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5일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의 알 살람 왕궁을 찾은 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과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회담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2018년 사우디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피살되자 이 사건의 배후자로 빈 살만 왕세자를 지목하며 그를 “왕따로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빈 살만 왕세자를 만나 ‘주먹 인사’를 건네며 친밀감을 표시했고, 양국의 전략적 파트너십 강화를 논의했다. /UPI 연합뉴스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끄는 전 세계 주요 산유국 모임인 OPEC+가 석유 증산량을 대폭 줄이기로 결정했다. 유가 상승발 인플레이션이 각국을 강타하는 상황에서 추가 유가 인상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특히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최근 사우디를 직접 찾아 증산을 부탁했는데도 무시당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非)OPEC 주요 산유국 협의체인 OPEC+는 3일(현지 시각) 정례 회의를 열고 “9월 원유 증산량을 하루 10만배럴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는 7~8월 하루 증산량 64만8000배럴의 15%에 불과하다. AFP통신은 “전 세계 하루 석유 소비량은 1억배럴이며 ‘10만배럴’은 단 86초간 사용량에 불과하다”며 “국제 에너지 위기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 미미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회의에 앞서 OPEC+ 장관급 감시위원회는 경기 침체 우려 등을 이유로 하루 10만배럴로 증산 폭을 줄일 것을 권고했다. 위원회는 내년 글로벌 원유 수요가 하루 270만배럴로, 올해 340만배럴보다 감소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미 글로벌 침체 우려로 유가가 정점을 찍고 하락하는 추세라 공급을 늘려 손해볼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는 이야기다.

이날 OPEC+ 회의는 지난달 중순 바이든 대통령이 사우디를 방문한 후 처음 열리는 회의였다. 바이든은 집권 초 사우디 실세 무하마드 빈 살만 왕세자를 언론인 살해 등의 책임을 물어 ‘국제 왕따’로 만들겠다고 했다가, 미 인플레 악화로 위기에 처하자 빈 살만을 만나 원유 증산 등을 부탁했다. 앞서 에너지 위기 문제로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도 지난 3월 사우디를 방문했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7월 말 빈 살만을 엘리제궁으로 초청했다.

시장 분석업체 엑시니티의 한 탄 수석 애널리스트는 “현 시점에선 사우디 방문 성과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바이든 정부가 실망할 것”이라고 했고, 리드 알카디리 유라시아그룹 상무는 “10만배럴 증산은 바이든에게 정치적인 모욕 수준”이라고 했다. 다만 이날 미 원유 재고가 예상보다 늘면서 국제 유가는 하락했다. 서부텍사스중질유(WT)는 3일 전장보다 4% 떨어진 90.66달러에 마감했고, 영국 브렌트유는 4일 96달러 선에 거래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