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의 ‘론스타 사건’ 중재 판정부는 31일 한국 정부는 론스타가 외환은행 매각 지연으로 입은 손실 중 일부에 대해서만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하나금융에 매각할 때 정부 승인이 늦는 바람에 생긴 손해의 절반만 배상하면 된다는 것이다. 반면 외환은행을 HSBC에 매각하려다 승인 지연으로 무산됐다거나, 우리 정부가 자의적 과세를 하며 면세 혜택을 주지 않았다는 론스타의 주장은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론스타의 주요 주장 4개 중 1개에 대해 50% 배상만 인정한 것이다.

중재 판정부는 2011~2012년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하나금융에 매각하는 과정에 금융위가 매각 가격이 하락할 때까지 승인을 미뤘다고 했다. 해외 투자자에게 불공정한 대우를 했다는 것이다. 승인 지연으로 외환은행 매각이 늦어져 론스타가 5790억여원을 손해 봤다고 했다.

다만 중재 판정부는 우리 정부는 2890억여원만 배상하면 된다고 했다. 론스타가 외환카드 주가 조작 사건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실이 외환은행 매각 가격 하락에 영향을 줬으니 론스타가 손해의 50%는 자체 부담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중재 판정부 3인 중 한 사람은 “론스타의 주가 조작 유죄 판결로 매각 승인 심사가 지연됐으니 한국 정부에 책임이 없다”는 소수 의견을 냈다.

이 밖의 론스타 주장에 대해서는 중재 판정부가 모두 기각 결정을 내렸다. 론스타는 2007~2008년 외환은행을 HSBC에 매각하려 했을 때 한국 금융당국이 승인을 지연한 탓에 매각이 무산돼 손해를 봤다고 했다. 그러나 중재 판정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론스타가 한-벨기에·룩셈부르크 투자보장협정을 근거로 들었는데 이 협정은 론스타가 HSBC와 외환은행 매각 논의를 하던 때에는 아직 효력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론스타는 또 한국 정부가 이중과세방지 협정에 따른 면세 혜택을 인정하지 않고 세금 8500억원을 제멋대로 매겼다고 했다. 중재 판정부는 “한국 정부가 (과세 관련) 국제 기준을 지켰고 (론스타에) 차별적 대우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날 중재 판정부 결정은 2012년 론스타가 우리 정부를 상대로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S)’을 제기한 지 10년 만에 나왔다. ISDS는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법령, 정책 등으로 피해를 봤을 때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는 장치다. 론스타 소송은 외국 투자자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ISDS를 제기한 첫 사건이었다. 정부는 국무조정실장을 의장으로 하고 기획재정부, 외교부, 법무부, 금융위원회, 국세청 등이 참가하는 태스크포스(TF)를 가동했다. 법무법인 태평양과 미국 로펌 아널드 앤드 포터가 대리인으로 선임됐다. 정부가 지출한 법률 비용이 478억원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