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동 사건’ 수사팀 안팎에서 김만배를 두고 “법조기자답다”는 말이 나온다. 김만배는 30년 기자생활 중 법조기자만 약 20년 했다. 머니투데이에서 부장, 부국장을 했지만 ‘법조팀’에 계속 적을 뒀다. 드문 일이다. 지난해 8월말 ‘대장동 의혹’이 불거질 때까지도 법조기자였다. 권순일 전 대법관, 박영수 전 특별검사 등 그의 입에서 법조인 이름이 줄줄줄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김만배는 ‘모른다’ ‘기억나지 않는다’ ‘진술하지 않겠다’ 같은 말을 방패로 삼는 여느 ‘법 기술자’들과 다른 모습이다. 묻는 말에 친절하게 다 답한다. 어떤 사안은 시원하게 인정도 한다. 다만 ‘혼선’을 부르는 거짓말이 여기저기 섞여 있다. 죄를 덜고 돈을 지키려는 수사 대응 기술이라고 검찰은 보고 있다.

작년 10월 14일 오전 대장동 의혹 핵심 인물인 김만배가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하며 머리를 쓸어 넘기고 있다. / 이태경 기자

1️⃣기술 하나 : 자금추적 어려운 ‘故人'에게 떠밀기?

2014년 지방선거를 전후해 김만배는 남욱 등으로부터 1차로 12억원, 2차로 20억원 등 총 32억원을 받았다. 대장동 개발을 민관합동방식으로 추진하는데 쓸 로비자금이었다. 이 돈은 대장동 사업이 성사되면 분양·토목사업권을 주기로 약속하고 업자들에게 빌렸다. 당시만해도 김만배는 지분이 있는 동업자이기보다는 ‘용역자(로비스트)’에 가까웠다.

작년 12월 김만배의 검찰 진술이다. “2014년 5~8월 현금으로 12억원을 받은 것은 맞습니다. 당시 최고의 카드가 최 회장이라고 생각해 돈을 많이 줬어요. 현금으로 7억~8억원 정도 준 것으로 기억합니다.” “성남지역의 유명한 로비스트죠.”

김만배는 앞서 2012년 총선 때 민주당 전·현직 의원한테 로비할 당시에도 8000만원을 최 회장에게 줬다고 주장했다. 검사가 “2년 전 (총선 때) 최 회장에게 로비해 실패했는데 왜 또 거액을 줬느냐”고 묻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줬다. 그분이 말도 (잘 될 것처럼) 그럴듯하게 했다”고 했다. 또 “최 회장이 시의원을 많이 알고 있어서 시의원들을 통해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는데 도움을 줬다”고 했다.

2014년 7월 28일자 머니투데이 지면에 실린 이재명 성남시장 인터뷰 기사. 당시 법조팀장 김만배가 직접 인터뷰했다. /머니투데이 지면 캡처

최회장은 누구일까.

성남지역에서 소규모 건설업체를 운영하면서 성남시와 시의회 등에 발이 넓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2년 최 회장(당시 55세)은 시민운동을 하던 이재명 변호사가 의혹을 제기한 김병량 성남시장의 ‘분당 파크뷰 특혜분양 사건’에 연루돼 구속도 됐었다. 성남지역 한 인사는 “최 회장은 이재명과 원수사이였던 김병량 시장 쪽 사람이었다. 이재명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최 회장에게 돈을 줬다는 건 말도 안된다”고 했다.

검찰은 김만배 진술이 앞뒤가 안맞는다고 보고 있다. 2012년 로비 때는 이재명 시장의 대장동 공공개발 방침을 민간개발로 바꿔야한다는 이유가 있었지만, 2014년엔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다. 이미 성남도시개발공사가 설립돼 대장동 일당이 위례신도시 개발 사업자로 선정된 뒤였다. 당시는 남욱 일당이 유동규와 연결돼 룸싸롱과 일식집 등에서 뇌물(3억5200만원)을 주고받던 시기였다. 김만배는 2014년 7월 28일 재선에 성공한 이재명 시장과 직접 인터뷰 하는 등 안면을 튼 사이였다.

김만배 진술을 보면, 이재명 대표와의 관련성에 선을 긋는 모습이다.

문 : 최 회장이 김인섭(이재명의 측근)과 같이 일하는 관계인가요?
답 : 김인섭은 이재명 쪽 사람이고, 최 회장은 한나라당 성향인 분입니다. 오히려 김인섭과는 절대 거래를 하면 안된다고 했어요. 시장 측근이라고 하도 떠들고 다녀서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문 : 이재명 시장 측에 로비를 하지는 않았나요?
답: 당시 이재명 시장이 이석기 자금줄로 지목된 청소용역업체에 특혜를 준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어서 시장직을 유지하기 힘들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부탁하지 않았습니다.
2002년 특혜의혹 사건이 불거진 경기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파크뷰' 아파트 건설현장. /조선DB

그렇다면 김만배가 최 회장에게 돈을 줬다고 진술한 이유는 뭘까. 답은 그의 신변에 있다. 최 회장은 2016년 69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법조계 한 인사는 김만배 발언을 이렇게 해석한다. “망자(亡者)를 등장시켜 자금추적 등 입증을 어렵게 만들면서, 이재명 쪽과 분명하게 선을 긋는 계산된 진술로 보인다. 검찰 입장에선 확인을 안할 수도 없고, 확인하기 쉽지도 않은 진술이어서 결과적으로 수사력만 낭비하게 된다.”

2️⃣기술 둘 : 공소시효 지난 범죄 인정해 ‘진실성’ 높이기

이화영 전 경기부지사와 관련된 김만배의 진술은 상당히 적극적이다. 2012년 총선에서 강원도 동해·삼척 지역구에 출마했던 이화영 측에 불법 정치자금을 전달한 사실은 묻지도 않았는데 먼저 털어놓는다. 이화영은 성균관대 사회학과 81학번, 김만배는 같은 대학 동양철학과 84학번. 둘은 대학 시절 학생운동을 같이 해 그때부터 친하게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김만배는 검찰에서 이렇게 말했다.

문 : 2012년 4월 남욱과 배성준이 준 현금 2억원을 세어보지도 않은 건, 다른 사람에게 바로 전달했기 때문인가요?
답 :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아는 형이 검찰수사를 받다가 공천을 못받아서 무소속으로 국회의원 출마를 했습니다. 그 형을 만나서 일행들 여비도 주고, 휴가내고 선거운동도 돕고, 동네 사람들 밥도 사주고 하면서 8000만원을 썼습니다.”
문 : 아는 형이 누구인가요?
답: 이화영입니다.

하지만 이재명 대표와의 관련성은 모두 부인한다. 검사가 “이화영과 이재명의 관계는 어떤가”라고 묻자, 김만배는 “2018년 7월 이재명 시장이 경기도지사가 되고, 이화영이 경기도부지사로 가면서 서로 친해졌다고 들었다”며 “이화영은 이해찬 의원의 복심인데, 이해찬이 경기부지사로 보냈다고 들었다”고 했다. 이어 검사가 “이화영은 경기도지사 선거 때 이재명 캠프의 선대본부장이었는데...” 하고 묻자 “선거운동 당시 캠프에 있었는지는 몰랐다”고 했다. 선거자금을 대준 2012년 당시엔 이재명과 전혀 관련이 없다는 주장이었다.

그렇다면 김만배가 이화영에 대해 왜 그렇게 구체적으로 진술했을까.

검찰 안팎에선 이 역시 ‘계산된 진술’이라고 봤다. 우선 2012년 4월 이화영에게 준 8000만원은 정치자금법(7년)이나 공직선거법(6개월) 모두 공소시효가 끝난 범죄다. 대장동 개발을 공공개발에서 민간개발로 바꿀 수 있는지 민주당 A 의원 등에 알아봐준 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죄에 해당한다. 이 역시 공소시효(7년)가 지났고, 준 사람은 처벌도 안받는다. 검찰 한 관계자는 “시효가 지난 범죄 사실을 인정하는 건, 수사에 협조하는 모습을 보이는 동시에 자기 진술의 진실성을 높이려고 하는 것”이라며 “변호인들과 협의해 철저하게 준비한 대응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2018년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운데)와 이재명 경기도지사(왼쪽), 이화영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경기도 고양시 한 호텔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의 평화번영을 위한 국제대회 환영만찬'에 참석하고 있는 모습. /뉴스1

이재명 대표에게 보내는 ‘숨은 메시지’라는 해석도 있다. 대장동 사건에 참여하고 있는 한 변호사의 말. “(김만배가) 진술할 당시는 대통령선거가 한참 뜨거웠던 시기다. 측근에게 준 돈은 인정하면서도 이재명과의 관련성을 부인하는 것은 ‘당신은 보호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화영은 지난 9월 28일 구속됐다. 쌍방울로부터 법인카드 3억원, 법인차량 3대 리스비 1000만원 등을 수수한 혐의다. 그는 이재명 대표가 경기도지사로 있을 때 평화부지사를 지냈고, 최근까지 경기도 산하 공공기관인 킨텍스 사장을 맡았다.

3️⃣기술 셋 : 오락가락 진술로 ‘녹취록’ 신뢰 떨어뜨리기

지난해 10월 9일 동아일보에 이런 기사가 실린다.

<< 2019, 2020년경 위례신도시 개발 민간사업자인 위례자산관리의 대주주 정재창씨가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장 직무대리의 ‘3억원 뇌물 사진’을 보여주며 150억 원을 요구하자 김씨(김만배)가 정 회계사(정영학), 천화동인 4호 소유주 남욱 변호사와 대책을 논의했다. 정 회계사와 남 변호사가 “천화동인 1호 배당금(약 1208억 원)에서 일부를 부담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자 김씨는 “그(천화동인 1호 배당금) 절반은 ‘그분’ 것이다. 너희도 알지 않느냐”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

김만배는 정영학 녹취록에 등장하는 ‘그분’에서부터 진술이 오락가락했다. 보도 당일 김만배의 변호인은 “그와 같은 말을 한 사실이 전혀 없으며 사실과도 다르다”고 밝혔다. 사흘 뒤인 10월 12일 새벽 김만배는 검찰조사를 마치고 나와 ‘그분’ 발언에 대해 묻는 기자들에게 “제 입장에서는 더 이상의 구(舊) 사업자 갈등은 번지지 못하게 하려는 차원에서 그리 말한 것”이라고 했다. 녹취록 속 ‘그분’ 발언을 인정한 것이었다.

재차 논란이 되자 김만배 변호인 측은 “(김만배가) 장시간 조사로 정신없는 와중에 질문의 취지를 이해 못하고 잘못 답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즈음 김만배는 본지에 “동업자들끼리 이익 배분을 놓고 다투는 과정에서 서로 사용한 경비 등을 부풀린 것이 녹취록으로 둔갑했다”며 “(정영학이) 몰래 녹음하는 줄 알고 일부러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고 했다.

지난 2월, 녹취록에 등장하는 ‘그분’이 조재연 대법관으로 특정됐다는 보도도 나왔다. 녹취록에서 김만배가 조 대법관을 지칭하며 “그 분이 다 해서 내가 원래 50억을 만들어서 (딸의) 빌라를 사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자 민주당은 ‘이재명은 그분이 아닙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윤석열 후보와 국민의힘은 사과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 대법관은 곧바로 기자회견을 자청해 “사실무근이며 심각한 명예훼손”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딸들의 월세계약서, 관리비 납부 확인서 등 자료만 55쪽 분량을 내놨다.

작년 10월 28일 대장동 일당 중 핵심인 남욱 변호사가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고 있는 모습. /뉴스1

논란의 ‘그분’은 8개월이 지난 10월 28일 재판에서 다시 등장했다. 남욱이 정영학에게 직접 신문했다.

남욱 : 김만배씨가 2015년 2월 또는 4월 나에게 ‘25%만 받고 빠지라’면서 ‘본인 지분도 12.5%밖에 안 되고 나머지는 이재명 시장 측 지분’이라고 말했다. 당시 강남 술집에서 김씨, 나 그리고 당신 셋이 만난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를 기억하느냐.
정영학 : (셋이서 만났다) 그 정도까지는 기억한다. 이 시장 측 지분 관련 이야기는 전혀 기억이 없고 주주 명부에도 그런 기록이 전혀 없다.

재판이 끝난 뒤 법정을 나온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은 ‘이재명 측 지분’에 대해 “그건 밝혀질 것이다. 죄 지었으면 다 밝혀진다. 흔적이 남을 것이니...”라고 말했다.

흥미진진 대장동 스토리. [에그스토리]가 대장동 일당의 ‘돈 저수지’를 파헤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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