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운경씨가 17일 전북 군산시 자신의 횟집 '네모 선장'에서 손질한 민어회를 포장하고 있다. /김영근 기자

17일 ‘네모 선장’이라는 간판이 달린 전북 군산의 한 횟집. 문을 열고 들어가자 ‘6월 8일 오징어 1㎏ 34개’ ‘6월 13일 민어탕 17개’ 등의 메모가 빼곡히 적힌 칠판이 눈에 들어왔다. 사장 함운경(57)씨가 수산물 손질 내용을 정리해 적어 놓은 것이다. 함씨는 이날 “소득 주도 성장을 말하는 사람은 다 사기꾼” “어떻게 최저임금 대폭 올려서 소득 올릴 생각을 하느냐”며 현 정부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함씨는 서울대 물리학과 82학번으로 이른바 ‘586’의 상징적 인물 가운데 한 명이다. 1985년 결성된 전국학생총연합(전학련) 산하 투쟁 조직인 ‘민족통일·민주쟁취·민중해방 투쟁위원회(삼민투)’ 공동위원장으로 그해 5월 서울 미국 문화원 점거 사건을 주도했다. 당시 점거에 가담했던 대학생 73명 중 함씨를 포함한 25명이 구속됐고, 그도 징역 6년 6개월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1988년 특사로 석방됐다. 이후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두 차례 더 투옥됐다. 김민석 민주당 의원, 김한정 민주당 의원 등이 그와 함께 운동했던 멤버다. 그는 이날 기자와 만나 자영업자의 고충을 생생하게 털어놨다.

-미 문화원 점거 사건을 주도했는데.

“당시 5월 투쟁을 준비할 사람이 필요했는데 원래 담당하기로 했던 공대 부총학생회장이 못 하겠다고 해서 내가 응급처치로 대신 나섰다. 당시 미 문화원을 점거한 동료끼리 지금도 1년에 한 차례 정도 정기적으로 만난다.”

함운경씨는 1985년 5월 서울 미국 문화원 점거 사건 주동자였다. 당시 미 문화원 뒤편 2층 창문틀에 올라 내외신 기자들 물음에 답하는 장면. /조선일보DB

-어쩌다 횟집을 하게 됐나.

“총선과 지방선거에 다섯 차례 나갔지만 모두 떨어졌다. 마지막 선거는 지난 2016년 20대 총선이었다. 조경업체 사업도 했는데 대금을 제대로 못 받아 망했고, 횟집은 5년 전부터 하기 시작했다. 도·소매만 하면 경쟁에서 이기기 어렵다고 봐서 온라인에서만 상품을 팔고 있다. 요샌 택배 파업 때문에 상품 발송에 애를 좀 먹었다.”

-장사는 잘되나.

“직원이 5명까지 늘어난 적도 있었는데 생각만큼 장사가 잘 안 돼 지금은 직원 1명만 있다. 잘될 거로 생각하고 사업 규모를 늘렸는데 마케팅 등 예상 못 했던 변수가 많더라. 쉽지 않았다.”

-고용주가 돼 보니 어땠나.

“월급날이 빨리 돌아오더라. 사람 고용하려고 마음먹었으면 잘 안 됐을 경우를 대비해야 하더라. 해고도 쉽지 않고 당장 월급 못 줄 최악 상황이더라도 14일 이내에 남은 월급과 퇴직금을 안 주면 형사책임을 져야 한다. 직원 월급 주기가 힘들어 ‘(가게를) 접고 차라리 배달(기사)을 해 볼까’ 생각한 적도 있다. 사람 고용해 월급 주는 사람이 진짜 ‘애국자’였다.”

-자영업자 고충이 클 텐데.

“소득 주도 성장 말한 사람들은 다 사기꾼이다. 가게 매출이 늘어야 직원들 월급도 올라가지, 월급이 올라간 다음 매출이 오르는 게 아니다. 큰 회사든 작은 회사든 가격 경쟁 속에서 얼마나 낮은 비용으로 시장에 참여할까가 고민인데, 국가가 나서 임금 많이 주라고 하면 소득이 늘어나나. 오히려 고용을 줄이지. 정규직을 늘리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 전체 매출이 그대로인데 정규직만 늘어날 수 있나. 공공부문만 비대해져 세금 쓰는 공무원만 많아졌다.”

-최저임금도 많이 올랐다.

“새조개나 바지락을 팔 땐 껍데기를 까야 한다. 전에는 속도가 느리더라도 동네 할머니들에게 일을 줄 수 있었다. 그런데 최저임금이 너무 올라 이젠 할머니도 숙련공만큼 돈을 줘야 한다. 예전처럼 ‘천천히 까라’고 할 수가 없고, 할머니들 대신 숙련공을 쓸 수밖에 없다. 할머니들로선 이제 공공 근로밖에 선택할 게 없다.”

17일 군산 횟집에서 만난 함운경씨는 "의도가 선하다고 선한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라며 현 정부 정책을 비판했다.

-뭐가 문제라고 보나.

“최저임금을 최저생계비라고 착각하고 있다. 생계 보장 문제는 최저임금이 아닌 사회 복지 문제로 풀어야 한다. 사회적 안전망을 만들어야 할 문제를 최저임금만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은 결국 기업과 고용주가 그 부담을 모두 떠안으라는 말밖에 안 된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의도가 선하면 항상 선한 결과가 나온다고 보는 사람들 때문이다. 사람은 저마다 개인의 욕망에 따라 움직이고, 사람의 욕망을 이기는 제도는 없다. 부동산 문제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법으로 때려잡아도 안 잡힌다. 결국 다 ‘좋은 아파트 살고 싶다’는 건데 왜 이 욕구를 부정하나.”

-정부와 정치권이 잘못한다고 보나.

“집안 살림도 결국 나라 살림과 마찬가지다. 코로나 때문에 돈을 많이 썼으면 이제 줄여야 한다. 그런데 다들 어떻게 하면 돈을 나눠줄 것인지만 경쟁한다. 나라 살림 거덜 내면 안 된다. 이런 말을 하는 정치인들이 없더라.”

-변절했다고 보지 않을까.

“방법론 차이다. 결국 목적은 ‘인민을 잘살게 하는 것’이다. 보수는 점진적으로 가자는 거고, 진보는 혁명하자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보수로 바뀐 건 맞는다.”

-이런 말을 하는 게 부담스럽지 않나.

“내 나이 곧 환갑이다.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얘기도 하며 살아야지 눈치 봐서 뭐 하겠나. 민주당은 자기네가 진보라 생각하지만 망가지는 줄도 모르는 채 망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