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맨해튼의 한 식당에서 지난 2일 손님들이 지나가는 낙태권 옹호 시위인 '위민스 마치' 행렬에 환호를 보내고 있다. 뉴욕 등에선 코로나 백신 접종률이 90%를 넘어서면서 거리두기가 무의미해져 각종 모임과 시위 등이 자유롭게 이뤄지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2일 오후(현지시각) 미국 뉴욕시 월스트리트 인근 골목길 ‘스톤 스트리트.’ 서울 을지로처럼 오래된 노포와 식당이 가득 찬 이 거리에서 옥토버페스트(독일의 가을 맥주 축제)가 열렸다. 거리를 꽉 메운 수백개 야외 테이블에 20~30대 월가 직장인 등 1000여 명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 굴, 피자, 소시지 등과 함께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왁자지껄한 웃음과 대화 소리에 귀가 먹먹해질 정도였다. 직원 일부를 제외하면 손님 중에선 마스크 쓴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뉴욕 술집에 들어가려면 백신 접종 증명서를 내보여야 했지만 이런 절차도 무의미해졌다.

지난 2일 뉴욕시 월스트리트 인근 노포 골목인 스톤스트리트에서 열린 옥토버페스트에 온 월가 직장인들의 모습. /뉴욕=정시행 특파원

월가 증권거래소 앞 ‘돌진하는 황소상’엔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국내외 관광객이 100m 정도 줄지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관광버스들 역시 2층에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꽉꽉 채워 맨해튼 시내 관광 명소들을 쉴 새 없이 돌았다. 이날 맨해튼의 리틀아일랜드, 하이라인파크, 센트럴파크, 거버너스아일랜드 등 소풍 명소들은 이른 가을 정취를 즐기려 가족·친구들과 함께 쏟아져나온 뉴요커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뉴욕 월가의 '돌진하는 황소상' 앞에 지난 2일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 있다. /뉴욕=정시행 특파원

이달 말 핼러윈을 앞두고 각 초등학교와 주민센터 등에선 ‘트릭 오어 트리트(Trick or treat)’ 사탕 나눠주기 행사와 파티를 계획하고 있다. 보건 당국이 올해 핼러윈 파티를 정상에 가깝게 열도록 허용하면서다.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이던 지난해 가을, 날이 추워지며 바이러스 전파력이 높아질까 봐 강력하게 거리 두기 단속을 하던 때와는 천양지차다.

지난 9월 미 매사추세츠주의 한 호박 농장에서 어린이들이 핼러윈을 앞둔 호박따기 행사에 참여하는 모습. 미국에서 올해 핼러윈은 사탕 나눠주기 행사 등이 엄격히 금지됐던 지난해와 달리 자유롭게 치러질 전망이다. /AP 연합뉴스

이 같은 풍경은 미국이 완연한 ‘위드 코로나(with corona)’로 접어들었음을 보여준다. 미국의 누적 코로나 사망자 수는 70만명을 넘었고 델타 변이 바이러스도 아직 위력을 떨치고 있지만, 최근 한두달 새 백신 보급이 늘면서 전체 확진자 수가 뚜렷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3일 기준으로 지난 일주일간 일일 확진자 평균치는 전주보다 13%, 입원 환자 수는 15% 줄었다. 또 미국은 지난달부터 부스터 샷(추가 접종)에 돌입해 사실상 원하면 누구나 3차 접종을 할 수 있으며, 연말부터는 5세 이상 어린이도 백신을 맞을 전망이다.

앤서니 파우치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 소장은 3일 전체 백신 접종률을 끌어올려야 한다면서도 “미국은 이제 분명히 코로나의 모퉁이를 돌았다”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코로나는 이제 팬데믹(세계적 대유행병)이 아닌 엔데믹(한시적 풍토병)이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