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하원이 중국을 견제하고 미국 반도체 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2022년 미국 경쟁법(America COMPETES Act of 2022)’을 25일(현지 시각) 발의했다. 연방상원이 작년 6월 2500억달러(약 300조8700억원) 규모의 ‘미국 혁신 및 경쟁법’을 통과시킨 데 이어, 연방하원도 관련 법안을 마련한 것이다. 이에 따라 반도체 등 분야에서 중국의 성장과 도전에 강력한 억제를 가하고, 미국을 중심으로 한 생산 기지·공급망 구축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게 될 전망이다.

하원이 마련한 미국 경쟁법의 핵심은 미국 내 반도체 연구 지원과 생산 보조에 520억달러(약 62조5800억원)를 투입하는 것이다. 또 핵심 산업 분야의 원자재와 부품 등을 확보하는 공급망 안정성 강화에도 450억달러(약 54조1700억원)를 배정했다. 미 의회에 미국 내 반도체 생산 강화를 위한 법안 마련을 촉구해 온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하원과 상원이 제시한 법안들은 미국이 20세기 세계 경제를 주도하도록 도왔던 우리 산업기지 및 연구·개발에 대한 파격적 투자에 해당된다”는 환영 성명을 발표했다.

미 하원은 2월 중 이 법안을 처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로이터통신은 “하원 법안이 통과되면 상·하원 지도부가 만나서 상·하원 법안의 상이점을 통합하는 협상을 하게 된다”고 전했다. 상원 법안에는 미국 반도체 제조 지원을 위한 520억달러 외에 미국 기술 연구를 강화하기 위한 예산 1900억달러가 더 배정돼 있었다. 하원 예산에 1900억달러 부분은 빠져 있다.

이날 발의된 2900쪽 규모의 방대한 법안에는 반도체 외에도 중국을 견제하고 미국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내용이 촘촘히 담겼다. 인공지능(AI), 양자(Quantum) 정보과학, 에너지, 사이버 보안 등 핵심 기술에 대한 연구를 지원하고 수학·과학·기술 교육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방안이 마련됐다. 에너지 안보를 위한 연구도 강조하면서 미국 에너지부가 청정 에너지와 함께 ‘핵융합’ ‘핵물리학’ ‘동위원소 개발’ 등에 대한 연구도 지원하도록 하는 내용도 담겼다. 원자력 발전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최근 주요 과제로 대두된 공급망 안정성 관련 조항도 여럿 있다. 우선 공급망 경색 문제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국가공급망 데이터베이스’를 만들도록 했다. 의료 제품의 공급망 개선에 대해서는 별도 조항이 마련돼 있다.

미국 하원은 이 법에서 중국과 함께 러시아, 북한, 이란을 ‘우려 대상국’으로 지정, 이들 국가 출신의 ‘악의적 인재’를 미국 예산을 통한 연구·개발 및 교육 지원에서 배제하는 규정도 만들었다. 미 정부의 연구 지원금이나 장학금 수혜 대상자들이 ‘우려 대상국’ 출신의 ‘악의적 인재’가 아니라는 점을 확인하라는 것이다. 미국 내의 중국 출신 유학생이나 학자·연구원들이 중국공산당이나 중국인민해방군을 위한 스파이 활동을 했다는 우려를 반영한 조항이다.

미국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하원은 ‘동맹과 파트너십에 대한 투자’도 강조했다. 특히 미국, 일본, 호주, 인도의 4국 연합체인 쿼드(Quad)와의 지속적 관계 강화를 상당히 비중 있게 언급했다. 기술 협력, 에너지 혁신, 기후변화 대응, 인프라 및 디지털 인프라 개발, 교육, 재난 관리, 세계 보건 안보 등 모든 분야에서 쿼드와의 관계를 진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일환으로 ‘쿼드 의회 간 워킹 그룹’을 설치하는 방안도 제시돼, 법안 통과 후 30일 내에 국무부 장관이 쿼드 국가들과 관련 협상을 시작하도록 했다.

대만, 홍콩, 신장 위구르, 티베트처럼 중국이 민감하게 생각하는 문제들도 망라됐다. 하원은 현재 미국 내에서 대만대사관 역할을 하는 ‘타이베이 경제문화대표처’ 이름을 ‘주미대만대표처’로 바꿀 것을 관련 당국자들과 협상하라고 했다. “미국의 정책은 대만을 대만으로 부르는 것이지 ‘타이베이’나 ‘차이니스 타이베이’로 부르는 것이 아니다”라는 이유에서다. ‘대만’이란 국명 사용에 극도로 민감한 중국이 크게 반발할 만한 내용이다.

이 법안에는 홍콩 민주주의 진작을 위한 예산을 배정하고,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중국의 인권 탄압을 피해 망명한 사람들의 정착을 지원하는 방안도 담겼다. 위구르 인권 문제를 이유로 베이징 동계올림픽의 외교적 보이콧을 독려하는 것이 미국의 정책이 돼야 한다고 했고, 주중 미국대사관에 티베트 문제만 다루는 ‘티베트 유닛’을 만들라는 내용도 포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