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중구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2층 '할머니의 방'에 전시된 이용수 할머니의 사진과 생활용품들./이승규 기자

아파트 복도에서 문을 열고 들어가니 39.6㎡(약 12평) 규모의 방이 시선을 채운다. 그릇이 차곡차곡 쌓여있는 좌측 개수대와 접힌 병풍 등 잡동사니가 가득한 우측 창고 사이를 가로질러 걸어가면 안방이 나온다. 전기 장판 하나 깔린 침대가 공간 대부분을 차지하는 좁은 방이다. 물건을 ‘클릭’하니 친절한 설명 영상도 나온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지난 1993년부터 28년간 살던 대구 달서구의 공공 임대아파트는 가상현실(VR) 기기 속에 거주 당시 모습 그대로 구현돼 있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해방 이후 살았던 공간을 최신 기술로 구현하고, 인공지능(AI) 기술을 통해 할머니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전시가 대구에서 열린다.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은 여성가족부와 함께 10일부터 오는 12월 31일까지 대구 중구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시간과 공간, 그리고 증언’을 주제로 기획전을 연다고 밝혔다.

전시의 소재는 위안부 피해자의 과거와 현재, 미래다. 과거를 주제로 한 역사관 1층은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 이후 30여년간 이어진 일본군 위안부 운동의 흐름이 정리된 ‘역사의 벽’, 할머니 18명의 증언을 영상으로 담은 ‘증언의 벽’으로 구성됐다. 야외 전시관에는 문옥주 할머니가 전장을 따라다니며 배웠던 노래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온다.

위안부 할머니의 현재를 다룬 2층에선 VR 기기를 통해 대구·경북에 거주하거나 머물렀던 이용수·박필근·김옥선 할머니의 집을 탐방할 수 있다. VR 기기 맞은 편엔 세 할머니가 평소 쓰던 장식장 등 생활용품이 놓여져있다. 코로나가 확산할 때 이용수 할머니가 실내에서 노래를 부르기 위해 썼던 마이크, 지난 2005년 김옥선 할머니가 일본 히로시마를 방문했을 때 현지 일본인들이 롤링페이퍼 형식으로 만들어 전달한 생일 축하 카드도 전시돼있다.

대구 중구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2층 '할머니의 방'에 전시된 김옥선 할머니의 생일 축하 카드. 김 할머니가 지난 2005년 일본 히로시마를 방문했을 때 일본인들이 선물했다./이승규 기자

미래 분야를 다룬 2층 야외 전시관에는 이옥선·이용수 할머니의 녹화 영상과 AI 기술을 활용한 ‘영원한 증언’ 전시가 준비돼 있다. 관람객이 마이크를 통해 질문하면 화면 속 할머니가 답을 하는 방식이다.

시민모임 서혁수 대표는 “사라지는 할머니들의 시간 만큼 그분들이 머물렀던 공간도 휘발되기 쉽다”면서 “이번 전시가 할머니들의 흔적을 미래에도 이어갈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