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일 서울고등법원 민사13부 강민구(姜玟求·64) 부장판사실. 북한산과 남산, 인왕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20층 창가엔 강 판사가 2014년부터 작업해 최근 완성한 전자책 영인본(影印本)들이 나란히 꽂혀 있었다. 강 판사가 바인딩한 책 두 덩어리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아이고, 참으로 눈물 난다. 전자책 《송백일기 1, 2》 몇 권을 영인본으로 인쇄했는데, 지금 마침 배달이 됐다”며 “기자님이 운 좋게 마수걸이로 책을 받으시게 됐다”고 했다.

강민구 서울고법 부장판사./사진=월간조선 오동룡 기자

강민구 판사는 전자법정·전자소송 체계를 구축한 자타가 공인하는 법원 내 최고의 IT 전문가다. 2022년 6월 그가 ‘창의적 서울대법대인상(賞)’을 받았을 때, 그를 소개한 ‘선정기’가 그의 재직기간의 업적을 한눈에 보여준다.

<동문께서는 지난 34년간 정확하고 원만한 재판 업무의 처리뿐 아니라, 뛰어난 IT 관련 지식을 이용하여 한국 사법부 사법정보화의 중추적 핵심 역할을 수행한 바, 종합법률정보시스템 개발의 주역이고, 한국 전자소송·전자법정 도입에 산파역을 하였습니다. 동문께서는 뛰어난 저술가·기고자·강연자·봉사자로서, 탁월한 IT 관련 지식과 기술을 이용한 많은 사회공헌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 2017년 1월 11일 올린 부산지방법원장 퇴임 기념 고별 영상 ‘혁신의 길목에 선 우리의 자세’는 업로드 두 달 만에 조회수 100만을 돌했고, 현재 135만 조회수를 기록하는 등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그 영상 하나만 135만 뷰를 기록했다. 나머지 부속 영상들까지 합치면 220만 뷰를 기록 중이다. 변화의 물결에 올라타지 않으면 죽는다는 간절한 외침이 국민들께 신선한 충격을 준 것 같다.”

지난 2월 20일 서울고법 민사부에서 형사부(재정신청부)로 발령받은 강민구 판사의 최종 판결 횟수는 1만156건이다. 대한민국 법원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강 판사가 미국 연수와 법원도서관 조사심의관 시절 등 판결 업무를 하지 않은 7년을 빼면 1988년 3월부터 27년간 1만 건의 사건, 연간 380건에 ‘강민구’란 이름 석자가 들어간 셈이다.

현재 135만 조회수를 기록하는 강민구 판사의 ‘혁신의 길목에선 우리의 자세’ 동영상 초기화면과 QR코드. /사진=유튜브 화면 캡처

— 법관 재임 34년간 1만 건이 넘는 판결을 하셨다.

“통상 35년 재판하면 6000건 내외(소액사건 제외)로 하는 것이 평균적, 일반적이다. 1만 건은 하루에 사건 하나씩을 처리한 셈이다. 하나의 사건 판결에 아무리 빨라도 반년, 조금 복잡하다 싶으면 2년은 후딱 지나간다. 새로 부임해 간 곳에서 수년간 밀린 사건들이 눈에 띄면 밤을 새워서라도 다 해결했다.”

— 하루에 사건 한 건씩을 처리해야 하는데, 그 복잡한 사건 기록들을 물리적으로 어떻게 검토한단 말인가.

“물론, 민감한 판결은 검토해야 할 자료가 수만 쪽이다. 판결문만 150쪽이 넘는다. 4대강 판결은 판결문만 128쪽이었고, 기록은 1만 쪽이 넘었다. 그럼에도 그게 가능했던 것은 IT자원을 판결서 작성에 최대한 투입해 속도가 다른 판사들보다 두 배 이상 빨랐기 때문이다. 덧붙이자면, ‘강민구=IT 판사’라는 닉네임이 솔직히 거북했다. ‘IT 판사’로 불리면 자칫 주 업무인 재판을 소홀히 하는 것으로 비칠수 있어 ‘정통 법관’이란 걸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 1만 건이 넘는 판결 중 기억에 남는 판결도 꽤 있을 것 같다.

“선례적 가치가 있고 헌법정신에 부합하는 판결, 네 가지가 기억에 남는다. 대표적인 것이 ‘4대강 사업 한강 수계분쟁’의 항소심 사건이다. ‘사업의 목적과 내용, 부작용 등을 모두 고려할 때 이 사업이 정부의 재량권을 넘어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고, 내 판결이 기준판결이 돼 결국 대법원에서 내 의견대로 만장일치로 확정됐다.”

— 재판은 승패가 갈린다. 재판을 1만 건 이상 하다 보면 서운해한 사람도 많겠다.

“1만 건 이상 재판하면 원고도 1만여 명, 피고도 1만여 명, 변호사와 증인 등 약 5만 명을 만나는 일이다. 그들의 사연을 듣고 정확하게 사실관계를 파악해야 한다. 재판이란 것이 승패가 명확하게 구분되는 제로섬 게임이다 보니 패소(敗訴)한 당사자들은 섭섭한 마음을 가질 것이다. 다른 판사보다 재판 횟수가 많은 나의 경우 그만큼 ‘원망의 탑’ 높이도 높을 것이다. 성남지원 있을 때, 법정구속을 시켰던 피고인이 1년 실형을 살고 나와 식칼을 품에 품고 1층 안내실에 들이닥친 적이 있었다.”

강민구 판사는 판결은 법으로 하더라도 승자와 패자 모두 다 수긍하도록 설득하기 위해 법정에서 달래거나 화해시키는 노력을 수시로 기울인다. 변호사가 원고와 피고 사이에서 합의점을 찾아 최종 판결로 가지 않고 ‘합의’로 끝내는 것이다.

— 조정이 성립되는 케이스는 얼마나 되나.

“꽤 많다. 2000년 초임부장으로 대구지법에서 근무할 때 2년간 373건을 조정한 적이 있다. 이틀에 한 건꼴, 전체 사건의 30%를 조정한 것 같다. 경북 선산중학 2학년 다닐 때 낫질하다

다친 왼손가락 상처를 보여주면, 당사자들 첫마디가 ‘판사님도 꼴 베었습니까’라며 태도가 달라졌다. 그들은 내 깊은 손가락 상처를 보며 소장(訴狀) 답변서에 숨겼던 이야기를 다 털어놓았다. 손가락 때문에 합의한 게 2년간 50건이 넘더라. 엄마하고 시집간 딸이 5000만원이 ‘증여’인가 ‘대여’인가를 놓고 계속 싸우고 있었다. 판사실로 두 사람을 불러 회심곡(回心曲)을 들려주었는데 눈물을 흘리며 바로 화해해 단박에 합의 조정된 적도 있다.”

2022년 6월 10일 더플라자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2022년도 정기총회에서 우창록 서울법대 총동창회 우창록 회장(율촌 명예회장)이 강민구 판사에게 ‘창의적 서울법대인상’을 수여하고 있다. /사진=강민구

— 조정이 활성화되려면 ‘디스커버리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셨다. 우리에겐 생소한 제도다.

“원고와 피고가 상대방의 주장을 변호사를 통해 미리 확인하고, 한 발씩 양보해서 합의로 해결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서로의 ‘패’를 보고, 그것을 토대로 전문가와 협의해 당사자들끼리 합의하는 것이다. 미국은 조정으로 끝나는 게 전체 사건의 80%에 달하고, 20%만 법원으로 넘어온다. 그런데 우리는 소액이나 벌금, 약식사건에 대한 정식재판까지 모든 사건이 법원의 문턱을 넘는다. 대법원에 올라가는 사건이 연간 4만 건이 넘는다. 이건 지극히 비정상적이다. 싸울 것만 법원에 와야 한다.”

— 법원에 대한 불신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에 대해 ‘극단적 판결’을 내리는 판사들을 무의식적으로 기피하는 심리까지 생겨났다.

“국민들이 판사의 ‘성향’을 파악한다는 건 참으로 불행이다. 국민과 사법부와의 신뢰를 엄청나게 파괴하는 흐름인데, 참으로 개탄스럽다. 소수 인원의 일인데, 마치 법조인 전체가 ‘나쁜 집단’으로 치부되는 것 같아 너무 안타깝다.”

— 시류(時流)에 휘둘리지 않는 판결을 하려면 심지가 굳어야 할 것 같다.

“판사가 기대야 할 동아줄은 헌법과 법률이다. 판사가 재판할 때 흔들린다면, 이 사건을 관통하는 헌법과 헌법정신이 무엇인가를 심사숙고하면 답이 나온다. 그리고 판사는 확립된 선례와 판례를 존중하고, 직업적 양심, 평균적이고도 상식적인 정의감, 저울과 같은 공평의식의 소유자여야 한다. 한비자(韓非子)가 ‘법불아귀 승불요곡(法不阿貴 繩不撓曲)’이란 말을 남겼는데, ‘법은 부귀에 아부하지 아니하고, 줄자는 스스로 굽어서 측량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 국민들 입장에서 보면 판사는 오라클(신탁)을 받은 존재 같지만, 의외로 인간적 스트레스가 심한 직업인 것 같다.

“30년 정도 판사 일을 하다 보니 ‘극한직업’이란 표현이 맞는 것 같다. 형사사건의 경우, 원고와 피고의 인생에 법원 판결이 미치는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판결문을 작성하다 보면 그야말로 애간장이 녹으면서 스트레스 수치는 하늘을 찌른다. 연수원 동기로 얼마 전 1주기(1월 11일)를 맞은 고 윤성근(尹誠根) 부장판사도 그런 경우다. 손지열(孫智烈) 전 대법관도 극한직업의 압박을 이기지 못해 암으로 고생하다가 71세로 돌아가셨다.”

— 판사님 건강은 괜찮으신가.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2002년 건강이 급격히 악화돼 사표를 낸 적도 있다. 이후 108배와 명상, 운동, 소식(小食)으로 이겨냈다. 폰에 있는 ‘삼성헬스’란 앱으로 2019년 9월부터 고교(용산고) 동창 열댓 명과 실시간으로 걷기 경쟁을 한다. 코로나19 기간 동안엔 청계산 산행을 할 수 없어 여의천을 왕복으로 걸어 1만 보를 채웠다. 늘 업무를 앞당겨 처리하는 습관이 몸에 밴 것도 건강 유지의 비결인데, 다 어머니 덕이다.”

— 어머니 덕이라니.

“내가 여섯 살 때(1963년)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면서 어머니가 혼자가 되셨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남다르다. 법관 임관 후 어머니가 보고 싶으면 평일 오후 6시에 서울서 차를 몰고 구미 선산으로 달려갔다. 밤 9시 이전에 도착해 어머니와 저녁을 먹고 이튿날 새벽 6시에 출발하면 오전 8시30분쯤 법원에 도착한다. 어머님과 한 방에서 자는 게 효도라고 생각해 2015년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1년에 15~20회 이상, 30년 이상 계속했다. 어머니를 뵈러 가려면 일을 미리 당겨서 해야 했다.”

— 2012년 노르웨이, 핀란드, 스웨덴 등 북유럽 3개국 법원의 제도 시찰을 다녀온 후 법정에 예술작품을 거는 ‘예술법정’을 시작하셨다. 현직 판사도 법정에 그림을 걸어달라고 했다던데?

“서울중앙지법에 근무하는 최아름 판사가 자신이 들어가는 창원지법 212호 법정에 모친이 그린 그림을 꼭 걸어달라 하더라. 최 판사 주례를 서면서 사연을 들어보니, 어머니 박덕기 화백이 최 판사 임관 6개월 전 암으로 돌아가셨다는 거다. 엄마는 아들이 법복(法服) 입은 모습을 보지 못하고 한을 품고 돌아가셨는데, 아들이 그림을 통해 한을 풀어드린 거다. 엄마가 자신을 법정에서 지켜보고 있으니, 엄마가 자신을 지켜주는 ‘수호천사’ ‘문수보살’인 거다. 참으로 소설 같은 이야기다.”

— 영화로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지난번 방송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작가에게 전해달라(웃음). 이번에 펴낸 《송백일기 1, 2》 ‘법창에 비친 초상화’에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시즌2에서 다룰 만한 내용들이 가득하다.”

강민구 판사가 주축이 돼 구축한 ‘디지털 법원’ 등 관련 종합법률정보시스템 사이트는 판례, 법령, 조약, 문헌 등 재판에 관한 모든 것이 들어 있고, 누구나 쉽게 검색이 가능하다. 그의 사법정보화 토대 구축의 노력 덕분에 우리나라는 현재 전자소송 분야에서 세계 3위권 수준이다.

— 언제부터 컴퓨터와 친해졌나.

“1985년 육군사관학교 교수부에서 3년간 교수 요원으로 근무한 것이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됐다. 1980년대 후반, 육사는 정보화 물결에 대비하기 위해 서울대 등 전산학과 출신 학사장교 수십 명을 교관으로 활용했고, 그곳에서 화면과 키보드만 있는 ‘멍텅구리 컴퓨터(더미 터미널)’를 처음 접했다. 4~5년 대학 후배뻘인 전산학과 출신 학사장교들에게 파스칼, 포트란 같은 코딩 언어를 배웠다.”

— ‘디지털 법원’ 구상은 언제 하게 됐나.

“1988년 의정부지원 초임 판사 때부터 중대형 조립 PC를 용산에서 사서 재판에 활용했다. 국가에서 판사들에게 컴퓨터를 준 게 1991년이다. 군인이 소총과 총탄을 자기 돈으로 산 셈이다. 교통사고 사망자의 정년까지 호봉승급을 계산기로 계산하면 일주일 정도 걸리는데, ‘쿼트로 프로’의 함수 기능으로 15분 만에 판결문 계산표를 완성하자 주위 판사들이 깜짝 놀랐다. 당시 19명의 판사도 한 달 안에 컴퓨터를 다 마련했다. 이를 계기로 스마트 법원 개념을 생각했다.”

— 윤석열(尹錫悅) 대통령도 ‘챗GPT’에 관심을 갖는 등 시중에서 인공지능 챗봇이 핫이슈다. 인공지능이 법조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 같나.

“두 거인 기업(구글 vs MS)이 글로벌 인공지능 시장에서 사운을 건 전쟁을 시작했다. 판결문이 공개돼 서버에 탑재만 되면 법률 분야 챗GPT도 한글로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우리가 궁금한 판결을 물어보면 챗봇이 바로바로 답변해줄 테니까. ‘A와 B가 토지를 가지고 아래의 내용으로 다투고 있다. 취득시효 법리가 이 사건에서 적용되는가’라고 물으면, 챗GPT 같은 인공지능 체계가 분석해 그 자리에서 답을 할 거다. ‘인격권 침해에 대한 판례를 정리해라’고 하면 판례를 쫙 정리해서 리포트를 낼 것이고.”

— 그렇게 되면, 미래엔 변호사란 직업도 사라지지 않을까.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추월하는 ‘특이점’이 2045년쯤이라 한다. 그렇게 되면 젊은 변호사 절반은 일자리를 잃을 것이다. 미국의 메이저 탑 100개 로펌엔 IBM이 인공지능인 ‘왓슨’을 기반으로 2016년에 만든 인공지능 변호사 ‘로스(ROSS)’ 시스템이 구비돼 있다. 이 때문에 미국 어쏘변호사(로펌 소속 변호사)들이 일감의 70%를 빼앗겼다. 앞으로 젊은 변호사들이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해야 한다. 결국 기초 법이론을 탄탄히 하고, 아날로그 지식으로서 여러 가지 책도 많이 읽어 창의력을 기반으로 콘텐츠를 구축해야 한다. ‘생각 근육’이 튼튼한 변호사만 생존하는 세상이 될 것이다.”

강민구 판사는 1988~2022년까지 34년을 실록화한 5400쪽, 7종의 현대판 ‘법조실록’을 전자책으로 편찬했다. '사진=강민구

강민구 판사는 1988~2022년까지 34년을 실록화한 5400쪽, 7종의 현대판 ‘법조실록’을 탄생시켰다. 부산지법과 창원지법원장 시절 기록한 《용지호를 벗삼아》 《금정산의 여명1》 《금정산의 여명2》 《코트넷의 글자취(법원전산망 코트넷과 함께한 22년, 2000~2021)》 《JUMP to START

COURT 백서》까지 합치면 11종, 8278쪽이다.

— 《조선왕조실록》에 비견할 만한 방대한 ‘법조실록’이 나왔다.

“참으로 꿈꾸듯이 만들어졌다. ‘에버노트’라는 혁신적 전자메모 도구에 초고(草稿)들이 다 저장이 돼 있었고, ‘에버노트’가 나오기 이전 기록은 PC의 하드에 저장해놓았었다. 최소한 20~30년의 기록을 불러내 소팅(분류)한 다음, 목차와 서문을 만들어 도깨비 방망이 휘두르듯이 뚝딱뚝딱 만들어낸 거다.”

— 기본적으로 전자책이지만 영인본도 찍으셨나.

“지인들이 주문하면 한 부라도 만들어 배송해드리는 체제다. 인세(印稅)는 받지 않는다. 모든 책은 목차를 누르면 그대로 점프가 되고, 독자분들께도 무료로 다운로드 주소(https://c11.kr/y4z5)와 큐알코드(335쪽 사진)를 제공해드릴 것이니 참고하시길 바란다.”

— 한국인의 심리상 ‘공짜’로 주면 오히려 귀한 줄 모르는데….

“그런 측면도 있을 것이다(웃음). 그런데 이 ‘법조실록’은 우리 법원 공식 데이터베이스에 전문이 다 등록돼 영구적으로 남을 것이다. ‘디지털 정약용’의 심정으로 지난 5년간 힘든 시기를 지내면서 기록으로 무언의 항변을 했고, 그 결과 영광스럽게도 우리 법원의 영구기록물이 됐다.”

— ‘법조실록’과 별도로 펴낸 전자책 《코로나 외신자료집》은 1만1000쪽에 달한다. ‘과학은 뒷전이고 정보의 무지가 3년을 지배했다’고 혹독하게 비판했다.

“코로나19 팬데믹 3년간 우리나라 전문가들은 묵언수행(默言修行) 중이었고, 복지부동의 코로나19 방역행정이 있었고, 과잉 격리 방역행정 때문에 애꿎은 자영업자 600만 명이 희생당했다. 문재인 정부의 ‘언발의 오줌누기식’ 시혜성 지원책은 그분들에게 효용이 되지 못했다. 집단적 공포심은 ‘정보의 무지’가 원인이었다.”

— 한국 사회의 향후 디지털 혁신의 방향에 대해 전망한다면.

“공적 분야의 리더들이 디지털 학습을 해야 한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자원을 능수능란하게 리더가 쓸 줄 알면 대한민국은 완전히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될 것이다. 내가 대통령실, 국회, 세종청사,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강연을 하려는 것도, 내 강연을 한 번이라도 들은 분들은 디지털 세상에 눈이 뜨인다. 디지털 능력을 활용하면 생산성을 어떻게 증대시킬 수 있는가 깨우치게 된다.”

— 종이책도 존재의 가치가 있다고 보는 건가.

“내 강의의 후반부는 항상 아날로그다. 종이책을 많이 읽으라고 권한다. 책을 읽어주는 앱도 있다. 아무리 인공지능이 발달해도 아날로그적 내공이 축적된 인간을 AI가 완전히 이기기는 힘들다. AI를 만들 때 코딩이나 컴퓨팅 과학자만 필요한 게 아니라, 법률가도 필요하고 인문사회학자도 필요하고, 다양한 아날로그적인 지식과 지혜를 AI에다 투입하는 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주말이면 자녀들을 서점에 풀어놓아 아날로그 내공을 쌓도록 했다.”

— 판사님이 애용하는 킬러앱을 소개해달라.

“전자 메모앱 ‘에버노트’, 책의 한쪽을 찍으면 즉시 번역되고 문자인식(OCR) 기능으로 텍스트도 추출되는 ‘구글렌즈’, 인공지능형으로 출시한 혁신적 녹취 앱 ‘네이버 클로바노트’, 글자로 된 활자를 음성으로 변환해주는 ‘토크프리’, 음성입력이 되는 윈도11의 코타나(Cortana) 한글 입력 기능, 구글 크롬에서 300쪽 이하 PDF 문서를 일괄 번역하는 번역 기능 등이다.”

디지로그 창안자인 이어령(李御寜) 전 문화부 장관이 생전에 1만5000꼭지를 갖고 있었다는데, 강 판사는 에버노트에 1만7743꼭지가 있다고 한다. 하루 10꼭지 이상씩 업데이트한 셈이다. 그걸 휴대전화 등을 이용, 검색어를 입력하면 0.01초 만에 텍스트들이 나타난다. 강 판사는 “일전에 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이 아침 9시에 전화해 학술지에 논문 한 편을 한 달 기한으로 부탁하기에 저녁 5시에 25쪽 분량의 논문을 각주까지 만들어 보냈더니 그 연구원이 ‘판사님은 도와주는 스태프가 있느냐’며 놀라던데, 스태프는 다름 아닌 에버노트”라고 했다.

— 2024년 정년을 맞으시는데, 퇴임 후 계획은.

“미국의 시인 에머슨의 말처럼, 나의 존재로 인해 그 누군가를 행복하게 했고, 떠난 나를 아쉬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 진정한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퇴임 후엔 비영리단체인 ‘디지털 상록수 교실’ 창설을 계획하고 있다. 심훈의 《상록수》가 아닌, ‘디지털 까막눈’을 깨부술 ‘디지털 상록수’ 운동이다. 내 블로그 이름이기도 하다. 이젠 디지털 시대에 어울리는 방식의 장·노년층 디지털 문맹 타파 운동을 펼치려고 한다. 지난 6월 10일 서울대법대동창회 선정 ‘제2회 창의적인 서울법대인상’을 받을 때, 시상식장에서 맨날 컴퓨터, 스마트폰 잡고 있다며

볼멘소리 하던 아내가 처음으로 날 인정해줘 흐뭇했다.”◎

※ 더 자세한 기사는 <월간조선>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