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건물

한국인과 결혼했다가 이혼한 외국인이 한국어 소통 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친권·양육권을 가질 수 없다고 판결한 하급심 판단은 잘못이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베트남 국적 여성 A씨와 한국 국적 남성 B씨의 이혼 및 양육자 지정 소송 상고심에서 남편 B씨를 자녀 친권자·양육자로 지정했던 원심을 일부 파기하고 사건을 전주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7일 밝혔다.

법원에 따르면 2015년 9월 결혼한 두 사람은 슬하에 자녀 2명을 두었는데 불화를 겪은 뒤 별거에 들어갔고, 약 1년 뒤 서로 이혼을 청구했다. A씨는 당시 만 2세였던 큰딸을 데리고 나와 일자리를 구해 생계를 유지했고 A씨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큰 문제 없이 딸을 길러왔다고 한다.

이후 이혼 소송 진행 중 남편 B씨는 자신이 큰딸을 길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A씨의 한국어능력과 주거가 불안정하기 때문에 어린 자녀를 키우기에 부적합하다는 것이었다. 당시 B씨는 본인 명의 아파트는 있었지만 뚜렷한 직업 없이 대출금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A씨는 월 200만원 정도 수입이 있었지만 주거지가 불안정했다.

1·2심은 두 사람의 이혼 청구를 받아들이면서 B씨를 친권자 및 양육자로 지정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A씨가 한국어 소통능력이 떨어지고 거주지나 직장이 안정적이지 않아 양육환경과 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또, A씨가 출근한 시간 동안 아이를 돌보는 A씨의 어머니 또한 한국어를 사용하지 않아 자녀의 언어습득, 유치원이나 학교생활 적응이 우려된다고 봤다.

그러나 대법원은 남편 B씨로 양육자를 지정할 만한 정당한 사유를 찾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원심 판결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A씨가 별거 이후 재판상 이혼에 이르기까지 상당기간 어린 자녀를 잘 길러온 상황에서 남편 B씨로 양육자를 바꿔야 한다면, 상대방을 친권자 및 양육자로 지정하는 것이 현재 양육 상태를 유지하는 경우보다 미성년 자녀의 건전한 성장과 복지에 더 도움이 된다는 점이 명백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A씨의 한국어 소통능력 때문에 한국인(남편 B씨)이 양육하는 게 더 적합할 것이란 추상적이고 막연한 판단으로 외국인 배우자가 양육하는 게 부적합하다고 평가하는 건 옳지 않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대한민국은 공교육이나 기타 교육여건이 확립되어 있어 미성년 자녀가 한국어를 습득하고 연습할 기회를 충분히 보장하고 있다”고도 설명했다.

또한, 하급심이 ‘한국어능력’을 양육권 판단의 주요 기준으로 삼은 것에 대해서도 “하급심은 양육자 지정에서 한국어 능력에 대한 고려가 자칫 출신 국가 등을 차별하는 의도에서 비롯되거나 차별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과 외국인 부모의 모국어·모국문화에 대한 이해 역시 자녀의 자아 존중감 형성에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에 대해 “양육자를 바꿀 때 고려돼야 할 요소가 무엇인지, 외국인 배우자의 양육 적합성 판단에 있어 한국어 소통능력이 어떻게 고려돼야 하는지 선언한 판결”이라며 “다문화가정의 존중 및 아동의 복리라는 차원에서 양육자 지정에 관해 중요한 원칙과 판단기준을 제시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