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청사

편의점 여성 점주를 강제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항소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던 편의점 본사 직원에 대해 대법원이 사건을 유죄 취지로 뒤집었다. 대법원은 항소심 재판부의 추가 증거조사에서 1심(유죄)을 뒤집을 만큼 뚜렷하게 밝혀진 게 없고 이른바 ‘피해자다움’을 기준으로 피해자 증언의 신빙성을 의심해선 안 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창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6일 밝혔다.

브랜드 개발팀 직원이었던 A씨는 지난 2017년 4월 경남 진주시의 점주인 B씨를 강제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가맹점 관리 업무도 하던 A씨는 B씨가 홀로 근무하고 있는 것을 보고 그가 서 있던 계산대 안으로 들어가 업무 설명을 하던 중 B씨의 머리를 만졌고, B씨가 밀어내면서 거부 의사를 표시했는데도 계속해서 머리를 만진 것으로 조사됐다. 또 A씨는 같은 날 B씨를 의자에 앉히고 뒤에서 목을 안아 움직이지 못하게 한 뒤, 강제로 볼에 입을 맞춰 추행한 혐의도 받았다.

◇편의점 본사 직원이 가맹점주 성추행한 혐의

A씨는 “B씨와 어느 정도 친밀한 관계였으므로 의사에 반해 신체접촉을 하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1심은 “B씨는 경찰 수사 단계에서부터 피해 경위에 관해 구체적이고 일관되게 진술해 신빙성이 인정되고, CCTV 영상 촬영 사진이 이를 뒷받침한다”며 A씨에게 벌금 400만원을 선고하고 40시간의 성폭력치료프로그램 이수를 명령했다. 1심 재판부는 “B씨는 A씨의 신체접촉에 대해 분명히 거부하는 반응을 보이거나 피하는 태도를 취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항소심 판단은 달랐다. A씨는 항소심 재판에서 “사귀는 사이까지는 아니었지만 업무 외적으로도 만나 서로 호감을 표시하며 가벼운 스킨십을 하는 정도의 사이였다”며 “B씨의 의사에 반해 신체 접촉을 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2심은 무죄 선고하며 “CCTV보니 성추행 피해자로 안 보여”

오히려 항소심은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B씨의 일부 진술을 믿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CCTV에서 보이는 두 사람의 모습이 (성추행)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한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의 태도로 보이지 않는다”, “B씨는 이 사건 발생 4일 후 남편과 협의이혼했는데, 이 사건 당일 B씨의 배우자가 집에서 CCTV를 보다가 두 사람의 스킨십을 발견한 즉시 점포로 찾아온 점에 비춰보면 B씨는 배우자로부터 외도 등을 의심받고 있었던 상황이었던 것으로 보이고, 이혼하는 과정에서 조금이나마 자신의 책임을 덜고자 강제추행으로 신고했을 가능성이 있다”고도 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그러나 “소위 ‘피해자다움’ 없다는 이유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한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하며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그러면서 “성폭행 피해자의 대처 양상은 피해자의 성정이나 가해자와의 관계 및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며 “개별적, 구체적인 사건에서 성폭행 등의 피해자가 처하여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하는 것은 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입각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른 증거판단이라고 볼 수 없다”고 했다.

민유숙 대법관/뉴시스

◇대법 “'피해자다움'으로 피해자 진술 배척은 안 돼”

특히 대법원은 “2심이 든 위 사정들은 B씨에게 ‘피해자다움’이 나타나지 않음을 지적하는 것”이라며 “사건 당시 B씨는 신체접촉을 거부하는 태도를 보였는데, 이는 업무상 정면으로 저항하기 어려운 관계에 놓인 B씨 입장에서 가능한 정도로 거절의 의사를 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강조했다.

대법원은 “(A씨는) 경찰 수사 때에는 B씨가 일방적으로 스킨십을 했다고 진술했다가, 검찰 수사에선 장난삼아 스킨십을 하는 관계였다고 진술했다”면서 “1심에서는 B씨가 고백을 수차례하고 스킨십을 하는 관계로 발전했다고 진술을 변경했다”고 봤다. 수차례 진술이 바뀌어 신빙성이 떨어지는 건 B씨가 아니라 A씨라는 판단이었다.

그러면서 아울러 “2심이 든 위 사정들은 대체로 A씨의 변경된 진술에 기초해 이와 배치되는 B씨의 진술 신빙성을 배척하는 내용”이라며 “그 사실이 1심 판단을 뒤집기 부족한 사정이거나, 이미 고려했던 사정에 불과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