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업체 광고 명함.

“XXX이 내 돈을 빌려가서 안 갚네. 니들이 대신 갚아, XX들아.”

의류매장 직원인 이모(54)씨의 언니와 동생, 자녀 2명, 친구 1명은 최근 영문도 모른 채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 초대돼 이런 욕설을 들었다. 다짜고짜 욕을 퍼붓고 협박한 사람은 이씨가 작년 5월에 돈을 빌린 불법 대부업자였다. 돈을 빌려줄 때 이씨 휴대전화를 뒤져 가족과 지인 연락처를 ‘인질’처럼 가져간 뒤 이씨가 돈을 바로 못 갚자 이런 협박을 가족과 지인들에게 한 것이다. 그는 수시로 전화를 걸어 “돈을 대신 갚으라”고 윽박지르기도 했다.

이씨가 불법 대부업체에 처음 손을 벌린 건 코로나가 확산되던 작년 4월이었다. 매장 손님이 끊기자 매월 10일씩 강제 ‘무급 휴가’를 가는 바람에 190만원이던 이씨 월급은 120만원으로 줄었다. 이미 다단계 판매 사기를 당해 3000만원 빚이 있던 그는 은행 대출을 받기도 어려웠다. 견디다 못해 대부업체에서 40만원을 빌렸다. 1주 뒤 60만원을 갚는 조건이었다. 돈을 못 갚자 ‘1주 연장’ 조건으로 갚아야 할 돈을 80만원으로 늘렸다. 두 차례 상환을 미룬 끝에 간신히 돈을 갚았다. 한 달 뒤, 같은 업체에 다시 40만원을 빌렸는데 연체가 길어지자 협박 전화와 문자가 쏟아진 것이다.

불법 대부업자들은 취업을 앞둔 이씨의 자녀에게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했다. 작년 말 취업을 앞둔 이씨 자녀는 협박 전화를 피하다 정작 면접 합격 전화를 못 받아 채용이 취소됐다고 한다. 이씨는 “애가 ‘엄마 때문에 내 인생 망쳤다’고 하는데, 하도 억장이 무너져 자살까지 생각했다”고 했다.

코로나가 장기화하면서 형편이 어려워진 서민들이 불법 사채에 손을 댔다가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경우가 크게 늘고 있다. 한국대부금융협회에 지난 한 해 접수된 불법 사채 피해 신고는 5160건으로 전년(1048건)의 5배로 치솟았다. 2017년부터 3년간 피해 신고 접수 건수는 연평균 1000건대였다. 협회 관계자는 “코로나로 생활비 등 급전(急錢)이 필요해 소액 불법 사금융에 손댄 사람이 많다”며 “정부가 신용 대출을 억제하면서 풍선효과로 불법 사금융 이용자가 많아진 것도 원인”이라고 했다.

경기도에서 건설 기술직으로 일하는 장환기(36·가명)씨는 코로나로 인해 불법 사채에 손을 댔다. 장씨는 “이미 전셋값에 신용대출까지 8000만원 빚이 있는데, 작년 3월부터 코로나로 일감이 끊겨 한 달씩 놀기도 했다”며 “낮엔 공사판 나가고 밤엔 쿠팡이츠 배달을 했는데도 세 식구 먹여 살리기가 벅찼다”고 했다. 작년 4월 한 대부업체 알선 홈페이지에 자신의 상황을 올리자, 하루 만에 ‘돈 빌려 주겠다’는 연락이 쇄도했다. 장씨는 “돈 빌리겠다고 하자 대부업자들이 회사 근처까지 찾아오더니, 30~40분간 차에 태운 채 내 휴대폰에서 아내, 자녀, 장인·장모를 포함해 10~15개의 연락처를 가져갔다”며 “정해진 금리도 대출 한도도 없이 50만원 빌리면 70만원, 70만원 빌리면 90만원을 입맛대로 갚으라는 식이었다”고 했다. 일주일 단위 소액 대출이었는데, 상환일을 못 지키자 악몽이 시작됐다. 수시로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을 만들어 “당신 남편이 돈 빌려가서 안 갚는다” “직장 가서 뒤집어 버리겠다”고 가족들을 협박했다. 협박을 못 이긴 장씨는 다른 대부업체에서 돈을 다시 빌려서 갚는 돌려막기를 했다. 실제 빌린 돈은 2000만원 남짓인데 이자에 이자가 붙어 빚이 6000만원으로 불어났다. 장씨는 “암담하다”고 했다.

불법 대부업자들은 코로나 상황에서 급전이 필요한 이들에게 접근한 뒤, 법정 최고 이자율(24%)을 훌쩍 넘긴 수백%의 ‘이자 폭탄’을 떠안긴다. 한국대부금융협회에 따르면, 불법 사채의 연환산 평균 이자율은 2019년 145%에서 지난해 401%로 늘었다. 서울시 민생사법경찰단에도 이런 식으로 소액을 빌렸다 이자 더미를 떠안는 서민들의 피해 접수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한 해 서울시에 376건이 접수됐다. 예를 들면, 30만원을 빌려주면서 일주일 뒤 50만원(연이율 3476%)을 갚으라고 하거나 100만원 빌려주면서 10일 뒤 150만원(1825%)을 갚으라는 식이다.

경남의 한 백화점에서 여성의류 매장을 운영하는 40대 진모씨도 코로나로 손님이 뚝 끊기면서 불법 사채에 손을 댔다. 직원 인건비와 임차료를 위해 사채업체에 150만원을 빌리면서 체크카드를 사채업자에게 넘겼다. 업자는 “하루 3만원씩 65일간 총 195만원을 통장에 입금하면 알아서 빼가겠다”고 했다. 진씨는 공치는 날이 많아 결국 3곳에서 돌려막기를 했다. 그러면서 빌린 돈은 412만원인데, 갚아야 할 돈은 2000만원으로 늘어났다.

금융위 관계자는 “급박한 상황에서 대출받더라도, 연이율로 따졌을 때 법정 최고금리(연 24%)를 초과하는 것은 아닌지 반드시 따져봐야 한다”며 “채무자가 아닌 지인에게 연락을 하거나, 연락하겠다고 협박하는 행위 역시 불법인 만큼 이런 업체들은 피해야 한다”고 했다.

대출을 빙자해 사기를 벌이는 경우도 있다. 서울 성북구에 사는 건설업자 이모(62)씨는 작년 4월 서울 평창동에 있는 7600평 규모의 땅을 팔려다가 대부 사기에 휘말렸다. 땅을 매수하겠다고 계약서까지 쓴 A기업이 회사 사정으로 급전이 필요하다며, 이씨에게 ‘땅을 담보로 B투자업체로부터 50억원을 대출받아 1개월만 빌려달라’고 한 것이다. 급한 대로 대출을 해줬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깨알같이 적힌 B사의 계약서에는 ‘돈을 못 갚으면 100억원의 추가 손해배상을 해야한다’는 악성 조항이 담겨 있었다. 50억원을 빌린 A사는 대출 만기인 1개월이 지나도록 돈을 갚지 않았고, 땅을 사겠다던 계약도 파기해버렸다. 졸지에 150억원대 가압류를 당한 이씨는 현재 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씨는 “사기 계약과 사기 대출에 완전히 속은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