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제약사 모더나와 2000만명 분의 코로나 백신 공급에 “합의했다”는 청와대 발표와 달리, 모더나 측은 “한국 정부와 논의 중”이란 입장을 밝혔다. 이 때문에 청와대가 백신 공급 계약과 관련해 다소 앞서 나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모더나는 29일(현지 시각) “한국에 4000만 도스(dose·1회 접종분)의 코로나 백신을 공급하기 위한 한국 정부와의 논의를 확인한다(confirms discussions)”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이 자료에서 모더나는 “한국 정부와 잠재적으로(potentially) 4000만 도스 또는 그 이상의 모더나 백신을 공급하기 위해 논의 중이란 점을 확인한다”며 “제안된 합의(proposed agreement)에 따르면 배포는 2021년 2분기에 시작될 수 있을 것(would begin)”이라고 했다.

해리스 美부통령 당선인도 접종 - 카멀라 해리스(왼쪽) 미국 부통령 당선인이 29일(현지 시각) 워싱턴DC의 한 병원에서 미국 제약사 모더나가 개발한 코로나 백신 주사를 맞고 있다. 해리스 당선인의 접종 장면은 TV로 생중계됐다. /로이터 연합뉴스

전날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이 스테반 반셀 모더나 최고경영자와 27분간 통화했으며 “우리나라에 2000만명 분량인 4000만 도스의 백신을 공급하기로 합의했다”고 했다. 모더나 측 발표와는 온도차가 있다.

모더나가 미국·영국·싱가포르 등과 백신 공급을 합의했을 때 발표했던 보도자료와 비교해 보면 차이는 뚜렷하다. 모더나는 지난 8월 11일 “미국 정부와의 초기 1억 도스 공급 합의를 발표한다(announces supply agreement)”란 제목의 보도자료를 냈다. 이 자료에서 모더나는 “미국 정부가 1억 도스를 확보했다(has secured)고 발표한다”는 표현을 썼다. 한국에 대한 보도자료엔 “확보”란 표현이 없다.

지난달 17일 영국 정부와 백신 공급에 합의했을 때도 모더나는 “영국 정부와의 공급 합의를 발표한다”고 했다. “영국 규제 당국이 사용을 승인하면 2021년 3월부터 공급을 시작한다”는 구체적 문구도 보도자료에 있었다. 지난 14일 싱가포르와 백신 공급에 합의했을 때는 “싱가포르 보건부와 계약을 맺었다(concluded an agreement)”라고 발표했다.

모더나가 한국에 대해 사용한 “논의를 확인한다”는 표현은 통상 협상이 진행 중이란 사실을 공식화할 때 쓰는 것으로 보인다. 모더나는 8월 24일 “유럽에 8억 도스를 공급하기 위한 유럽연합 집행기관과의 진전된 논의를 확인한다”고 했다. 그리고 석 달 후인 11월 25일 “유럽연합이 초기 8억 도스의 선구매 계약을 승인했다고 발표한다”고 했다. 논의부터 계약까지 석 달 이상이 걸린 것이다.

청와대도 28일 문 대통령과 반셀 CEO의 통화 내용을 브리핑하면서 아직 최종 계약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은 밝혔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합의에 따라 정부와 모더나는 (중략) 백신 공급 계약을 연내(年內) 체결할 계획”이라고 했었다. 하지만 연내 계약 체결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모더나는 일본과 협상 중이던 지난 8월 28일 “4000만 도스를 일본에 공급하기 위한 일본 후생노동성과의 논의를 확인한다”는 보도자료를 냈었다. 당일 코로나 관련 기자회견에 나선 가토 가쓰노부 당시 일본 후생노동상은 이에 대해 “모더나와 현재 교섭을 진행하고 있는 중”이라고만 했다. 기자가 “4000만 도스는 언제쯤을 목표로 하고 있나”고 물었을 때도, “내년 상반기부터 4000만 도스 이상을 공급한다는 것을 전제로 논의하고 있지만 그 이상은 아직 교섭의 과정”이라고만 답했다. 두 달 후인 10월 29일 최종 계약이 체결된 후에야 후생노동성은 “계약을 체결했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청와대가 모더나와의 논의 중에 “합의했다”는 단정적 표현으로 브리핑에 나선 것과는 대조적이다.

모더나 보도자료와 ‘온도차'가 있다는 논란에 대해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날 “(합의를) 부인하는 내용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비상식”이라고 했다.

한편 모더나는 보도자료 하단에 “이 보도자료에 나온 미래 지향적 서술은 약속이나 보장이 아니다”란 문구도 넣었는데, 이는 미국 상법에 따라 미래에 대한 전망이 사실로 오인받아 회사가 책임을 지게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대부분 넣는 상투적인 문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