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 DC 덕슨 연방상원 건물 226호실에서 리처드 블루먼솔(왼쪽) 민주당 상원의원과 챗GPT 개발사 오픈AI의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가 악수하고 있다. 이곳에서 이날 열린 미 상원 법사위의 ‘AI 기술 감독’ 청문회에서는 AI의 잠재적 위험과 기회에 관한 토론이 이어졌다. /AP 연합뉴스

“AI(인공지능)는 산업혁명이나 휴대폰·인터넷과 비슷하게 인류에게 유익한 방향으로 발전할까요. 아니면 원자폭탄 같은 파괴적 존재가 될까요. 저는 정말 궁금합니다.”(미 공화당 조시 홀리 상원의원)

지난 16일 오전 10시(현지 시각) 미 워싱턴DC 덕슨(Dirksen) 연방상원 건물 226호실. 이곳에서 열린 미 상원 법사위의 ‘AI 기술 감독’ 청문회에 참석한 의원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인공지능의 잠재적 위험과 기회에 대한 토론을 시작했다. 이날 청문회는 뛰어난 언어 구사 능력으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챗GPT’ 개발사 오픈AI의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CEO)가 출석해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3시간 동안 이어진 ‘AI 청문회’의 열기를 달아오르게 한 진짜 동력은 스타 CEO가 아닌, 미래를 바꿀 기술을 제대로 알기 위해 머리를 싸맨 진지한 의원들이었다.

청문회는 미 연방정부의 부채 한도 상향 조정을 두고 여당인 민주당과 야당인 공화당이 대립 중인 가운데 열렸다. 어떻게 대처하는지에 따라 기회 혹은 위협이 될 AI라는 거대 신기술을 따라잡기 위해 여야가 분쟁을 잠시 접고 머리를 맞댄 것이다. 올트먼 외에도 크리스티나 몽고메리 IBM 부사장, 게리 마커스 뉴욕대 명예교수 등이 출석했다. 의원들은 AI 발전 현황과 예상되는 여파에 대해 집요하게 질문했다. 미 정치 매체 폴리티코는 “CEO가 출석하는 청문회는 보통 정치적 ‘연극’일 때가 많지만 이날 의원들은 정책 결정을 위한 핵심을 진지하게 파헤치려 했다”고 전했다.

“의회는 소셜미디어에서 유해 콘텐츠가 범람하는 것을 막지 못했습니다. 규제가 기술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것인데, AI가 위협이 되기 전에 조치(규제)를 해야 합니다.” 한때 신기술이었던 소셜미디어가 가짜 뉴스, 불법 게시물 등으로 오염되는 것을 의회가 제대로 막지 못했다는 리처드 블루먼솔(민주당) 의원의 ‘고백’에 의원들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기술 혁신 중 하나를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생성형 AI라는 것, 이건 도대체 능력이 얼마나 됩니까. 이해를 해보려고 하는데….” 홀리 의원의 질문에 올트먼은 “좋은 질문이다. 나의 고민이기도 하다”라며 토론을 이어갔다. 이날 회의장 분위기는 출석한 증인들을 다그치고 압박하는 여느 청문회와 달랐다. 새로운 내용을 배우는 강의실 쪽에 오히려 가까웠다. 상원 법사위 일부 의원은 올트먼과 전날 비공개 만찬을 통해 ‘AI 과외’를 받으며 청문회를 준비했다고 한다.

/일러스트=김현국

최근 미 의원들은 신기술에 대한 규제 도입을 제때, 제대로 해야 한다는 위기감에 미래 기술을 ‘열공(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 의회가 방치한 소셜미디어라는 신기술이 거짓 정보와 여론 조작의 온상으로 악용되고 민주주의의 위기까지 불러왔다는 반성이 이런 기조를 불러왔다. 72세인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지난 한 달 동안 100명이 넘는 AI 전문가를 만나 집중 과외를 받으며 관련 지식을 습득 중이라 한다. 앞으로 민주·공화 의원들을 개별적으로 접촉해 초당적 AI 규제 법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날 만난 한 의회 관계자는 “슈머는 나이가 적지 않은데도 무섭게 공부하더니, 그 누구보다 AI 기술을 잘 이해하고 있더라”고 했다.

하원의 민주·공화 의원들은 AI를 연구하기 위해 최근 초당적인 ‘AI 코커스(caucus·연구 모임)’를 만들었다. 16일 상원 청문회가 끝난 후 이들은 올트먼 CEO를 불러 비공개로 규제 도입 방향을 논의했다. 이날 또 다른 상원 상임위인 국토안보위에선 ‘정부 기관에서의 AI 사용 검토’ 청문회가, 17일엔 ‘AI 기술과 지식재산권의 연관성’(하원 법사위), ‘연방 관리자급 공무원들을 위한 AI 교육 프로그램’(상원 국토안보위) 등 두 청문회가 잇달아 열렸다. 올해 들어 미 의회에서 열린 AI 관련 청문회만 8번이다. 위성, 사이버 안보 등 다른 첨단 기술을 다룬 청문회를 포함하면 70번이 넘는다.

이렇게 습득한 지식을 토대로 만든, 각종 첨단 기술의 지원 및 규제·윤리 규정 등을 다룬 법안 제출 건수는 지난 5개월간 784건에 달한다. 미 공영방송 NPR은 “(민주·공화 양당 간) AI 발전에 맞춰 발 빠르게 규제 입법을 하려는 경쟁 조짐도 보인다”고 전했다.

이날 청문회에서 의원들이 가장 집중했던 주제는 ‘가짜 뉴스’와 이를 통한 ‘선거 개입’ 가능성이었다. 중·러 등이 AI 기술을 통해 미 유권자들의 선호를 파악한 뒤, 이들의 심리나 대중 여론을 교묘하게 조종할 가능성을 우려한 것이다. 마커스 교수는 “이 새로운 (AI) 시스템들은 불안정해질 가능성이 크다”며 “외부인들은 AI를 우리의 선거에 영향을 주기 위해 사용할 것이고, 민주주의는 위협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몽고메리 부사장은 “의회는 AI 기술 자체를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이 높은 활동 범주는 이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정밀 규제법’을 조속히 채택해야 한다”고 했다.

이날 청문회에선 빅테크 플랫폼 기업의 불법 콘텐츠에 대한 면책 특권을 보장해주는 ‘통신품위법 230조’도 도마에 올랐다. 지금까지 구글과 메타(옛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플랫폼 사업자들은 이 법 조항을 통해 플랫폼에 올라오는 게시물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았다. 최근 들어선 민주·공화 양당 모두 기업들이 ‘가짜 뉴스’ 등을 빅테크가 방관하고 있다며 비판 수위를 높이고 있다. 블루먼솔 의원은 “(AI와 관련해선) 기업이 사전에 판단하고 결과에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 가장 강력한 (규제) 도구가 될 수 있다”고 했다. AI 기술에 대해선 기업의 책임을 입법을 통해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