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수완박법’이 대폭 축소시킨 ‘검찰 직접수사 대상’을 상당 부분 원상복구시키는 시행령(대통령령) 개정안을 법무부가 11일 입법 예고했다. 다음 달 10일부터 검수완박법에 규정된 유예 기간이 끝나면 검찰 수사 대상은 ‘6대 범죄’에서 ‘2대 범죄’로 대폭 축소되고, 경찰이 그 부분을 넘겨받게 된다. 법조계에서는 “검사의 수사 범위가 지나치게 제한돼 주요 범죄에 대한 대응이 약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그동안 대응 방안을 마련해 왔던 법무부는 이날 검찰 수사권 관련 시행령 개정을 통해서 ‘검찰 수사 대상 축소’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내놨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검수완박으로 인한 수사 지연이나 국가 수사 역량 약화 등 부작용에 대비하기 위해 시행령 개정안을 준비했다”고 밝혔다. 반면, 야당은 “시행령으로 법률을 무시한다면 입법권을 정면으로 부정한 것”이라며 반발했다.

법무부는 검수완박법 시행 이후에도 검사가 직접 수사할 수 있게 돼 있는 부패·경제 등 2대 범죄의 범위를 확대하기로 했다. 원래 공직자 범죄로 돼 있던 직무 유기, 직권 남용, 허위 공문서 작성 등이 부패 범죄로 분류됐다. 선거 범죄에 속했던 정치자금법 위반, 선거 매수 등도 부패 범죄에 포함했다. 검수완박이 되더라도 이런 범죄를 검사가 직접 수사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경제 범죄에는 서민 갈취 조직 폭력, 기업형 조폭, 보이스 피싱 등 민생 침해 범죄가 추가됐다. 마약 유통 관련 범죄도 검사가 직접 수사할 수 있는 경제 범죄에 포함하기로 했다.

문재인 정부가 도입한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라 벌어진 문제점도 일부 바로잡게 됐다. 법무부는 무고·위증 등 ‘사법질서 저해 범죄’를 중요 범죄에 포함해 검사가 직접 수사할 수 있도록 했다. 또 법무부는 경찰이 송치한 사건 중 ‘범인, 범죄 사실 또는 증거가 공통되는 사건’은 ‘직접 관련성’이 있다고 보고 검사가 수사할 수 있게 했다. 수사 대상의 직급, 범죄 피해 규모 등을 제약하는 시행 규칙도 폐지하기로 했다. 그동안 뇌물 사건은 4급 이상 공무원만 검사가 직접 수사할 수 있었지만 시행 규칙이 폐지되면 직급에 관계없이 모든 공무원의 뇌물 사건을 수사할 수 있다. 알선 수재, 배임 수재, 의료 리베이트 등 사건도 5000만원 이상을 수수한 범죄만 검찰의 수사 대상이었는데 앞으로는 액수에 관계없이 모두 검사가 직접 수사할 수 있게 된다. 법무부는 관계기관 의견조회 등을 거친 뒤 다음 달 10일 검수완박법이 시행되면 개정 시행령을 적용한다.

법무부가 시행령 개정을 통해 검수완박법 저지에 나선 것에 대한 논란도 있다. 일각에서는 ‘악법도 법’인데 하위 법령인 시행령으로 법률을 건너뛰려는 측면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입법 취지에 맞는 범위 안에서 구체적 사안에 대해 정할 수 있도록 폭넓게 시행령에 위임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될 것 없다”는 해석이 우세하다. 사법연수원 교수 출신 한 변호사는 “법률을 해석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문헌 해석이며 법률에 ‘등’이라는 게 있다는 것은 시행령으로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정하라는 것”이라고 했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검수완박법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검수완박법 개정에는 야당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민주당이 국회 과반인 169석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한편 야당은 법무부의 대통령령 개정안에 “검찰개혁 무력화 시도를 좌시하지 않겠다”며 반발했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법무부가 국회에서 통과된 법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또다시 대통령령으로 주요 수사 범위를 원위치시킨다면 국회와 전면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 법제사법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12일 법무부를 비판하는 성명서를 낼 계획이다. 법사위 민주당 간사인 기동민 의원은 본지 통화에서 “입법부를 존중하지 않겠다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법사위 소속 박주민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한 장관의 이런 시도는 법치주의 근간을 흔드는 폭거”라며 “스스로 멈추지 못하겠다면 국회법상 절차와 가능한 모든 사법적 조치에 나서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