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 씨가 지난 12월 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대장동 개발 사업 로비·특혜 의혹 관련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2022.12.5/뉴스1

대장동 사건을 수사하는 검찰이 김만배(화천대유 대주주)씨가 2019~2020년 천화동인 1호에서 빌린 473억원 가운데 80억원의 사용처를 은폐하려 한 정황을 잡고 수사 중인 것으로 20일 전해졌다. 이 돈은 김씨가 자신의 측근인 이한성 화천대유 공동대표, 최우향 화천대유 이사를 통해 작년 10월부터 올해 7월까지 숨겼다는 혐의가 있는 범죄 수익 260억원과는 별개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검찰이 추적 중인 80억원은 작년 4월 금융정보분석원(FIU)이 범죄 관련성 있는 자금으로 적발해 경찰에 통보했던 돈이다. 경찰 내사가 시작되자 김씨가 당시 화천대유 공동대표이던 이성문씨 등에게 ‘80억원을 당신들이 썼다고 경찰에 진술하라’는 취지로 지시했다고 한다. 이에 이씨가 ‘정치인이나 공무원에게 돈이 흘러가지 않았다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것 아니냐’고 하자, 김씨가 ‘그렇게 하면 수사의 단서가 된다’고 했다는 것이다. 당시는 검찰의 대장동 수사 착수(작년 9월)보다 5개월 앞선 시점이었다.

검찰은 80억원이 대장동 사업과 관련한 정관계 로비 등에 사용됐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자금 흐름을 추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돈은 수표 60억원과 현금 20억원으로 나눠졌다고 한다. 한 법조인은 “김만배씨가 수사 대상이 된다고 말한 것은 그 돈 자체가 문제라는 의미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김만배씨가 2021년 1월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에게 수표와 현금으로 줬다는 혐의가 있는 뇌물 5억원이 김씨가 사용처를 감추려 한 80억원의 일부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가 천화동인 1호에서 빌린 473억원 가운데 80억원을 제외한 나머지 자금의 행방은 검찰이 상당 부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만배씨는 천화동인 1호 대여금 중 140억원은 대장동 사업 초기에 빌렸던 자금을 갚는 데 썼다고 한다. 또 분양 대행업자 이모씨를 통해 토목업자 나모씨에게 건너간 109억원에 대해서는 검찰이 김씨를 횡령 혐의로 기소한 상태다. 김씨의 측근인 최우향 화천대유 이사에게도 50억원이 건너간 것으로 조사됐다.

작년 4월 김만배씨 등 대장동 일당은 80억원과 관련해 경찰 조사를 앞두고 있었다. 당시 서울 용산경찰서가 경찰청을 통해 금융정보분석원(FIU)이 포착한 ‘80억원 의심 거래’ 관련 자료를 받은 뒤 내사에 착수한 것이다. 하지만 용산경찰서는 이를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 이성문 당시 화천대유 공동대표만 한 차례 조사하고 김만배씨는 부르지도 않았다.

이 무렵 김씨가 측근들과 자금 사용처 은폐를 논의한 정황이 정영학 회계사(천화동인 5호 소유주)가 검찰에 제출한 이른바 ‘정영학 녹취록’에 나타나 있다.

이성문씨는 경찰 출석을 앞둔 작년 4월 21일 정영학씨와의 통화에서 천화동인 1호에서 나간 돈 중 80억원의 행방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며 “(화천대유 이사) 박모씨한테 (김만배씨가) ‘네가 자백해라’는 취지로 이야기했다고 한다”며 “우리가 돈을 횡령한 것도 아닌데 너희가 횡령했지 않았느냐고 하니 (김씨) 속마음이 뭔지 모르겠지만,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면 되냐 진짜?”라고 말했다.

또 이씨는 정씨에게 “(김씨에게) 그 돈이 흘러가서는 안 될 사람, 공적 신분이 있는 사람에게 흘러가지 않았다면 아무 관계가 없는 것 아니냐고 했다”며 “그런데 (김씨가) ‘야 그렇게 하면 수사에 단서가 된다’고 하더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다음 날인 작년 4월 22일에도 이성문씨는 정영학씨와의 통화에서 “(경찰이) 수표 추적을 (한다는) 전제하에 내가 돈을 40억, 50억 썼다고 하더라도 거짓말인 것이 들통날 것이고, (대장동 토지) 보상금에 썼다고 해도 들통날 것이고, 선배님(김만배씨)이 썼다는 이야기는 또 할 수도 없고”라고 말했다.

같은 날 김만배씨는 정영학씨와 통화하며 “나중에 (경찰이) 수표 추적을 다 했는데 (돈이) 이상한 데서 나오면 어떻게 하느냐”고도 말했다.

한편 경찰은 작년 9월 ‘대장동 의혹’이 불거진 뒤에야 80억원에 대해 “초기 판단이 잘못됐다”며 경기남부경찰청으로 사건을 이첩했다. 앞서 5개월간 내사만 진행하며 사건의 실체에는 손도 대지 않았던 것이다. 작년 말 이 사건은 다시 서울중앙지검으로 넘어왔고, 현재 검찰이 이 돈의 사용처를 추적 중인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