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저층에 설치돼 나무 그늘에 가려진 베란다형 태양광 패널./서울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추진한 560억원대 ‘태양광 보급 사업’과 관련, 시민단체 출신 인사들이 서울시 태양광 정책을 사실상 결정했던 ‘원전하나줄이기 실행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하면서 태양광 보급 업체(태양광 협동조합) 임원으로 활동하는 등 사익을 추구했다는 서울시 감사 결과가 14일 나왔다. 서울시 감사위원회는 이날 “공무원에 준하는 기능을 했던 실행위원 중 일부는 서울시의 태양광 사업을 담당했던 서울시 공무원에게 태양광 보급 사업 계획의 보고를 채근했다”고 밝혔다.

서울시 감사위는 또 ‘박원순 서울시’가 태양광 보급 목표치를 달성하기 위해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분양한 임대아파트에 태양광 시설을 집중적으로 설치했다고 밝혔다. 2014년부터 지난 9월까지 태양광 시설이 설치된 서울시 전역의 공동주택은 12만472가구였다. 그중 39.6%인 4만7660가구가 SH 임대아파트였다는 것이다.

또한 SH가 입주자 동의를 받지 않고 베란다형 태양광을 설치한 임대아파트는 2017년 268가구, 2020년 1366가구로 나타났다고 서울시 감사위는 밝혔다. 태양광 설비는 아파트의 전체적인 미관이나 빛 반사, 통풍 등에 영향을 줄 수 있어 사전에 입주민 동의를 받아야 하는 시설이다. 이 때문에 민원이 제기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나무에 가려진 태양광 패널들 - 14일 오후 서울 노원구 한 아파트의 저층에 설치된 베란다형 태양광 패널들이 나무 그늘에 가려져 있다. 서울시 감사 결과에 따르면, SH 임대아파트 4만7660가구에 설치된 베란다형 태양광 설비 중 3828곳(8%)이 햇빛을 덜 받아 발전 효율이 떨어지는 1~2층에 설치됐다. 서울시는 이날 태양광 보급 등 박원순 전 시장이 추진했던 세 가지 사업에 대해 지적 사항 총 68건이 담긴 감사 결과를 공개했다. /장련성 기자

SH가 임대아파트에 설치했던 ‘베란다형 태양광 설비’의 발전 효율도 기대 이하로 나타났다고 한다. 4만7660가구 가운데 3828가구(8%)가 발전 효율이 떨어지는 저층(1~2층)에 설치됐고, 남향이 아닌 동·북·서쪽 방향으로 설치된 가구는 1만4877곳(31%)이었던 것이다. 특히 태양광 설비 367개의 효율을 표본 분석한 결과, 평균 발전량은 용량 대비 70.3%로 나타났고 1~3층의 경우는 46.4%로 떨어졌다고 서울시 감사위는 밝혔다.

서울시는 이날 태양광 보급(30건), 사회주택(17건), 청년 활력 공간(21건) 등 박원순 전 시장이 추진했던 세 가지 사업에 대한 지적 사항 총 68건이 담긴 감사 결과를 공개했다.

서울시 감사 결과에 따르면, 서울시 태양광 보급 사업 대부분을 담당했던 협동조합들 임원 다수는 2012년부터 ‘원전하나줄이기 실행위원회’(이하 실행위) 위원으로 활동했다. 당시는 서울시의 태양광 보급 사업 도입 초기로, 실행위에서 사업 계획이 수립되고 정책 방향이 결정되던 단계였다.

A 협동조합 이사장 B씨는 2012~2014년 실행위 생산분과 위원장을 맡았고, 같은 조합 출신 C씨도 비슷한 시기 서울시 기후환경본부 임기제 팀장으로 채용돼 실행위 운영을 총괄했다. 서울시 감사위에 따르면, 이후 A 협동조합은 서울시에서 태양광 보급 사업 일감을 따냈고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보조금 총 70억원을 받기도 했다. 또 다른 태양광 협동조합의 이사도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실행위 위원으로 활동했다. 서울시 감사위는 “사전에 내부 정보를 활용해 미리 조합원을 모집하고 관련 영업망을 갖추는 등 공모에서 선정될 준비를 했다”며 이를 특혜로 판단했다.

서울시 감사위는 태양광 보급 사업 초기에 ‘박원순 서울시’가 협동조합 요구 사항을 대폭 수용해 과도한 지원 제도를 도입했다고 밝혔다. 서울시 관계자는 “점검 결과를 해당 부서에 통보했으며 1개월간 재심의 기간을 거쳐 다음 달 중 최종 점검 결과를 공개할 것”이라고 했다.

2014~2019년 베란다형 태양광 설비가 설치된 7만3671곳 가운데 2만7233곳(37%)은 보급 업체가 아예 폐업해 정기 점검을 받지 못했다. 보조금을 받은 업체가 무상으로 사후 관리를 해야 하는 의무를 피하려 의도적으로 폐업한 정황도 드러났다.

태양광 설치 후 부실한 사후 관리 문제도 확인됐다. 2014~2019년 베란다형 태양광 설비가 설치된 7만3671곳 가운데 2만7233곳(37%)은 보급 업체가 아예 폐업해 정기 점검을 받지 못했다. 보조금을 받은 업체가 무상으로 사후 관리를 해야 하는 의무를 피하려 의도적으로 폐업한 정황도 드러났다. 이 때문에 서울시는 태양광 업체 14곳을 고발했다. 나머지 4만6438곳 가운데 2만3020곳(49.6%)은 ‘신청자 연락 두절’로 점검을 못 했다고 한다.

서울시 감사위는 “태양광 사업은 애초 수익성이 부족했다”며 “특정 협동조합 요구 사항을 수용해 공정성과 형평성에 어긋나는 제도를 도입한 부작용이 나타난 것”이라고 했다. 태양광 추진 초기 단계이던 2014년 8월 태양광 협동조합 7곳은 연합회를 결성한 뒤 박원순 당시 시장을 찾아갔다. 이들은 태양광 패널을 설치할 공공 부지 제공, 설치 자금 무이자 융자 등을 요구했고 이는 모두 수용됐다.

당시 서울시 공무원들은 태양광 설치가 가능한 공공 부지를 직접 전수조사한 뒤 협동조합에 안내했고, 다른 사업과 달리 태양광 사업에 대해선 무이자·무담보 융자가 가능하도록 해 줬다. ‘박원순 서울시’는 일부 공공 부지에서 시행하는 사업에 태양광 관련 중소기업들이 공모에 참여할 기회를 원천 차단하면서 협동조합들엔 공공 부지 임대료를 기존의 20% 수준으로 대폭 낮춰주기도 했다고 한다.

서울시 감사위는 이날 박 전 시장이 추진했던 사회주택 사업의 문제점도 확인됐다고 밝혔다. ‘사회주택’은 SH 토지 지원을 받아 협동조합이 운영하면서 사회적 약자에게 장기간 저렴한 임대주택을 제공하겠다는 취지로 도입된 제도였다. 하지만, 위탁 운영을 맡은 시민단체가 입주자를 선정하면서 노조나 시민단체 활동 등 특정 경력이 있는 사람들을 우대한 사실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지난 7년간 예산 2103억원을 투입했지만, 사회주택 사업을 통한 실질적인 주택 공급 효과는 847가구에 불과했다”며 “‘혈세 낭비’ 사업에 가까웠다”고 밝혔다.

아울러 청년들이 커뮤니티 공간 등으로 이용하게 할 목적으로 박 전 시장 때 만들어진 ‘청년 활력 공간’ 12곳 역시 민간 위탁 기관 선정 절차를 무시하거나 특정 인사가 반복해서 참여하는 등 관련 규정을 위반한 사례 등이 지적됐다. 최근 6년간 서울시 청년 관련 부서에 채용된 임기제 공무원 절반이 특정 단체 출신이었다고 한다. 수탁받은 사업을 무단으로 다시 다른 단체에 위탁하거나 지급받은 사업비로 인건비를 편성하는 등 민간 위탁 규정·협약 위반 사항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