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구미시 한 빌라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만 2세 보람양의 친모(親母)를 확인하기 위한 DNA 검사는 모두 네 차례 이뤄졌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이 3번, 대검찰청 과학수사부가 1번 진행한 검사 결과는 모두 동일했다. 보람양 친모는 당초 외할머니로 알려졌던 석모(48)씨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석씨는 “내가 낳은 아이가 절대 아니다”라고 부인하고 있다. 그와 함께 생활하며 속옷 차림을 본 남편도 “아내는 그 무렵 임신과 출산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경찰은 석씨가 출산한 병원이나 조산원 기록을 찾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DNA 결과만으로 보람양이 석씨가 낳은 딸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법의학자들은 “99.9999%”라고 말한다.

부모의 염기서열 반복 횟수, 자녀 횟수 비교해 친자 확인

DNA는 한 사람의 유전 정보를 담은 기본 단위다. DNA에 키, 얼굴형, 머리색 등 사람의 특징을 결정하는 유전 정보가 담겨 있다. 인간의 모든 세포에는 세포핵이 있고, 그 세포핵 속에 염색체가 있다. DNA가 모여 만들어진 것이 염색체다. 염색체는 실 같은 것이 꽈배기처럼 꼬여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 모든 사람은 23쌍, 46개의 염색체를 갖고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 각각 23개씩을 물려받은 것이다. 한 사람 몸에서 나온 모든 세포의 DNA는 같다. 이 때문에 머리카락, 눈물, 피부, 피, 침 등 어떤 것으로 DNA 검사를 해도 동일인이면 결과가 같다.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염색체 23쌍에 각각 1~23번의 숫자를 붙인다고 가정하자. 자녀의 1번 염색체 한 쌍은 아버지의 ‘1번 염색체쌍 중 하나’와 어머니의 ‘1번 염색체쌍 중 하나’를 각각 물려받아 결합된 것이다. 친자 관계는 그 염색체 안에 담긴 아데닌(A)·구아닌(G)·시토신(C)·티아민(T)이라는 염기 분자 4개가 나열된 순서, 즉 ‘염기 서열’을 분석해 확인한다. 염색체를 이루는 DNA가 유전 정보를 염기 서열로 암호화해서 저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AGAT’ ‘GATTACA’와 같은 식이다. 세포 하나마다 이런 염기 60억개가 빼곡하게 나열돼 있다.

과학자들은 염색체의 어느 한 부위를 들여다보면, 마치 사람의 지문(指紋)처럼 이들 염기 조합이 반복되는 횟수가 개개인마다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AGAT’가 6번 반복되지만 다른 사람은 ‘AGAT’가 14번 반복되는 모습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 반복 횟수가 다른 것에 큰 의미는 없다. 다만 키·얼굴형·머리색 등을 결정하는 유전 정보를 부모에게서 물려받을 때, 이 반복 횟수도 유전되면서 친자 확인에 유용하게 쓰이는 것이다.

보람양이 석씨의 딸이라는 것도 DNA 검사에서 이 염기 조합의 반복된 횟수를 대조해서 확인한 것이다. 예컨대 보람양의 7번 염색체쌍에서 한쪽은 ‘AGAT’가 9번 반복되고, 다른 한 쪽은 12번 반복돼 나타났다고 하자. 둘 중 하나는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이기 때문에, 어머니의 7번 염색체쌍 중 어느 한 부분에선 반드시 ‘AGAT’ 염기 조합이 9번 또는 12번 반복되는 모습이 나타나야 한다. 만약 없다면 친자가 아니다. 그런데 당초 보람양의 엄마로 알고 있었던 석씨의 딸 김모(22)씨 DNA를 검사해보니 7번 염색체쌍 해당 부분에서 ‘AGAT’ 염기 조합이 9번 반복되는 것도 없었고, 12번 반복되는 것도 없었다. 그래서 경찰은 당초 외할머니로 알려졌던 석씨의 DNA까지 확보해 추가로 국과수에 제출했는데, 석씨의 해당 염색체쌍 부분에선 9번이나 12번 반복되는 것이 있었던 것이다.

물론 염색체쌍의 한 부분만 가지고 대조하면 우연의 일치로 반복 횟수가 같을 수도 있다. 유성호 서울대 법의학실 교수는 “염색체 3부위를 비교해서 특정 3부위 모두 같은 반복 횟수가 나오는 경우도 600명 중 1명꼴로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석씨가 보람양의 친모라고 단정할 수 있었을까. 유 교수는 “염색체에서 짧게 반복되는 염기 서열 부위(Short Tandem Repeat, STR)의 비교를 20곳 넘게 했는데도 모두 염기 조합의 반복 횟수가 같은 것이 나온다면 지금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 중에 ‘너 하나’라고 얘기할 수 있다”고 했다. 유 교수에 따르면 미국 FBI의 경우 13개 부위 이상을 검사해서 모두 일치하는 것으로 나오면 친자 관계라고 확인한다.

우리 국과수는 20개 이상의 염색체 부위를 비교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람양과 석씨의 1번 염색체에 있는 DNA 일부, 2번 염색체에 있는 DNA 일부, … , 23번에 있는 DNA 일부 등을 확인했는데 모든 부분에서 특정 염기 조합이 반복된 횟수가 동일한 것이 있었던 것이다.

국과수가 친자 확인 검사의 정확도를 100%가 아닌 99.9999%라고 하는 것은 0.0001%의 오류 가능성이 있기 때문일까. 유 교수는 “자연과학계의 확률 계산에서 100%가 나오지 않을 뿐 틀릴 확률은 전혀 없다”고 했다. 그런 DNA 검사를 네 차례나 했지만, DNA는 모두 석씨를 보람이의 ‘친모'라 지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