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셔드슨 미 컬럼비아대 저널리즘 스쿨 교수가 지난달 27일(현지시각) 뉴욕 맨해튼 교정의 퓰리처홀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뉴욕=정시행 특파원

“가짜 뉴스가 범람하는 지금이 오히려 언론의 황금기가 될 수 있다. 언론이 철저한 사실 확인, 공정한 보도를 위해 더욱 치열한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가짜 뉴스와 음모론이 각국의 여론 지형을 뒤흔드는 지금, 모호한 진실의 기준을 확립하려는 언론의 노력이 그 사명을 다할 수 있을까. 언론학과 정치 커뮤니케이션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마이클 셔드슨(76) 미국 컬럼비아대 저널리즘 스쿨 교수는 지난달 27일(현지 시각) 본지 인터뷰에서 “정보 환경이 아무리 변해도 언론의 게이트키핑(gate keeping·비판적 정보 선별) 역할은 누구도 대체할 수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셔드슨 교수는 “대부분 가짜 뉴스는 특정 정치인을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어서 그 권력에만 아부한다”며 “냉철한 근거를 갖고 권력을 비판하고, 어떤 정치 세력으로부터도 사랑받지 않는 언론은 살아남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최고 권위 언론상인 퓰리처상 심사와 선정을 주관하는 컬럼비아대 저널리즘 스쿨에서 강조하는 기자의 제1 원칙은 ‘아무리 사소한 팩트도 여러 번 확인해 정확하게 쓰라’는 것이라며 “팩트에 대한 집착이 가짜 뉴스를 이겨내는 언론의 힘을 만든다”고 말했다.

-가짜 뉴스는 왜 생겨나며 얼마나 위험한가.

“가짜 뉴스와 음모론은 인류사에서 오래된 현상이다. 단순한 여론 교란을 넘어 인류 평화까지 위협하곤 했다. 1903년 유대인들이 세계 정복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시온 장로 의정서’라는 위조 문서가 히틀러의 유대인 말살 정책의 토대가 됐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소련 제국의 영광 재현’이란 가상 판타지를 구현하려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오늘날의 가짜 뉴스는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순식간에 확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위험하다.”

-왜 유독 정치권에서 가짜 뉴스가 많은가.

“권력자의 허영과 자아도취에 제동을 거는 ‘현실’을 부정하기 위해 대안으로 만드는 게 가짜 뉴스다. 통상 좌우 양극단의 정치 세력, 특히 정치 분열로 이익을 보는 부도덕한 정치인들이 출처다. 이들은 언론이 자신들의 영웅을 비판하는 것을 싫어한다.”

2021년 1월 6일, 트럼프 지지자들이 미국 의회에 난입하는 모습. / 로이터 연합뉴스

-사람들이 가짜 뉴스 발신자에 미혹되는 이유는 뭔가.

“가짜 뉴스 유포자들은 각종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차별로 소외됐다고 느끼는 이들을 파고든다. ‘나는 열심히 일해도 놀고먹는 소수 엘리트·기득권층에 비해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선동하면, 그 정치인의 어떤 거짓말도 먹히게 된다. 가짜 뉴스를 막기 위해서라도 언론은 불평등 문제에 항상 관심을 가져야 한다.”

-가짜 뉴스가 언론의 신뢰도를 좀먹고 있는데.

“지금은 사람들이 공정과 평등에 민감해지며 모든 기성 체제에 대한 불신이 증가하는 때다. 기자들이 지식 정보 산업의 최전선에 있다는 자부심을 잃으면 안 된다. 나 같은 학자들도 매일 신문을 읽으며 세상을 배운다. 한때 신문을 위협할 것 같았던 TV와 인터넷은 여전히 신문 기사를 갖다 쓴다.”

-신문 같은 정통 언론은 계속 유용한가.

“미 언론의 경우 트럼프 정부와 1·6 의사당 난입 사태를 거치면서 팩트 체킹부터 권력 취재 기법까지 수년 새 양적·질적으로 엄청나게 발전했다. 최근 워싱턴포스트 등 주요 언론에 ‘민주주의’라는 취재 영역이 새로 생겼다. 정치부와 별도로 공직자 재산과 정치자금, 캠페인 방식, 개표기 제조업체까지 민주주의의 기술적 이슈를 평소 샅샅이 파헤치는 신종 영역이다. 현재 미 언론은 역사상 가장 균형 잡혀 있고, 탐사 보도의 수준은 최고에 달해있다.”

마이클 셔드슨 미 컬럼비아대 저널리즘 스쿨 교수가 지난달 27일(현지 시각) 뉴욕 맨해튼 컬럼비아대의 퓰리처홀에 있는 연구실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뉴욕=정시행 특파원

-언론이 가짜 뉴스와 차별화되려면.

“가장 큰 차이는 실수했을 때 사과하고 수정하느냐다. 가짜 뉴스나 유사 언론은 잘못을 절대 인정하지 않지만, 정통 언론은 즉시 사과하고 고친다. 또 하나는 ‘적개심’이다. 내가 아는 좌파 인사가 ‘(진보 매체) 뉴욕타임스는 친(親) 트럼프 매체’라고 불평하더라. 매일 헤드라인에 ‘트럼프는 X 자식’이라고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뉴욕타임스의 권위는 바로 거기에서 나온다. 뉴욕타임스는 전통적으로 사설로 주요 선거 후보자 지지 선언을 하는데, 편집국 기자들이 해당 후보의 스캔들을 파헤치는 기사로 낙마시키는 일이 여러 번 있었다. 사실과 의견을 철저히 구분하고, 어떤 권력도 근거 없이 물어뜯거나 찬양하지 말아야 한다.”

-기자들은 어떤 마음가짐을 갖고, 어떻게 훈련해야 하나.

“언론의 제1 본령은 정부가 책임을 다하는지, 권력자가 자기 주머니를 채우지 않는지 감시하는 것이다. 이 사명을 늘 마음에 새겨야 한다. 직업 기자들이 저널리즘 교육을 지속적으로 받는 것도 필요하다. 미국에는 거점 대학마다 장·단기 기자 연수 프로그램이 활성화돼 있다.”

☞셔드슨 교수는

언론사학과 언론사회학, 정치 커뮤니케이션 분야의 석학. 1946년 미국 위스콘신주에서 태어나 하버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시카고대, 캘리포니아대 교수를 거쳐 2009년부터 컬럼비아대 저널리즘 스쿨 교수로 재직 중이다. ‘미국 기억 속의 워터게이트’(1992) ‘왜 민주주의는 사랑스럽지 않은 언론을 필요로 하나’(2008) ‘언론은 왜 여전히 중요한가’(2018) 등 10권의 저서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