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시절 법무장관을 지낸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장관 재임 시절 미국 출장을 다녀온 후 수행 인원과 출장 경비를 축소한 보고서를 공무원 해외 출장 정보 사이트에 올린 것으로 4일 확인됐다. 이 사이트에는 박 전 장관이 2021년 수행원 5명과 함께 6박8일간 미국 출장을 가면서 경비 6800여만원을 썼다고 돼 있지만, 법무부 조사 결과 실제로는 수행원 11명을 대동해 1억원의 경비를 썼다는 것이다.

박범계 당시 법무부 장관이 2021년 11월 17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DC 인근 덜레스 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무부는 이날 본지가 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 때 재직한 전·현직 법무장관들의 해외 출장비 내역에 대해 청구한 정보 공개 자료를 공개했다. 본지는 지난달 2일 ‘대한민국 정보 공개 시스템’을 통해 한동훈 법무장관과 박범계·추미애·조국·박상기 전 법무장관의 해외 출장 내역을 공개하라고 법무부에 청구했다.

이번 법무부의 전·현직 법무장관 해외 출장 내역 공개는 법원 판결에 따른 것이다. 작년 11월 한 시민단체는 한동훈 장관이 그해 6~7월 미국 출장 경비로 쓴 집행 내역과 증빙자료를 공개하라고 소송을 냈고, 1심을 맡은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8월 24일 시민단체의 승소로 판결했다. 한 장관은 지난 9월 1일 국회에 출석해 “법원 판결에 따라 미국 출장비 내역을 공개하겠다”고 밝히면서 항소를 하지 않았고, 1심 판결은 9월 9일 확정됐다.

한동훈 법무장관. /뉴스1

◇똑같은 미국 출장인데 박범계 경비 1억원·수행원 11명, 한동훈은 4800만원에 3명

본지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확보한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박범계 전 장관은 재임 시절인 2021년 11월 17일부터 24일까지 6박8일 동안 미국 워싱턴DC와 뉴욕 출장을 다녀왔다. 박 전 장관의 미국 출장 일정은 대부분 비정부기관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일이었다. 조지워싱턴대 한국학연구소, 워싱턴DC 특파원 간담회, 뉴욕 동포 간담회 등이다. 국제기구는 UN뉴욕본부에서 실장 2명을 면담하는 등 1곳에 불과했다. 박 전 장관이 미국 출장에서 만난 사람 104명 중 최소 43명이 한국인이라고 법무부는 밝혔다.

박 전 장관은 당시 법무실장, 통일법무과장, 정책보좌관, 사무관, 공익법무관 등 수행원 11명과 함께 출장을 다녀오면서 총 1억713만원을 쓴 것으로 조사됐다.

그런데 박 전 장관 재임 당시 ‘문재인 법무부’는 공무원 해외 출장 정보 사이트인 ‘국외출장연수정보시스템’(btis.mpm.go.kr)에 박 전 장관의 미국 출장 수행 인원과 경비를 축소해 적어둔 것으로 나타났다. 수행 인원은 실제 인원 11명보다 6명 적은 ‘5명’이라고 밝혔으며, 출장 경비 총액도 실제로 사용한 1억713만원보다 3873만원 줄어든 ‘6840만원’으로 공개해놨다는 것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이번에 정보 공개 청구를 요청받고 전·현직 장관들의 해외 출장 자료를 전수 조사하면서 뒤늦게 축소 공개 사실을 파악했다”고 말했다.

반면, 한동훈 장관은 2022년 6월 29일부터 7월 7일까지 다녀온 미국 워싱턴DC와 뉴욕 출장에서 총 4840만원의 경비를 사용했다. 박 전 장관의 2분의 1 수준이다. 한 장관의 미국 출장에는 국제형사과장, 통역계장 등 3명의 수행원이 동행했다.

한 장관은 7박9일 간의 미국 출장에서 국가기관 4곳(미국 연방법무부·FBI·뉴욕남부연방검찰청·뉴욕시교정청 산하 교정시설), 국제기구 2곳(월드뱅크·UN뉴욕본부)을 방문했다. 한 장관은 박 전 장관과 달리 비정부기관을 찾지는 않았으며, 미국 현지에서 만난 한국인도 없었다고 법무부가 밝혔다.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 /뉴시스

◇박범계, 독일 출장도 6992만원 지출...대부분 비정부기관 방문

박범계 전 장관은 재임 시절 2022년 1월 8~15일 6박8일 동안 독일 출장을 다녀오기도 했다. 박 전 장관과 당시 대변인, 정책보좌관, 상사법무과장 등 5명의 수행원이 동행했고 총 6992만원을 썼다. 이 때도 나우만재단, 베를린 국제투명성기구, 대한민국비자신청센터, 독한법률가협회 등 비정부기관을 방문한 게 대부분이었다. 국가기관은 연방의회 법사위를 다녀온 게 유일했다.

한동훈 장관도 올해 3월 7~15일 7박9일 일정으로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출장을 다녀왔다.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 정책기획단장, 출입국이민관리체계개선추진단장 등 수행원 5명과 함께 5598만원을 지출했다. 한 장관이 방문한 곳은 프랑스 내무·해외영토부, 네덜란드 법무안전부·이민귀화청, 독일 연방내무부·연방이민난민청, 국제형사재판소, 국제상설중재재판소 등 각국 중앙부처 5곳과 국제기구 2곳 등이었다. 박 전 장관은 한 장관보다 짧은 출장 일정으로 더 적은 국가를 방문하면서 더 많은 세금을 쓴 셈이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뉴시스

추미애·조국 전 장관은 재임 기간 해외 출장을 다녀오지 않았으며 박상기 전 장관은 세 차례 다녀온 것으로 나타났다. 추 전 장관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해외 출국이 제한된 2020년 1~12월 법무장관으로 재임했고, 조 전 장관은 ‘자녀 입시 비리’ 등 사건으로 취임 35일 만에 퇴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