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대 대법원장을 지낸 윤관(87) 전 대법원장이 14일 오전 별세했다.

2010년 2월 22일 오후 서울 코리아나호텔에서 본지 강천석 주필과 윤관 전 대법원장이 대담을 가졌다. 윤관 전 대법원장이 최근 법관 문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있다./오종찬기자

고인은 1935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나 광주고와 연세대 법대를 졸업하고 1958년 제10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했다. 1962년 광주지법 판사로 법관 생활을 시작한 고인은 1993년부터 대법원장으로 6년간 사법부를 이끌었다.

고인은 김영삼·김대중 정부에서 대법원장을 지내면서 사법 제도 개혁과 사법부 독립성 확보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인은 1997년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한 피의자를 판사가 직접 심문해 영장 발부 여부를 결정하는 ‘영장실질심사’ 제도를 도입했다. 이는 불구속 재판 확대로 이어졌다. 고인은 1970년대 서울형사지법 재판장 시절 피고인들이 수갑을 풀고 재판을 받도록 했다고도 한다.

고인은 사법부 위상을 높이는 차원에서 대통령 해외 순방 때 대법원장이 공항에 나가는 관행을 없앴으며 대법원장실 등에 걸었던 대통령 사진을 떼도록 했다. 국가안전기획부 직원들이 법원에 출입하지 못하게 하는 조치도 취했다. 또 특허·행정법원과 시·군법원을 새로 만들어 법원을 전문화하고 국민의 사법 접근성을 높였다.

고인은 대법원장 6년간 매일 점심을 구내식당에서 배달시켜 집무실에서 혼자 해결했다. 공식 일정을 빼면 외부인은 물론 내부와 접촉도 자제했다. 매달 한 번 전원합의체 판결 선고 후 대법관들과 만찬을 하는 정도였다. 후배 법관들은 “수도승 같은 생활을 하셨다”고 전했다. 대법원장 판공비를 절약해 3~4년간 전국 법원 직원들에게 1인당 2만~3만원씩 추석 격려금을 줬다는 일화도 있다.

고인은 격변의 시기에 대법관과 대법원장을 지냈다. 1986년 대법관에 임명된 그는 1989년부터 제9대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겸하면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당선된 14대 대통령선거(1992년)를 관리했다. 당시 “역대 선관위원장 중 가장 안정적으로 선관위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고인이 대법원장이었던 1997년 대법 전원합의체는 군사 반란, 뇌물 수수 혐의 등으로 기소된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해 각각 무기징역, 징역 17년을 확정했다.

고인은 연세대 출신 첫 대법원장이었고, 유태흥 전 대법원장 이후 13년 만에 처음으로 임기를 다 채우고 1999년 9월 퇴임했다. 퇴임 한 달 전 처음이자 마지막인 외부 강연에서는 “사법권이 정치권력, 단체, 여론 등 어떤 간섭으로부터도 독립해야 한다”고 했다. 퇴임사에선 “법관이 사명을 다하지 못하면 국민이 믿고 의지할 마지막 언덕마저 잃게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퇴임 후인 2010년 본지와 특별 대담에서 “법관은 편향된 이념이나 가치관을 갖고 판결을 해서는 안 된다”며 “자기 자신으로부터 독립하지 못하고 아집과 독선에 사로잡혀 오만해질 때 어김없이 외부 비판과 간섭을 불러오게 된다. 이런 것이 쌓여 결국은 사법부의 독립과 재판의 독립을 해치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고 했다.

서울고법 부장판사와 서울지법 북부지원장, 전주지법원장 등을 거쳤던 고인은 37년 법관 생활의 공로를 인정받아 2015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대법원은 법원장(葬)으로 장례를 치르기로 했다. 유족은 부인 오현 여사와 아들 윤준 광주고등법원장, 윤영신 에듀조선 대표(전 조선일보 부국장), 윤영보, 윤영두씨.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영결식 16일 오전 8시, 발인 오전 9시, 장지는 대전 현충원. (02)2227-7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