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라미 현(오른쪽)이 14일 미 버지니아주에서 6·25 참전 용사 김진규씨와 함께 웃고 있다. /라미 현 페이스북

“3년 전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촬영했던 참전용사 이철남 선생님이 전날 별세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더 늦지 않게 더 많은 용사를 찾아뵙겠습니다.”

14일(현지 시각) 오전 미 버지니아주(州) 애넌데일의 한 식당에서 사진작가 라미 현(43·현효제)씨가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현씨는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freedom is not free)’라는 글귀가 새겨진 모자를 쓰고 “선생님은 웃을 자격이 있습니다, 웃으세요”라고 외쳤다. 카메라 앞에 선 노병(老兵)의 표정이 풀렸다. 노병은 미국에 사는 6·25 참전용사 김진규(88)씨. 그가 현씨가 진행하는 ‘프로젝트 솔저(Project Soldier)’의 모델이 됐다.

‘프로젝트 솔저’는 외국에 사는 6·25 참전용사들을 직접 찾아가 이야기를 듣고, 군복 입은 그들의 사진을 남기는 현씨의 작업이다. 5년 전부터 미국·영국 40여 도시를 방문해 지금까지 참전용사 1500여 명을 찍었고, 이들에게 사진 액자를 선물로 전달했다.

이날 평균 나이가 97세인 참전용사 11명이 이곳에 군복을 입고 모였다. 손경준(89)씨는 “우리를 대단한 사람처럼 대접해 달라는 것이 아니다”라며 “전쟁의 참상을 이렇게 잘 극복한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평양에서 태어나 1사단 소속으로 전쟁을 치렀던 김석은(100)씨, 켈로부대(미 극동군사령부 직할로 조직된 비정규전 부대) 소속으로 군번·계급도 없이 대북 특수 임무를 수행했던 김인수(90)씨도 참석했다.

노병들은 과거 전쟁을 회상했다. 1950년 겨울 황해도 연안에서 엔진도 없는 어선을 타고 노를 저어 적진에 상륙하면서 두려움에 떨었다는 김인수씨는 “평양의학전문학교를 다니다 학도병으로 입대했다”며 “수많은 젊은이들이 피 흘리면서 지킨 대한민국이 다시는 이념 갈등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 통일 한국을 보고 싶다”고 했다.

현씨는 자신의 자동차, 카메라 렌즈를 팔아 이 프로젝트 경비를 대고 있다. 최근엔 그의 활동이 알려지면서 개인 후원금도 늘고 있다. 종전 70주년이 되는 2023년까지 20여 한국전쟁 참전국을 모두 찾아 최소 1만5000명의 참전용사를 만나는 게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