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최근 서울중앙지검 ‘채널A 사건’ 수사팀이 한동훈 검사장(현 사법연수원 부원장)을 무혐의 처리하겠다고 이정수 중앙지검장에게 보고한 것과 관련, ‘한동훈 검사장 수사를 계속하라’는 취지의 수사지휘권 발동 절차들을 31일 준비했다가 법무부 내부 반발로 철회한 것으로 전해졌다. 법무부 검사들이 “‘직권남용’의 소지가 있다”며 반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31일 오전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정부과천청사 법무부로 출근하고 있다. 박 장관은 최근 서울중앙지검 ‘채널A 사건’ 수사팀이 한동훈 검사장을 무혐의 처리하겠다고 보고한 것과 관련해, ‘수사를 계속하라’는 취지의 수사지휘권 발동 절차를 준비했다가 법무부 내부 반발로 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이날 오후 박 장관은 지난 2020년 추미애 당시 법무장관이 ‘채널A 사건’ ‘윤석열 당선인 가족 사건’ ‘라임 사건’에 대해 박탈했던 ‘검찰총장의 지휘권’을 복원하는 수사지휘권을 발동하려 했다. 당시 검찰총장은 윤석열 당선인이었는데 해당 사건들에 대한 ‘검찰총장 지휘권 박탈’ 상태는 김오수 현 검찰총장에까지 이어졌다.

박 장관은 김 총장의 지휘권을 복원시킨 뒤 김 총장으로부터 해당 사건 내용들을 보고받고 특히 채널A 사건에 대해 ‘한 검사장을 계속 수사하라’는 수사지휘권을 다시 발동할 예정이었다고 복수의 법무부·검찰 관계자들이 전했다. 두 단계를 거치려 한 것은 법무장관은 오직 검찰총장을 상대로만 수사지휘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검찰청법 8조 때문이라고 한다. 한 관계자는 “한동훈 검사장이 압수당한 아이폰 비밀번호를 수사팀에 알려주지 않았다는 점을 내세워 박 장관이 ‘한동훈 무혐의 처리’를 막는 지휘권을 발동하려 했던 것으로 안다”고 했다.

첫 단계로 김 총장의 지휘권을 회복시키는 수사지휘권 발동 조치는 이날 오후 대검과 중앙지검에도 통보가 됐지만, 발표 직전에 취소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법무부 내부 반발 때문이라고 한다. 한 법조인은 “법무장관이 사건 내용도 모르는 상태에서 특정인을 겨냥한 수사지휘권 발동을 하겠다는 것은 직권남용 소지가 크다”며 “그 절차에 관여한 법무부 검찰국 검사들은 자신들도 ‘공범’이 돼버릴 수 있다고 생각한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법무부는 이날 오후 늦게 “박범계 장관은 추미애 전 장관이 두 차례에 걸쳐 배제하게 했던 검찰총장의 수사지휘권을 전체 사건으로 원상 회복하고자 검토했다”며 “장관이 특정인에 대한 무혐의 처분을 막고자 수사지휘권을 발동한다는 식의 진의가 왜곡돼 오해의 우려가 있어 논의를 중단하기로 했다”는 공식 입장을 내놨다. 한 대검 간부는 “법무부 안에서 북 치고 장구 치다 끝나서, 뭐 이런 해프닝이 있나 싶다”고 했다.

하지만 박 장관은 이날 퇴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왜곡된 내용이 기사화돼 오해의 우려가 있다”며 논의를 중단했다고 밝혔다. 논의 과정에서 검찰국 반발이 없었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이견이 없었다”고 했다. 다만, 직권남용이 우려된다는 지적이 없었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법조인으로서 충분히 합리적으로 생각했다”고 했다.

채널A 사건에 집중된 법무장관의 ‘검찰총장 수사지휘권 발동’

이른바 ‘채널A 사건은’ 지난 2020년 이동재 전 채널A 기자와 한동훈 검사장이 공모해 수감 중인 신라젠 대주주 이철씨를 상대로 유시민씨 등 여권 인사 관련 폭로를 강요했다는 내용으로, 서울중앙지검이 지난 2020년 4월 수사에 착수했다.

2020년 7월 추미애 전 장관이 이 사건에 대한 검찰총장 지휘권을 박탈하는 내용의 수사지휘권을 발동함으로써, 이후 대표적 친정권 검사들로 꼽히는 이성윤 전 중앙지검장과 이정수 현 중앙지검장은 전권(全權)을 갖고 수사를 진행했다.

그러나 ‘강요 미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 전 기자에겐 작년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고, 수사팀은 작년 1월부터 ‘한동훈 무혐의 처리’ 계획을 반복적으로 수뇌부에 보고했다. 박 장관의 이번 ‘지휘권 발동 준비’는 최근 중앙지검 수사팀이 11번째 ‘무혐의 처리 보고’를 올린 상황에서 나왔다.

임기가 1개월 남짓 남은 박범계 장관이 윤석열 당선인의 측근인 한동훈 검사장을 겨냥해 수사지휘권을 발동하려 한 것을 두고 법조계에서는 “정치적 의도가 다분해 보인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 법조인은 “여권의 강성 지지층 정서를 의식해 의도적으로 무리수를 두는 것”이라고 했다. 하창우 전 대한변협 회장은 “검찰의 중립성을 임기 말까지 흔들려는 반(反)법치의 행태로 정치인 장관이 얼마나 민주주의에 위협이 되는지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추 전 장관 세 차례, 박 장관 한 차례 등 문재인 정부 법무장관들은 모두 네 차례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이날 박 장관이 포기하지 않았다면 사례는 총 여섯 차례로 늘고, 하나의 사건을 놓고 세 번에 걸쳐 법무장관 지휘권이 발동되는 상황이 벌어질 뻔했다. 이전까지 법무장관의 지휘권 발동 사례는 노무현 정부 때 한 번뿐이었다.

박 장관은 윤 당선인 공약인 ‘법무부 장관 수사지휘권 폐지’에 대해서도 최근 공개적으로 반대 의견을 밝혔다. 이날 박 장관이 지휘권 발동을 준비하려 했다는 게 알려지자 법조인들은 “박 장관의 정치적 행태가 ‘법무부 장관 지휘권 폐지’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격이 돼 버렸다. 한마디로 자가당착인 셈”이라고 했다.

이날 검찰 내부에서는 “박 장관이 ‘압수한 한동훈 검사장의 아이폰을 이스라엘에 보내 비밀번호를 풀라’는 식으로 수사지휘권을 행사해 ‘한동훈 무혐의 처리’를 막으려 했다”는 얘기도 나왔다. 비밀번호가 걸려 한 검사장 아이폰을 포렌식하지 못했다는 것은 이성윤 전 중앙지검장, 이정수 현 중앙지검장이 ‘무혐의 처리 결재’를 1년 넘게 미뤄왔던 이유이기도 했다.

추미애 전 장관의 경우, 2020년 11월 피의자가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밝히지 않으면 처벌하는 법을 만들겠다고 했다가 논란을 자초했다. 민주당 의원들도 “한 검사장 아이폰이 풀리지 않은 상황에서 무혐의는 안 된다”고들 했다. 추 전 장관은 작년 9월 직무상 비밀에 해당하는 한 검사장의 통화·카톡 내역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가 한 검사장에 의해 공수처에 고발당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다수의 법조인들은 “헌법이 보장한 방어권 행사를 무시한 발상”이라고 했다. 최창호 변호사는 “수사 협조를 하지 않는 것을 이유로 들어 무혐의 처분을 않는다는 것은 우리 사법 체계에서 허용되지 않는 논리”라고 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친정권 검사들이 2년 넘게 수사하지 않았느냐. 그들이 11번에 걸쳐 무혐의 하겠다고 했으면 혐의를 뒷받침할 증거나 증언이 없다는 얘기”라며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도 전에 수사를 받을 때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