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 된 반정부단체 ‘자주통일 민중전위(자통)’ 조직원들이 과거 캄보디아 등지에서 미리 정해둔 수신호를 주고받는 식으로 북한 공작원을 접선하고, 일정 중간 옷을 갈아입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미행을 따돌리려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계에선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접선 방법”이라는 말이 나왔다.

'창원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경남진보연합 관계자들이 지난 1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15일 자통 총책 황모(60)씨 등 조직원 4명을 기소하면서 이 같은 내용을 공소장에 담은 것으로 나타났다. 황씨는 2016년 3월 캄보디아로 출국해 한 리조트 1층에 체류했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 옆방에는 북한 문화교류국 소속 북한 공작원 2명이 이미 체류 중이었다. 이 리조트는 한 방이 두 객실로 구성돼, 옆방과 서로 출입할 수 있는 내부 문이 있는 ‘커넥팅 룸’ 형식으로 이뤄져 있었다.

황씨는 이 리조트에 이틀 간 묵었는데, 그동안 외부 출입을 일절 하지 않고 방에만 머물렀다고 한다. 황씨는 또 면세점에서 구입한 술과 담배를 북한 공작원에 전달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황씨는 2019년 6월 조직원 정씨를 캄보디아로 보내 북한 공작원과 접선하도록 했다. 황씨는 정씨 출국 전 정씨와 만나 “앙코르와트에서 배낭을 멘 채 손에 지도를 들고 있으면 북한 공작원이 주변에서 손수건으로 땀을 닦을 것”이라고 알려줬다고 한다. 이어 공작원 전화번호를 건네주면서 “이쪽은 ‘권’이고 저쪽은 ‘박’이다. 오후 5시에 전화해보고 불발되면 오후 6시에 다시 해봐라”라고 지시했다. 황씨는 또 ‘아침에 호텔에서 나갈 때는 전날과 전혀 다른 옷으로 갈아입을 것’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둘 것’ 등을 상기시켰다고 한다.

정씨는 실제 황씨가 알려준 방법대로 앙코르와트에서 북한 공작원 김명성과 접선했다. 이후 정씨는 카페와 리조트 등에서 김명성을 만나 자통 활동 방안 등을 논의를 했다고 한다. 김명성 등은 북한 상부에 보고하겠다며 정씨의 얼굴 사진을 찍었고, 정씨에게 살아온 과정과 집주소 등을 쓰라고 요구해 받아냈다고 한다. 정씨는 이 자리에서 ‘충성결의문’을 작성했고, 공작금 7000달러를 받아온 것으로 전해졌다.

조직원 성모씨의 경우 2017년 6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북한 공작원을 접선했다. 성씨는 미리 약속된 장소인 황금사자상 근처에서 북한 공작원과 만나 시선을 교환했고, 북한 공작원이 앞서 걸으면 뒤따라 걸어가는 방식으로 식당으로 이동했다. 이들은 식당에 들어간 지 1분 만에 각자 자리를 떴고, 이후 황금사자상에서 다시 접선해 리조트로 이동했다고 한다. 성씨는 이어 ‘커넥팅 룸’ 형식의 리조트에 숙박하면서 북한 공작원과 방 안에서 만나 남북한 정세 등을 논의했다.

한 법조인은 “미행을 따돌리기 위해 나름대로 많은 연구를 한 것 같다”면서 “상당수 국민들이 ‘영화보다 더 영화 같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