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7년 9월 한국전력 산하 발전 4사 사장에게 사퇴를 종용한 의혹으로 고발된 산업통상자원부 박모 국장이 ‘사퇴 종용’ 한 달 뒤 당시 문재인 청와대가 탈(脫)원전의 일환으로 밀어붙이던 ‘월성 1호기 조기 폐쇄’에 대해 “못 해먹겠다”고 한 것으로 29일 확인됐다.

경주시 양남면 월성원자력발전소에 운전이 영구정지된 '월성 1호기'가 보이고 있다. /뉴시스

작년 6월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사건으로 기소된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 등의 공소장에 따르면, 2017년 10월 청와대는 탈원전 정책을 빠르게 시행하기 위해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17~2031년)에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등의 내용을 담으라고 산업부에 지시했다.

그러자 당시 산업부에서 해당 업무를 담당했던 박 국장은 그해 10월 10일 청와대로 가서 채희봉 당시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에게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2014~2035년)과 충돌돼 위법 소지가 있다”고 보고했다. 박 국장은 또 “(원전을 담당하는) 한국수력원자력 이사들이 배임 문제 등으로 원전 폐지 의향 제출을 거부하고 있어 8차 전력수급계획에 원전을 제외하기 어렵다. 원전 비율을 줄이는 내용으로 에너지기본계획 수정부터 먼저 해야 한다”고 했다고 한다. 2014년 시행된 2차 에너지기본계획은 국가 에너지 사업 관련 최상위 행정 계획으로, 하위 계획인 전력수급계획은 거기에 맞춰 수립된다.

이에 채 전 비서관은 “2차 에너지기본계획 수정은 여러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논란이 발생해 국정 운영 전반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반대했다. 그러자 박 국장이 “못 해먹겠다”고 반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채 비서관은 “에너지기본계획을 수정하겠다는 말을 하려면 청와대에 오지 마라”고 강하게 질책하며 박 국장 의견을 묵살했다고 공소장에 적시됐다. 이후 문재인 정부는 2차 에너지기본계획 수정 없이 8차 전력수급계획에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내용을 담았다.

한 법조인은 “발전 4사 사장과 산하기관장들을 상대로 산업부 실·국장들이 ‘사퇴 종용’을 한 것도 청와대와 산업부 최상층부 지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실행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처럼 윗선 개입 규명이 수사의 핵심일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