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싱가포르를 방문한 대니얼 크리튼브링크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한 기자로부터 “역내 국가 중 왜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은 민주주의 정상회의에 초청받지 못했나”란 질문을 받았다. 미국의 동맹인 태국과 미국의 주요 협력 대상인 싱가포르, 베트남이 왜 바이든 행정부가 중시하는 이번 회의에는 초청받지 못했냐고 물은 것이다. 지난달 27일부터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태국 4국 순방 중이던 크리튼브링크 차관보는 “어떤 나라들만 (민주주의 정상회의에) 초청됐고, 싱가포르처럼 우리의 가장 가까운 파트너들을 포함해 초청받지 못한 여러 나라가 있다. 이것이 우리와 싱가포르 간 파트너십의 역량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해야 했다.

보우소나루, 두테르테, 에르도안

같은 날 후안 곤잘러스 백악관 라틴아메리카 담당 선임 국장은 민주주의 정상회의 관련 브리핑에서 “브라질의 민주적 제도를 끊임없이 시험하는 브라질 대통령이 왜 한 자리를 차지해야 하나”란 질문을 받았다. 브라질 정부는 이번 회의에 초청을 받았는데, 남미의 대표적인 극우 포퓰리스트인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민주주의 수호에 적합한 인물이냐고 물은 것이다. 곤잘러스 국장은 “초청자 명단은 폭넓고 다양하다”며 “브라질의 제도는 긴 세월 동안 도전을 견뎌왔고 견고함을 보여줬다. 브라질 민주주의의 경로를 보면 브라질의 민주적 제도가 세계에 가르쳐 줄 것이 많기 때문에 참가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미 정부 당국자들의 이런 해명에도 불구하고 ‘왜 어떤 국가는 초청받지 못했나’ 혹은 ‘초청받았나’를 둘러싼 불만과 잡음은 계속되고 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권위주의 통치를 하고 있는 터키는 나토 동맹국이지만 초청받지 못했다.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 등 인권 문제를 일으킨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상당수 중동 동맹국도 초청에서 제외됐다. 빅토르 오르반 총리가 있는 헝가리는 유럽연합(EU) 중 자국만 초청을 못 받았다며 EU 대표의 이번 회의 참석을 저지하겠다고 나섰다. 반면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이 권위주의 통치 중인 필리핀은 초청을 받았다.

미국은 이번 회의 초청 기준을 밝힌 적 없다. 초청 기준이 불명확하다는 논란이 계속되자 국무부는 이번 회의를 소개하는 홈페이지를 통해 “미국은 지역별로 다양한 조합의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와 신생 민주주의 국가들에 연락을 취했다”며 “정상회의 목표를 지지하는 공약을 할 진정한 의지를 보인 모든 나라와 관계를 맺을 것”이라고 밝혔다. 일부 국가가 이번 회의에서 민주주의 옹호와 인권 개선 공약을 밝히라는 압박을 받지 않기 위해 미국의 초청을 거절했을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