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고려대학교 안암캠퍼스 신공학관 4층에 설치된 '여성 안심 화장실'. 최초 이용 시 유리문 앞에 부착된 큐알코드를 찍고 어플리케이션을 다운받은 후, 성별 등 신원인증을 거쳐야만 들어갈 수 있다./정상봉 인턴기자

지난달 고려대학교에 전국 최초로 앱으로 인증받아야 문을 열 수 있는 ‘여성 안심 화장실’이 생겨 화제가 되고 있다. 동시에 논란도 생겼다.

이 화장실 문에는 손잡이나 자동문의 열림 버튼 같은 것이 아예 없다. 대신 이용자가 전용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한 후, 앱과 블루투스 기능을 켠 뒤 화장실 문 옆 센서에 휴대전화를 가져다 대면 문이 열리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앱 설치 과정에서 통신사 본인 확인 절차를 거쳐 여성임을 인증받도록 돼 있다.

고대 공과대학 건물 짝수층에 있는 여성 화장실 12곳에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지난 2020년 공공 화장실 성범죄 예방 등을 목적으로 개발한 시스템을 적용한 것이다. 고려대학교가 시범 사업 장소를 제공하는 대신, LH가 약 5000만원을 들여 센서 단말기와 문을 설치했다고 한다. 사전에 여성임을 인증받지 않으면 문을 열 수도 없다.

하지만 학생들 사이에서는 “여성 보호도 좋지만 너무 지나치다”는 불만도 나온다. 공대 석사 과정 학생 김모(30)씨는 “화장실이 급한 와중에도 블루투스를 켜고 문이 열리기까지의 시간을 계산해 미리 휴대폰을 꺼내야 해 불편하다”고 했다. 공대에서 수업을 듣는 일부 외국인 학생은 앱을 설치하는 과정에서 신원 인증이 되지 않아 일반 화장실이 있는 다른 층으로 가야 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런 화장실이 디지털 인증에 어려움을 겪는 장년층을 배제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6층 담당 청소 미화원인 유모(67)씨는 “학교에서 도입한다고 공지한 바가 없어 QR 화장실이 생긴 첫날에는 아침 8시 10분부터 30분까지 청소 시간인데도 문 앞에서 발만 동동 굴렀다”고 했다.

앱으로 문을 여는 화장실을 비롯, 최근 몇 년 새 ‘성 중립 화장실’ ‘가족 화장실’ 등 다양한 형태의 실험적인 화장실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살인, 폭행, 불법 촬영 등 여성 화장실에서 일어나는 범죄가 늘고 소수자 인권을 더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것이 계기가 됐다. 동시에 논쟁도 덩달아 늘었다.

지난해 3월 성공회대학교는 서울 구로캠퍼스 새천년관에 성별 구분을 없앤 ‘모두의 화장실’을 설치했다. 이 화장실은 칸막이 여러 개를 둔 일반 화장실 구조가 아니라, 비행기나 열차 내 화장실처럼 독립된 공간으로 이뤄져 장애인과 비장애인·성 소수자·아이 동반 보호자 등이 모두 이용할 수 있다. 한국도로공사도 2021년 10월 기준 전국 휴게소 207곳 중 166곳에 ‘가족 사랑 화장실’을 마련했다. 여자아이를 키우는 아빠, 거동이 불편한 노모와 동행한 아들 등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다. 하지만 성 중립 화장실은 “이성과 가까운 공간에서 화장실을 사용하는 게 더 불안하다”는 지적이, 가족 화장실은 “기존의 장애인 전용 화장실을 가족용으로 개조하면서 오히려 장애인들이 오랜 시간 기다려야 하는 등 불편을 겪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