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기술의 발전이 국내 법률 시장에도 지각변동을 가져올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챗GPT처럼 대규모 언어 학습이 가능한 생성형 GPT 기술에 기반한 ‘AI 변호사’가 법률 자문과 계약서 검토 등 법률 전문가 영역을 차지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이다.

대화형 인공지능 서비스 챗GPT 로고. / 로이터

국내 법률 분야 AI 업체 인텔리콘연구소는 챗GPT를 활용한 법률 상담 서비스를 오는 7월쯤 공개할 예정이다. 각종 법률 문제에 대한 일반인의 질문과 법원 판결문 등 데이터 25만건을 챗봇형 생성 GPT에 학습시킨 뒤 이를 통해 서비스 이용자의 문의에 답하는 방식이다. 예컨대, 채팅창에 ‘교통사고가 났는데 명함만 주고 가면 무슨 죄인가’라고 입력하면 ‘도로교통법 54조 1항에 따른 구호 조치를 하지 않은 것으로 특가법 5조의3 위반죄가 성립할 수 있다’는 설명을 받을 수 있다. 해당 법률 조항도 클릭 한 번으로 연결된다.

국내 리걸테크 회사 로앤굿도 이혼 가사 사건 전문 서비스를 이르면 이달 중 선보일 전망이다. 실제로 변호사가 의뢰인을 상담한 데이터 30만건을 추출해 일반인의 법률 상담에 응하겠다는 것이다.

앞서 AI는 국내 로펌에서 업무 효율을 높이는 수단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새로 등록된 상표권 중에 고객의 기존 상표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는 사례를 AI가 찾아내 미리 대응하는 소프트웨어, 거래 상대방의 법률 리스크를 평가해 적색 경보를 울려주는 시스템 등이 가동되고 있다고 한다. 판례 검색, 계약서 작성 등에도 AI를 활발하게 사용하고 있다.

‘AI 변호사’가 ‘인간 변호사’의 일자리를 위협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전체 법률 업무의 절반에 가까운 44%가 AI를 통해 자동화될 수 있는 것으로 예상된다. 또 미국의 한 로펌이 기업 실사(實査)에 AI 기술을 적용했더니 인력당 근무량은 48% 줄었고, 업무 효율은 22% 올라갔다고 한다.

AI가 기초 자료 조사, 문서 초안 작성 등에 걸리는 시간을 단축하면 대형 로펌의 법률 시장 독과점이 가속화할 수 있다. 한 법조인은 “대형 로펌들이 소속 변호사 수를 늘리지 않고도 사건을 더 수임할 수 있게 된다면 중소형 로펌이나 개인 변호사 상당수는 일감을 구하기 힘들어질 것”이라고 했다. 대형 로펌 변호사의 70%가 저연차 변호사들인데 AI가 이들의 일자리를 위협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리걸테크 업계 관계자는 “로펌의 파트너 변호사가 AI를 통해 자료 조사 등을 더 많이, 더 빨리 처리할 수 있게 된다면 저연차 변호사를 내보내거나 신입 변호사를 뽑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로펌 수임료가 낮아질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대기업 법무팀 관계자는 “대형 로펌이 시간당 요율을 적용하고 있는데 AI가 사건 처리 시간을 줄이면 로펌이 고객에게 청구하는 액수도 내려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은 ‘AI 변호사’가 ‘인간 변호사’를 이길 수 없다는 평가도 있다. 한 대형 로펌의 파트너 변호사는 “AI는 어떤 증거가 가장 결정적인지, 어느 증인이 가장 신빙성 높은지 등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법원·검찰·고객과의 유대 관계, 사건 처리를 위한 전략적 판단 등도 인간 변호사의 몫”이라고 했다.

한편 AI가 법원의 재판 지연 문제를 개선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판례 검색과 분석, 판결문 초안 작성 등을 AI가 신속하게 처리한다면 재판 속도가 획기적으로 높아질 수 있다. 법원 내 IT 전문가인 강민구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인간 법관이 승소와 패소를 결정하되 판결문을 작성할 때 AI의 도움을 받는다면 그 효율성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 법률 분야 AI 기술 수준이 높아지려면 방대한 데이터 확보가 필수적인데 우리나라는 정보 공개가 제한적이라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9년 이전에는 전체 법원 판결문 가운데 불과 0.3%만 공개됐다는 통계가 있다. 이후 판결문 공개 비율이 30%대로 높아졌지만 사건 당사자가 익명 처리되는 등 정보의 구체성이 부족한 상황이다.

새로 등장하는 법률 분야 AI에 대해서는 변호사법 위반이나 변호사 단체의 반발 가능성도 제기된다. 법률 플랫폼 1위 업체인 로앤컴퍼니(로톡)는 형량 예측 서비스를 제공했었지만, 대한변협과 갈등 끝에 2021년 9월 해당 서비스 종료를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