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서모(28)씨는 매일 아침 출근 전에 회사 근처 스터디 카페로 가서 1시간쯤 영어 단어장을 펼친다. 올해 11월 17일로 예정된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영어 공부를 하는 것이다. 퇴근 후는 물론이고 점심시간에도 회사 사람들이 잘 오지 않는 카페 등에서 틈틈이 공부를 한다. 소위 ‘의치한’이라고 불리는 의대·치대·한의대 등에 입학하는 것이 목표다. 서씨는 “1년쯤 회사를 다녀보니 앞이 불투명한 월급쟁이보다 전문직, 특히 의대만 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서씨처럼 20대 후반~30대 초반 사회 초년생 사이에서 의료 분야에 진출하고 싶어 수능을 다시 보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종로학원이 한국교육개발원 교육 통계 서비스를 분석한 결과, ‘의치한’, 간호학과, 물리치료과, 방사선학과 등 의약 계열에 입학한 26세 이상 성인 입학자는 2017년 130명에서 작년 582명으로 늘었다. 5년 새 4배 이상이 된 것이다. 같은 기간 의약 계열 전체 합격자 수는 2만4000여 명에서 2만5700여 명으로 소폭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26세 이상 ‘만학도’만 부쩍 많아진 셈이다.

젊은 층 사이에선 의료 분야 직업들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평생 자격이 유지되는 데다, 고령화 등이 진행되면서 의료 수요가 계속 늘고 있어 안정적이고 수입도 괜찮다는 인식이 크다. 늦깎이 수험생들 사이에서는 수능이 의료 분야로 진출하는 관문처럼 여겨져, 수능을 ‘메디컬(medical) 고시’라고 부르기도 한다.

특히 기업 등을 다녀보니 조직 생활 등에 자신이 잘 맞지 않는다고 느끼는 젊은 층이 아예 수능을 다시 봐서 ‘직업 갈아타기’를 하는 경우도 많다. A(29)씨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작년부터 수능 시험을 보고 있다. 그는 원래 서울의 한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일반 기업에 취업했다. 하지만 회사를 다니면서 위에서 지시하면 무조건 따라야 하는 조직 생활이 잘 맞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나이가 이제 서른이라 늦은 건 아닐까 조금 걱정은 되지만 인생을 길게 봤을 때 전문성 있는 직업을 갖는 게 더 나은 선택 같다”고 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 취업 준비를 하다, 다시 수능 시험을 보겠다고 결심하는 이들도 있다. 서울 중랑구에 사는 최모(26)씨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후 최근까지 기업 취업을 준비해오다 올해 초부터 수능 공부를 한다. 잇따라 취업에 실패하면서 아예 진로를 틀었다. 그는 “취업 준비 자체에 질려서 진짜 오래할 수 있는 일, 정년과 상관없이 일할 수 있는 직업을 찾게 됐다”고 말했다.

이만기 유웨이 교육평가연구소장은 “전문직종에 대한 선호는 과거부터 꾸준히 있어온 현상”이라면서도 “직장 등에서 근로 소득을 열심히 모아도 집 하나 사기 어려운 요즘 2030의 경우, 특히 고소득·안정성이 보장되는 직장에 대한 선망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