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낙태죄(罪)가 폐지된 지 5개월이 지났지만, 대체 입법이 이뤄지지 않아 현장에서 혼란이 벌어지고 있다. 국회와 정부 모두 손을 놓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 18일 본지가 서울 시내 산부인과 30곳에 ‘임신 중절 수술 가능 여부’를 문의한 결과, 60%가 넘는 19곳은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각 병원은 “낙태죄를 없앤 거지, 낙태를 완전히 허용한 건 아니다” “원장님이 그냥 하지 않는다” 등의 이유를 댔다. 가능하다고 답한 11곳도 “유선상으로 수술 가능한 주(週)수나 비용은 알려주기 어렵다”고 했다. 현재 낙태가 불법이 아님에도 수술을 거절하거나, 제대로 된 상담이 쉽지 않은 것이다.

이는 낙태에 대한 처벌 조항만 사라졌을 뿐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없기 때문이다. 기존 모자보건법은 ‘임신 24주 이내, 전염성 질환·강간·친척 간 임신 등 특수한 경우’에 한해 제한적으로만 낙태를 허용해왔다. 이외 낙태를 하면 산모, 의사 모두 형법에 의해 처벌을 받았다. 하지만 2019년 4월 헌재의 위헌 판단으로 올 1월부터 처벌 조항이 없어지고 모자보건법 해당 조항도 사문화됐다. 헌재는 정부, 국회에 2020년 말까지 낙태 조건 등 개정 입법을 마련하라고 주문했지만, 아직까지 대체 입법은 이뤄지지 않았다. 법무부는 작년 10월에야 뒤늦게 ‘임신 14주까지는 본인 의사만으로, 15~24주에는 사회·경제적 사유 등에 따라 낙태가 가능하다’는 내용의 개정안을 내놨다. 작년 12월 8일 처음 공청회가 열렸지만, 여성·종교·의료계의 의견이 엇갈리며 ‘법적 공백’이 길어지고 있다. 김동석 산부인과의사회 회장은 “현재 처벌 조항이 없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모든 임신 중절 수술이 가능한 상태”라고 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김동식 젠더폭력연구본부장은 “가이드라인이 없으면 여성들이 의료인들에게 명확하게 ‘임신 중단’(낙태)을 요구할 수 없다”며 “법·제도의 공백이 여성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고 했다. 김운용 변호사는 “현재 낙태와 관련한 복잡한 법률적 문제들이 발생할 소지가 있기 때문에 어느 시점까지 중절 수술을 허용할 것인지 하루빨리 적절하게 선을 그어줘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