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

라임자산운용의 로비 핵심 김봉현(46·구속)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마카오 공항에 억류 돼있던 자신의 횡령 공범을 빼내기 위해 현 정권 인사에게 로비를 했다는 정황이 담긴 문자 메시지를 본지가 입수했다.

김씨는 작년 3월 수원여객 횡령 공범인 김모(42) 전 수원여객 이사가 국제형사경찰기구(ICPO·인터폴) 적색 수배로 마카오 공항에 17일간 억류돼 있자, 1억원을 주고 빌린 홍콩 전세기에 김 전 이사를 태워 캄보디아로 탈출시키는 영화 같은 일을 실제 성공시켰다. 이 과정에서 우리 외교 당국은 김 전 이사가 억류된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신병을 확보하지 않아 ‘도피 배후’ 의혹이 제기됐었다.

본지가 입수한 당시 김씨와 지인의 문자 메시지에 따르면 김씨는 “민정에다 부탁해서 윤 총경이 사건 담당 영사하고 다 말해놨다”고 했다. 윤 총경은 클럽 ‘버닝썬’ 사건 당시 문재인 정부 경찰 실세로 통하며 ‘경찰총장’으로 불렸던 윤모 총경이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을 통해 윤 총경이 마카오를 관할하는 주홍콩영사관의 영사(파견 경찰)에게 말해 김 전 이사를 국내 송환하지 않도록 조치를 해놨다는 취지다.

작년 10월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영장 실질심사에 출석중인 윤 총경. 클럽 버닝썬 사건 연루 혐의로 구속된 윤 총경은 1심 무죄 판결과 함께 석방됐고 2심 재판을 받고 있다. 현재 서울지방경찰청으로 복직한 상태다./연합뉴스

올 4월 체포된 김봉현씨는 1000억원대 횡령 사기 혐의 외에도 김 전 이사를 도피시킨 범인도피 혐의로도 지난 5월 수원지검에 의해 기소됐다. 하지만 김씨가 해외 공항에 억류된 인터폴 수배 공범을 우리 외교 당국의 별다른 제지 없이 탈출시키는 과정에서 정권 인사들의 개입이 있었는지 여부 역시 추가 수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씨는 라임 자금이 투입됐던 수원여객의 회삿돈 241억원을 함께 횡령했던 김 전 이사를 작년 1월 경찰 수사 시작 직후 괌으로 도피시켰다. 김 전 이사는 베트남을 거쳐 중국으로 갔다가 비자 문제로 작년 3월 17일 마카오 입국을 시도했다. 하지만 경찰은 김 전 이사에 대해 인터폴 적색 수배를 내려놨고, 김 전 이사는 마카오 공항 당국에 억류됐다.

통상의 경우라면 인터폴 적색 수배 신분이던 김 전 이사는 마카오를 관할하는 주홍콩영사관의 사건 담당 영사를 통해 신병이 인계되고 국내로 송환됐어야 했다. 하지만 홍콩영사관 측은 김 전 이사와 직접 연락을 주고 받으면서도 어찌된 영문인지 김 전 이사의 신병을 확보하지 않았다. 당시 마카오에 있던 김씨 측근이 “ㅇㅇ(김 전 이사) 카톡으로 홍콩영사관에서 문자 왔다고 합니다. 별말 없었고 식사랑 잘하는지 이런 거 물어봤다고 합니다”라고 하자, 김씨는 “ㅎㅎ그짝은 형이 다 조치해놨으니까~”라고 답장했다.<본지 5월 21일자 보도 참조>

김봉현씨의 문자 대화 화면. 김기만은 김씨의 개명 전 본명이다./본지 입수
김봉현씨의 문자 대화 화면. 김기만은 김씨의 개명 전 본명이다./본지 입수

본지가 이번에 추가로 입수한 문자 메시지는 앞서 우리 외교 당국이 마카오 공항 억류 상황을 파악하고도 도피를 방조한 것 아니냐고 제기됐던 의혹을 뒷받침하는 내용이다.

문자는 김 전 이사가 작년 3월 17일 마카오 공항에 억류된 지 11일 뒤인 3월 28일 김씨가 측근과 나눈 대화 내용이다. 측근이 “이쪽(중국 밀입국 조직 추정) 걱정은 중간에 (주홍콩 한국) 영사관에서 (김 전 이사를) 데려갈까봐 신중한 것 같습니다”라고 하자 김씨는 “ㅇㅇ(김 전 이사)만 버티면 거기서 일년 있어도 대사관에서 안온다니까”라고 한다. 그러면서 김씨는 “민정에다 부탁해서 윤 총경이 사건 담당 영사하고 다 말해놨다”며 “ㅇㅇ(김 전 이사)가 거기(마카오 공항) 있은 지가 십일이 넘었는데 안 오는 거 보면 모르겠어”라고 답한다.

이후 실제 김씨는 김 전 이사를 캄보디아로 빼돌리는 데 성공했다. 국내에 있던 김씨는 1억원을 주고 홍콩 전세기를 빌렸고 김 전 이사를 태운 전세기는 캄보디아로 무사히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우리 외교 당국의 제지는 없던 것으로 나타났다. 김씨 주변 인사는 “김씨가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 고위 인사를 통해 윤 총경에게 부탁했다고 들었다"며 “역시 경찰관으로 당시 말레이시아 대사관 영사로 근무하던 윤 총경의 아내를 통해 홍콩영사관 쪽에 로비를 했다는 취지였다고 한다”고 전했다.

본지는 이와 관련 윤 총경의 입장을 들으려 했지만 윤 총경은 전화 통화에 응하지 않았다. 별도로 보낸 문자 메시지에도 답장을 하지 않았다. 윤 총경은 2018년 7월 청와대를 나온 상태다. 김씨가 언급했다는 민정수석실 고위 인사 역시 본지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지난 5월 수원지검은 김봉현씨를 기소하며 범인도피 혐의 항목에 A씨의 마카오 탈출 과정을 기술했다. 수원지검의 김씨 공소장.

이러한 도피 과정은 김씨의 검찰 공소장에도 그대로 나타나 있다. 김 전 이사 역시 지난 6일 김씨 재판에 나와 “마카오로 입국하려다 여권이 무효화돼 현지에서 구금됐는데, 김 전 회장이 전세기를 지원해 마카오에서 캄보디아로 갈 수 있었다”고 증언했다. 캄보디아로 탈출한 김 전 이사는 이후 육로 밀입국을 통해 베트남을 거쳐 중국으로 넘어갔고, 작년 6월 8일에는 칭다오에서 열린 한인 배드민턴 대회에도 참석하는 등 유유자적 도피 생활을 이어갔다.<본지 4월 13일자 보도 참조>. 김 전 이사는 도피 1년이 지난 올해 5월 12일에서야 캄보디아 현지에서 자수해 국내 송환된 뒤 구속됐다.

김씨는 작년 4월 인터폴 수배로 마카오 공항에 억류된 자신의 횡령 공범을 탈출시키는 데 1억원을 주고 홍콩 전세기를 동원했다. 사진은 대한항공이 운영 중인 전세기 G-IV.

김씨는 ‘청와대 민정실’을 여러 차례 언급했었다. 작년 6월 5일 문자에서는 라임 사태가 터질 것을 우려하는 지인에게 “수석들 라인 타고 있다. 민정수석. 정무수석”이라며 걱정하지 말라는 취지로 말했고 <본지 10월 15일자 보도 참조>, 작년 5월 26일 문자에서는 “형이 일처리 할 때 경비 아끼는 사람이던가. 금감원이고 민정실에도 다 형 사람”이라고 했다.<본지 10월 13일자 보도 참조>

영화 같은 김 전 이사의 ‘마카오 탈출기’는 지난달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도마에 올랐다. 심성원 주홍콩경찰영사는 ‘도피 배후’ 의혹에 대해 “마카오 당국에서 혹시라도 부정한 방법으로 공무원 등이 도와주지 않았을까 하는 우려를 마카오 당국에 얘기한 적이 있다”며 “지적대로 아쉬움이 있다고 생각하고, 이 사례를 통해서 마카오 당국과 좀더 긴밀히 협조해서 유사한 사례가 발생하면 즉시 면담도 할 수 있게 하겠다”고 했다. 마카오 당국이 김 전 이사의 도피 배후 아니냐는 취지다. 그러나 검찰 안팎에선 “새로운 의혹이 제기된 만큼 추가 수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전 이사의 억류 사실을 사전에 보고 받지 못했다는 김원진 홍콩 총영사는 “(영사 업무를) 총괄하는 입장에서 업무 방침이 미흡한 게 없었다고는 말씀을 드리지 못하겠다. 당시 인터폴 수배된 사안이 라임 사태였다면 당연히 보고를 받았을 것”이라며 “당시는 일반적 경제사범의 루틴이라서 보고를 안한 게 아닌가 생각하고, 의도를 갖고 거르려 한 건 아니라고 본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