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산하 법원행정처가 법원 노조의 ‘과도한 요구’를 단체협약에서 수용한 배경을 놓고 법원 안팎에서는 “노조를 우군 삼아 ‘양승태 대법원’을 적폐로 몰려는 김명수 대법원장의 성향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왔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의 모습./연합뉴스

김 대법원장은 2017년 9월 전임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에 대해 ‘사법 적폐 청산’을 외치며 사법부 수장으로 취임했다. 법원 노조는 2018년 3월 전국공무원노조가 합법화되면서 처음 단체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김 대법원장은 같은 해 4월 사법부 사상 처음으로 법원 노조와 공식 면담을 가졌고, 이후 일선 법원을 방문할 때마다 법원 노조원들과 만났다. 법원 노조는 김 대법원장의 ‘사법 적폐 청산’을 지원했다. 법원 노조는 2018년 6월 “’양승태 대법원’에서 사법 행정을 담당한 고위 법관은 대법관 후보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대법원장이 그해 9월 법원행정처가 판사 관료화의 원인이라며 폐지 방침을 밝히자, 법원 노조는 “대법원장의 현실 인식에 동의한다”고 했다.

2019년 3월 체결된 첫 단체협약은 이런 분위기에서 나왔다. 법원행정처의 핵심 관계자는 “2019년 당시 조재연 법원행정처장이 ‘어지간한 요구는 다 들어주라’고 했고 그에 따라 노조 요구를 대폭 수용한 것으로 안다”며 “2021년 2차 단체협약 체결 때 추가로 해줄 것이 없을 정도였다”고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2019년 단체협약(29쪽)이 2021년 단체협약(17쪽)보다도 분량이 많다. 노조원 결혼식과 가족 장례식에 대법원장 화환과 조화 보내기 같은 내용은 첫 단체협약에 들어갔다. 한 부장판사는 “대법원장이 노조 지지 등을 바탕으로 ‘양승태 대법원’에 대한 인적 청산을 하고, 그 반대 급부로 노조 요구를 대부분 들어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일선 법원에서 노조 지부와 법원장 간에 합의안이 만들어지는 과정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상당수 법원에서 노조 요구대로 법원장이 ‘서명’만 하다 보니 황당한 내용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법원장을 지낸 한 법관은 “판사들로선 마음에 안 들어도 노골적으로 반대를 못 하는 분위기”라고 했다.

반면, 사법부 구조가 법관과 일반 직원으로 이원화된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약자’인 노조 입장을 많이 반영하는 단체협약으로 이어진다는 시각도 있다. 한 법원장은 “법원행정처가 일반 직원들의 소외감을 배려하는 차원이기 때문에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