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공작원의 지령을 받고 미국 스텔스 전투기인 F-35A 도입 반대 활동을 벌인 혐의를 받는 충북동지회 조직원들이 지난 2021년 8월 2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위해 청주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뉴스1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2021년 9월 기소된 ‘충북동지회’ 사건은 피고인들의 ‘재판 지연’ 전략으로 1심 재판만 26개월째 하고 있다. 이 재판을 맡은 청주지법에서 1심 합의부 형사재판을 평균 200일 쯤에 마치는 것에 비춰보면 재판 지체가 심각한 상태다.

그런데 이 재판은 더 늦어지게 됐다. 공범으로 기소된 피고인 4명 중 1명이 뒤늦게 ‘법관 기피(忌避) 신청’을 추가로 냈기 때문이다. 기피 신청은 별도 재판부가 판단하고 그 결론이 나올 때까지 본(本)재판은 열리지 못한다. 앞서 이 재판은 다른 피고인 3명이 뭉쳐 기피 신청을 세 차례 내면서 8개월간 멈췄다.

한 법조인은 “국보법 사건 피고인들이 기피 신청을 시차를 두고 나눠 내는 ‘쪼개기’ 방식으로 재판 지체를 노리는 ‘신종 수법’을 구사하고 있다”면서 “법 제도를 악용하는 사법 농단”이라고 말했다.

2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이 사건 피고인 중 한 명인 박모씨가 1심 재판부인 청주지법 형사 11부를 상대로 지난달 23일 기피 신청을 냈다. 열흘째가 됐지만 기피 신청에 대한 결론은 나오지 않았고 박씨에 대한 재판은 열리지 못하고 있다.

그래픽=양진경

이에 따라 재판부는 다른 피고인 3명의 재판을 따로 떼내 진행하기로 했다. 박씨가 낸 기피 신청 결론을 기다리다가 재판 전체가 늦어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분리 재판’을 하더라도 피고인 전원에 대한 1심 판결 선고가 늦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증인 한 명이 박씨 재판과 공범들 재판에 따로 출석해 같은 내용의 증언을 반복하게 되면 시간이 두 배로 걸릴 수 있다.

이 사건은 국보법 위반 사범들이 ‘재판 지연 전술’로 목적을 이룬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박씨를 제외한 공범 3명은 작년 1월 4일 1심 재판부에 첫 기피 신청을 냈다. 이 기피 신청은 1심(심리 기간 17일), 2심(21일)에 이어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가 작년 3월 4일 최종 기각했다. 그러면서 재판이 2개월간 한 차례도 열리지 못했다.

이어 작년 3월 법관 인사로 판사들이 바뀌자, 9월 23일 공범 3명이 두 번째 기피 신청을 냈다. 기피 신청은 재판부가 변경될 때마다 낼 수 있다. 이 기피 신청은 1심(60일), 2심(19일) 이후 올라간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에서 심리 84일 만인 올해 3월 22일 최종 기각됐다. 기피 신청으로 6개월간 재판을 멈춘 것이다.

올해 4월에도 공범 3명이 배석 판사들을 상대로 기피 신청을 냈다가 즉시 기각당했다. 앞서 공범 중 2명은 국보법이 위헌이라는 내용의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2021년 9월 신청하기도 했다. 이렇게 재판이 늘어지면서 구속 기소됐던 피고인 3명은 보석 등으로 모두 풀려났다.

다른 국보법 사범들도 재판 지연 전술을 쓰고 있다. 지난 3월 기소된 ‘자주통일(자통) 민중전위’ 피고인들은 국민참여재판 신청을 했다가 기각되자 항고, 재항고를 하며 시간을 끌었다. 국민참여재판 허용 여부에 대한 최종 판단이 나올 때까지 재판이 진행될 수 없다. 피고인들은 지난 8월 대법원에서 국민참여재판 신청이 기각되자 곧바로 보석을 신청했다. 또 수원 ‘민노총 간첩단’, 제주 ‘ㅎㄱㅎ’, 전북 전주 ‘시민단체 대표 사건’의 피고인들도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다. 지난 9월부터 자통, 제주, 전주 사건의 재판은 한 차례도 열리지 못했다. 민노총 간첩단 사건 피고인들은 지난달 모두 보석으로 풀려났다.

수도권에 근무하는 한 판사는 “국보법 사건 1심 재판 평균 처리 기간이 2016년에는 11개월이었는데 올해 1~6월에는 30개월로 급증했다”면서 “고의적 재판 지연을 막을 장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법무부도 ‘피고인 신청으로 공판 절차가 정지된 기간은 구속 기간에 산입(算入)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형사소송법에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