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 뉴저지의 초등생 대상 '뎁트포드 리틀 리그' 경기 모습. 전국에서 유소년 스포츠 리그 심판 부족 사태가 심화되는 가운데, 이 뉴저지 리그에서 '소리 지르다 걸린 부모는 3경기 연속 직접 심판대에 세우겠다'는 새 가이드라인을 내걸자 부모들의 욕설과 고성이 사라졌다고 한다.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

미국 전국의 초·중·고교 스포츠 리그가 심판 부족으로 파행하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승부에 집착해 욕설과 고성, 막말을 내뱉는 학부모들이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과 CNN 등에 따르면, 미 중학생 야구 최대 리그인 ‘베이브 루스 야구단’의 심판 수는 최근 5년 새 20% 감소했다. 고교 야구 심판은 2만명이나 줄었다. 전국체육임원협회(NASO)는 유소년 리그 심판 일을 시작한 이 중 70%가 1~2년 새 그만두는 것으로 집계한다. 이 단체 설문조사에선 유소년 스포츠 심판의 절반(47%)이 “신변 안전에 위협을 느낀다”고 답했다.

유소년 리그가 난장판이 된 것은 경기를 관전하는 학부모나 팀 코치들이 판정에 불복해 욕설과 야유, 심하면 폭력을 불사할 정도로 거칠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들은 야구 경기에서 볼이냐 스트라이크냐, 축구에서 오프사이드냐 아니냐를 두고 심판에게 따져 경기가 중단되고, 휴대폰으로 경기 장면을 찍어 ‘비디오 판독’을 요청하고, 자녀가 속한 팀이 지면 주차장까지 따라와 위협하고, 심판 신상을 소셜미디어에 올려 공개 망신을 주기도 한다. 최근 플로리다에선 고교 야구 경기 도중 선수 아버지가 난입, 신체 장애를 가진 퇴역 군인 출신 심판을 폭행해 기소됐다. 필라델피아에선 초등 농구 경기 후 심판 판정을 두고 언쟁을 벌이던 엄마들끼리 주먹질을 해 경찰이 출동했다.

심판들은 “이기면 자기 자식이 잘해서이고, 지면 심판 탓으로 돌리더라” “앞으로 고아들끼리 하는 경기가 아니면 심판을 보고 싶지 않다”며 울분을 삼키고 있다. 지역사회 봉사나 부업 차원으로 주말에 경기당 30~100달러 정도를 수고료로 받고 일하는 심판들은 “이 돈 받고 인격 살인까지 당하고 싶지 않다”고 한다. 한 전직 심판이 페이스북에 ‘무례한 부모들 신고 창구(Offside)’를 열자 전국에서 6000건의 제보가 쏟아졌다고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는 전했다.

미 콜로라도의 한 고교 야구 아마추어 리그 경기를 펜스 뒤에서 부모들이 지켜보는 모습. 전국에서 초중고 스포츠 리그에서 심판 부족 사태가 심화되면서, 올들어 경기가 제대로 열리지 못하며 파행하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콜로라도안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재미있게 즐겨야 할 스포츠 리그가 과열되는 것은 대입에서 체육 경력이 점점 더 중요해지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미국에선 명문대 중심으로 SAT 같은 시험 성적 반영 비중은 줄어드는 대신 다양한 학내외 활동을 정성평가하는 추세인데, 특히 각 종목 체육 특기생을 비중 있게 뽑는 데다, 특기생이 아니더라도 팀 스포츠 경력을 입학 사정에서 리더십 등의 평가 요소로 중시한다. 부모들이 리그 성적을 ‘명문대 티켓’으로 보고 원정 경기 등에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하면서, 결과가 뜻대로 되지 않으면 화풀이를 심판에게 한다는 것이다. 30~40대 젊은 부모들이 자녀에 대한 사소한 지적이나 패배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향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각 리그나 학교에선 각종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 지난달 뉴저지의 한 초등학교 야구 리그에선 “소리 지르다 걸린 부모들은 3경기 연속 직접 심판을 보라”는 가이드라인을 냈더니 야유와 막말이 싹 사라졌다고 한다. ‘침묵의 토요일’을 지정해 경기 중 일절 소리를 못 내게 하거나, 어기면 퇴장시키는 리그도 나왔다. 미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는 심판 부족으로 유소년 아마추어 리그가 파행될 경우 향후 프로 구단 저변도 축소될 것이라고 우려, 올 초 심판 영입·재교육 프로그램을 발족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