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 청소년들이 카카오톡 오픈채팅이나 페이스북 등 SNS(소셜네트워킹서비스)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다 성매매 등 각종 범죄에 휩쓸리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청소년이 즐겨 쓰는 데다 쉽게 다른 사용자와 대화할 수 있는 SNS 특성을 이용해 가해자들이 가출 청소년들에게 손쉽게 접근해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지난 13일 오후, 기자가 직접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 가출한 여고생인 것처럼 “집 나왔는데 도와주실 분 없나요”란 제목의 방을 열어봤다. 대화방을 개설한 지 30분 만에 남성으로 추정되는 15명에게서 “도와주겠다”는 연락이 왔다.

지난 13일, 기자가 직접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 가출한 열일곱 살 여학생인 것처럼 대화방을 개설하자 30분 만에 남성으로 추정되는 15명에게서 ‘도와주겠다’는 연락이 쏟아졌다. /한예나 기자

전화번호가 저장된 지인끼리 대화하는 카카오톡과 달리 오픈채팅방은 익명으로 운영된다. 말을 걸어 온 사람 중 하나는 “서른한 살 남자고 자취하는데 며칠 재워주겠다”고 했고, 또 다른 남성은 “사진을 보여주면 도와주겠다”고 했다. “일주일에 2번씩 만나서 성관계를 하면 월 400만원 이상 주겠다”며 성매매를 제안하는 사람도 있었다. 카톡에 답장을 하지 않자 음성 전화 기능을 사용해 몇 번씩 전화를 거는 사람도 있었다. 카카오 측이 오픈채팅방을 운영하면서 청소년 성범죄 등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 대해 적극적으로 모니터링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많다. 실제 21일 낮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 ‘여고생’ ‘여중생’ 등의 키워드로 검색했더니 ‘여중생이랑 연애하실 분’ 등의 제목을 단 채팅방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도와주겠다”며 접근한 후 가출 청소년에게 성범죄를 저지르거나, 가출 후 생활비가 필요하다는 점을 악용해 성매매를 하도록 유도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페이스북과 같은 플랫폼도 가출 청소년들이 많이 찾는다. 페이스북에는 가출 청소년을 지원한다는 취지를 내건 커뮤니티가 있는데 5000명이 넘게 가입돼 있다. 이곳에서는 도움을 주는 사람을 ‘헬퍼’, 도움을 받는 사람을 ‘헬프’라고 부른다. 가출 청소년들은 이곳에 “06년생 헬프인데, 도움 주실 수 있는 분 계신가요”와 같은 식의 글을 올린다. 청소년 쉼터 관계자는 “온라인에서 선의로 도움을 주는 사람도 있겠지만 의도를 구별하기 어렵다는 게 문제”라고 했다.

2020년 A(13)양은 한 랜덤 채팅 애플리케이션(앱)에서 군인 B씨를 만났다. A양은 채팅에서 “나는 중학교 3학년인데 가출을 해서 지금 돈이 없다. 돈을 보내 달라”고 했고, B씨는 “네 몸이 나오게 영상통화를 해주면 돈을 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이후 사진과 영상 등을 받을 때마다 B씨는 5000원을 줬다고 한다.

지난 10월에는 페이스북에서 알게 된 열여섯 살 가출 여고생을 자신의 집으로 불러 두 달간 성매매를 시킨 혐의로 기소된 남성이 대구지법에서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 여고생은 일주일에 3번 이상 하루에 최대 8회까지 성매매를 할 것을 강요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 6월 경기도 오산에서 17세 가출 청소년이 백골 시신으로 발견된 이른바 ‘오산 백골 사건’도, 가해자들이 페이스북을 통해 가출 청소년을 모아 절도나 대포통장 수집 등을 강요했던 사례였다.

이런 사례가 늘자 경찰이나 기존 청소년 쉼터 등은 온라인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 가출 청소년이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글에 “청소년 상담 전화 1388로 꼭 전화를 달라”는 등의 댓글을 달거나 연락을 시도한다. 하지만 채팅방에선 익명으로 실시간 대화가 이뤄지고 금세 채팅창이 사라지는 일이 많아 대응이 어렵다고 한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온라인 공간을 통해 도움을 청하는 가출 청소년이 많은 만큼 그들을 보호할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