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김학의 불법 출금 수사 무마’ 혐의를 받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등 당시 대검 반부패부 관계자들은 “2019년 6월 안양지청 수사 보고서는 이규원 검사 비위 발생을 알리는 것일 뿐 수사 개시 승인 요청은 없었다”며 혐의를 부인해 왔다. 그러나 7일 본지가 해당 보고서를 확인한 결과 이 지검장(당시 반부패부장) 등의 주장은 상당 부분 사실과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김지호 기자

본지가 입수한 안양지청 보고서는 ‘과거사 진상조사단 파견 검사 비위 혐의 관련 보고’라는 제목의 5쪽짜리 문건이다. 안양지청 형사3부 A 검사가 2019년 6월 18일 자로 작성해 다음 날 대검 반부패부에 보고했던 이 보고서에는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 소속 이규원 검사가 2019년 3월 23일 허위 출금 서류를 작성해 김학의 전 차관을 불법 출금한 혐의 내용이 상세히 담겼다.

이 보고서는 이규원 검사가 긴급 출금 승인 요청서를 작성하면서 한찬식 서울동부지검장 직인 대신 자신이 서명한 것, 허위 사건 번호인 ‘서울동부지검 2019년 내사 1호’를 기재한 것에 대해 모두 범죄 혐의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또 수원고검장이 관할 지검 검사장에게 입건 지휘 여부를 검토해야 한다면서 범죄가 이뤄진 장소를 ‘경기도 과천시 소재 정부과천청사 출입국 심사과’로 기재했다. ‘과천’의 관할 검찰청은 안양지청으로 이규원 검사 혐의를 포착한 안양지청이 수사하겠다는 뜻이다. 이 내용에 대해 한 관계자는 “이 정도 내용이면 ‘수사 개시 승인 요청이 없었다’는 이 지검장 등의 주장은 말이 안 되고, 수사 착수를 지시하지 않은 것 자체가 직권남용”이라고 했다.

이 지검장은 또 최근 입장문에서 “해당 보고서는 일선 청에서 대검에 보고하는 양식이 아니라 검사 개인 명의의 보고서이고 당시 안양지청에 확인한 결과 안양지청 수사팀과 지휘부 사이에 의견 대립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보고서'는 당시 안양지청 부장·차장·지청장 등 보고 라인을 거쳤으며 13차례 내부 협의와 수정을 거친 최종본인 것으로 전해졌다. 원래 보고서 제목은 ‘과거사 진상조사단 파견 검사의 범죄 사실 확인 보고’였는데 이 과정에서 조정됐다고 한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한 인사는 “이성윤 검사장이 외압을 가하기 이전에는 수사 필요성에 대한 이견이 안양지청 내부에 전혀 없었다”고 했다. 반부패부 간부를 지낸 한 법조인은 “안양지청 보고서는 통상적으로 쓰이는 양식이고 검사가 대검에 보고했으면 그 자체로 공식 보고인 것”이라고 했다.

또 보고서와 본지 취재에 따르면, 이성윤 지검장은 안양지청 보고서를 받은 다음 날 동향 후배인 배용원 당시 안양지청 차장에게 전화해 “긴급 출금은 대검과 법무부가 협의해서 한 일이고 동부지검장도 추인했으니 문제가 없다”며 제동을 걸었고 이로 인해 안양지청이 대검 감찰본부와 수원고검에도 보고를 못 한 정황도 드러났다.

보고서에는 ‘검찰공무원의 범죄 및 비위 처리 지침 2조에 따라 대검 감찰본부 및 수원고검에 각 보고’라는 내용이 나온다. 이를 본 당시 반부패부 모 연구관은 A 검사에게 전화해 “벌써 대검 감찰부와 수원고검에 보고했느냐”고 물었고 A 검사는 “아직 안 했다. 반부패부 허락을 맡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대검 감찰본부 관계자는 본지 확인 요청에 “대검 반부패부가 검사 비위를 인지하면 우리 부서로 넘겨야 하는데 당시 그런 내용을 전혀 전달받지 못했다”고 했다.

안양지청의 감찰본부 보고가 이뤄지지 않은 점을 확인한 당시 대검 반부패부 관계자들은 안양지청에 대해 ‘전방위 압력’을 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지검장뿐 아니라 반부패부의 모 과장은 이현철 당시 안양지청장에게 “고검 통보 보고서는 대검에서 보고받지 않은 것으로 하겠다”고 통보했다는 것이다. 결국 안양지청이 2019년 7월 4일 더 이상 수사 진행 계획이 없다는 취지의 수사 결과 보고서를 대검에 보내면서 상황은 일단락됐다.

한편, 이 지검장은 “당시 (문무일) 총장에게 안양지청 6월 18일 자 보고서를 보고했다”고 주장했지만, 문무일 전 총장은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수원지검에 ‘해당 보고서 내용은 보고받지 못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