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오른쪽에서 둘째) 미국 대통령과 질 바이든(맨 오른쪽) 여사, 기시다 후미오(왼쪽에서 둘째) 일본 총리, 기시다 유코(맨 왼쪽) 여사가 9일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이날 일본 총리로는 9년 만에 미국을 국빈 방문한 기시다는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불확실한 국제 사회에서 미·일 동맹이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바이든은 X(옛 트위터)에 “(기시다를) 미국에서 만나게 돼 기쁘다”고 적었다. /로이터 연합뉴스

일본 총리로는 9년 만에 국빈 자격으로 미국을 찾은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조 바이든 대통령의 융숭한 환대를 받으며 일정을 시작했다. 미국과 서방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 진영과 러시아와 중국을 주축으로 한 권위주의 진영 간 신냉전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양국은 정상 간 끈끈한 스킨십으로 자유 진영의 결속을 대내외에 과시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바이든은 9일 저녁 워싱턴DC의 한 해산물 식당에서 기시다 총리와 부부 동반 만찬을 가졌다. 국빈 만찬에 앞서 별도로 저녁 자리를 가진 것이다. 두 정상은 어깨를 맞대는 등 친밀감을 과시했다. 이날 만찬에는 두 나라의 우의와 화합을 강조하는 장면이 여럿 등장했다. 바이든은 펜실베이니아주에서 기업을 운영하는 일본계 미국인이 미국 토종 수목(樹木)인 검은 호두나무로 만든 탁자, 일본에서도 인기가 많은 팝스타 빌리 조엘이 서명한 석판화와 LP판 세트 등을 선물했다. 지난주 조지아주(州)에서 경기를 치른 미국과 일본의 여자 축구대표팀이 사인한 축구공을 건넸다. 여자 축구는 미국과 일본이 공통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전력을 자랑하는 스포츠다.

질 바이든 여사는 기시다 유코 여사에게 왕벚나무 그림을 선물했다. 그림 속 왕벚나무는 유코 여사가 지난해 4월 단독으로 미국을 방문했을 때 바이든 여사와 백악관에서 심은 나무다. 일본은 1912년 미국에 벚나무 3000여 그루를 선물했는데 이후 벚나무는 미·일 우호의 상징물이 됐다. 기시다 부부는 답례로 일본의 전통 칠기인 와지마누리로 만든 커피컵, 볼펜 등을 선물했다. 이 같은 극진한 의전을 통해서 바이든은 기시다의 국빈 방문을 통해 일본과의 결속을 최고조로 끌어올리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같은 의지는 정상회담을 앞두고 나온 백악관 브리핑에서도 표출됐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9일 브리핑에서 “양국 무력의 더 훌륭한 조율·통합을 가능하게 하고, 입장이 유사한 파트너 국가들과 연계할 수 있는 국방·방위 협력 강화 조치들이 발표될 것”이라며 “미·일 동맹의 높은 야망을 부각하겠다”고 했다. 중국 패권주의를 견제하기 위한 미·일 군사 협력의 현대화, 미국·영국·호주 3국의 안보 동맹인 오커스(AUKUS)와 일본의 연계 등을 통해 일본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있어 핵심 파트너 국가임을 대내외에 공표한다는 것이다. 바이든 정부 고위 당국자는 “우리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옳았음을 근본적으로 드러내는 결과물을 보게 될 것”이라고 했다. 한국이 미·일 동맹의 핵심 파트너라는 점도 강조됐다. 설리번은 “미·일 회담을 계기로 강화된 양국 간 협력이 한·미·일 3국 공조에도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라고 했다. 이어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의 협력 성과를 비롯해 인공지능(AI), 양자 컴퓨팅, 반도체, 청정에너지 등 핵심 기술 영역에서의 연구 파트너십에 대한 발표도 있을 것”이라 덧붙였다.

기시다도 미국과의 결속을 더욱 굳건히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그는 9일 공개된 워싱턴포스트(WP) 인터뷰에서 “세계는 지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등으로 역사적 전환점에 직면해 있다”며 “오늘날 불확실한 국제 사회에서 미·일 동맹이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번 국빈 방문을 통해 미·일 동맹은 미군과 자위대의 지휘통제 강화, 주일 미군 역할 확대 같은 군사 분야 협력을 넘어 첨단 기술, 인적 교류 등 거의 모든 분야를 망라한 대화에 나설 예정이다. 일본은 이번에 양자·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을 공동으로 개발하는 오커스의 ‘필러2′에도 합류한다. 이와 관련,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고위 당국자는 “한국·캐나다·뉴질랜드를 비롯한 추가 파트너들을 (협력 대상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일본 정치권에선 이번 국빈 방문이 지지율 20% 안팎으로 사퇴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기시다를 살릴 전환점이 될지 촉각을 세우고 있다. 통상 일본 여론은 일본 총리가 미국에서 예우받는 모습이 연출되면 긍정적으로 반응한다. 기시다는 10일 본인의 X(옛 트위터)에 미 대통령 전용 차량에서 바이든과 함께 찍은 ‘셀카’를 올리고 “바이든 대통령 부부와 저녁 자리로 가는 차량 안의 모습”이라고 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기시다 총리 국빈 방문은 두 정상 간 친분을 기반으로, 내우(內憂)를 타개하려는 기대를 담은 외교 무대가 될 것”이라고 했다.

미·일 정상회담에 이어 11일 워싱턴에서 사상 최초로 열릴 미·일·필리핀 정상회의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백악관은 “세 정상이 에너지 안보, 경제·해상 협력, 기술·사이버 안보 파트너십 등을 강화하는 새로운 구상을 발표한다”고 예고했다.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무역 통로인 남중국해·동중국해에서 점증하고 있는 중국 패권주의에 맞서 세 나라가 공동으로 대(對)중국 포위망을 구축한다는 것이다. 백악관 고위 당국자는 “(트럼프 복귀 가능성으로) 미국의 외교 정책에 대한 근심이 많은데 이럴 때일수록 일본처럼 미국과 더 깊게 관여하는 것이 최선의 접근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