배경과 거기에 작동한 음험한 정치적 맥락 등에 대해서는 대법원장님과 대법관님들께서 최후진술로 충분히 말씀하셨다”며 “참담하고 암울하게 지냈던 6년간의 세월에 대한 소회를 말씀드리겠다”고 했다.

그는 “1997년 전혀 예상지 못했던 사법행정 업무를 담당하게 되면서 새 세계를 경험하게 됐다”며 “일선 법원에서의 재판업무가 검사님 포함 소송당사자들이 판사를 설득하는 과정이라면 사법행정은 반대로 판사가 극히 나약한 을의 지위에서 입법과 행정국가작용을 주도하는 슈퍼갑인 국회와 행정부를 설득해야 하는 작업”이라고 했다.

임 전 차장은 “다양한 상황을 미리 예상하고 실제 실현가능성 희박한 방안까지 선제적으로 검토했다”며 “그런데도 검찰은 공소장에서 이를 목적으로 작성된 여러 검토보고서에 대해 작성 자체가 위법하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했다. 이는 임 전 차장이 ‘양승태 대법원’의 숙원사업이던 상고법원 도입 추진 등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작성된 각종 보고서가 검찰에 의해 심의관들에 대한 ‘직권 남용’ 의 증거로 제출된 것을 말한 것이다.

임 전 차장은 “500일 넘게 이어진 구금 생활 동안 눈부신 구치소 담장 한모퉁이 구석에 모서리에도 모진 생명력을 자랑하는 야생화의 노란 꽃잎에 고마움을 느꼈다”며 “밤에는 꿈속에서나마 찾아오는 자유로움을 만끽하면서 평소 너무 무관심했던 가족들과의 따뜻한 재회를 통해 달콤한 행복을 맛보았다”고 했다. 임 전 차장은 이 대목을 언급하며 다소 울컥하기도 했다.

임 전 차장은 “부디 공소장 곳곳에 난무하는 신기루와 같은 허상과 과도한 상상력이 점철된 공소사실보다는 엄격한 형사법상의 증거법칙에 따라 증명되는 실체를 토대로 공감할 수 있는 판결을 내려 주시기를 간곡히 바란다”고 했다.

임 전 차장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과 공모해 ‘일제 강제 징용 재판 거래’에 개입한 혐의, 전·현직 국회의원들에게 재판관련 민원을 받고 판사들에게 부당한 지시를 내린 혐의 등으로 2018년 11월 구속 기소됐다.

재판부는 내년 2월 5일 판결을 선고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