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전 국방차관 알리레자 아크바리./로이터 뉴스1

지난 1월 중순 이란 국영 방송은 알리레자 아크바리(62) 전 이란 국방차관에 대한 사형이 집행됐다고 보도했다. 그는 2008년 공직에서 물러나고 영국 국적을 취득했지만, 계속적으로 이란 정부 핵심 인사들의 두터운 신임을 받아 이란의 핵 개발 정책에 조언하던 인물이었다.

2019년말 이란 국가최고안보회의 의장의 초청을 받아 다시 이란에 입국한 그는 며칠 뒤 체포됐다. 아크바리는 이란 핵 프로그램에 대한 비밀과 주요 핵 관련 인사들을 서방에 노출한 간첩 협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물론 그와 그의 가족은 간첩 사실을 부인했고, 영국 정부는 영국 시민이기도 한 그의 무죄와 석방을 촉구했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그가 서방에 전달했던 이란의 핵 개발 프로그램이 무엇이었고, 그의 정보가 서방의 이란 경제 제재 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자세히 소개했다.

◇드러난 테헤란 근교 산속 군사시설의 정체

2008년 4월, 영국의 한 고위 정보관리가 이스라엘의 텔아비브로 갔다. 영국 측이 확보한 한 스파이가 ‘이란이 핵폭탄 개발을 위해 우라늄 농축시설을 짓고 있다’는 확고한 정보를 제공했다고 이스라엘 측에 알렸다. 이 스파이의 신분은 이후 10년이 넘도록 비밀에 싸였다.

포르도 우라늄 농축시설의 위성 사진

이스라엘은 깜짝 놀랐다. 서방과 이스라엘 정보 당국도 위성 사진을 통해, 당시 이란이 테헤란 남쪽의 산간 지역 포르도에 뭔가 짓고 있다는 것은 알았다. 그러나 군사 비축 시설로만 알았지, 우라늄 농축 시설로 짓는 것인 줄은 몰랐다.

당시 이스라엘 국방 장관의 비서실장이었던 요니 코렌은 “영국은 이란 핵 개발 관련 정보 수집 면에서 미국과 우리가 접근할 수 없었던 장소에서 인적 정보(humint)를 확보했다”고 말했다.

이란의 포르도 비밀 우라늄 농축 시설의 존재는 이란의 핵개발에 대한 진위(眞僞) 논란을 잠재웠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09년 G7 정상회의에서 이 정보를 공유했고, 미국은 이란 제재에 미온적인 중국과 러시아에 대해서도 이란이 핵개발과 관련해 투명하지 않았음을 설득할 수 있었다. ‘포르도 발견’ 이후 이란에 대한 국제사회의 태도는 근본적으로 바뀌어 더 많은 제재가 이뤄졌다.

◇공식 석상에선 “핵무기 보유해야” 주장

하지만, 대중의 눈에 비친 아크바리는 열렬한 이슬람 시아파 신자였다. 기도할 때마다 이마를 대는 점토 돌에 눌려, 그의 이마 가운데엔 팬 자국이 있다. 엘리트 부대인 혁명수비대의 고위 사령관을 지냈고, 공식적인 자리에선 이란이 핵무기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치적 매파였다.

알리레자 아크바리 전 이란 국방차관./로이터

국방부 차관을 지낸 뒤에는 영국으로 옮겨가 민간 부문에 진출했지만, 고국을 오가면서 이란 정부 수뇌부의 신뢰를 잃지 않았다.

2004년부터 서방과 이스라엘에서 이란이 비밀리에 핵개발 프로그램을 추진한다는 의혹이 일었다. 아크바리는 주요국 대사들을 만나 “사실 무근”이라고 주장했다. 그를 아는 이란인들은 아크바리가 글쓰기와 말하기에 탁월했고, 수뇌부의 신망이 두터워 공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핵ㆍ군사 프로그램에 대해 민감한 비밀 정보에 접근할 수 있었다고 NYT에 말했다.

◇그가 체포되고 1년 뒤, 이스라엘은 이란 ‘핵 아버지’ 암살

아크바리는 2004년에 영국 해외첩보기관인 MI 6에 포섭됐고, 가족에 대한 영국 비자 발급을 약속 받았다. 오스트리아ㆍ스페인ㆍ영국에 유령회사를 만들어서 MI 6 에서 자신을 관리하는 사람(handler)과 만났다. 영국에서 약 200만 파운드(약 33억원)를 받았다.

그는 영국에 이란의 핵 개발 정보뿐 아니라, 이란 핵개발 과학자ㆍ관료 100여 명의 신분과 활동 상황에 대한 정보도 넘겼다. 이 명단에는 ‘이란 핵의 아버지’라 불리는 모센 파크리자데도 있었다. 테헤란 남쪽 포르도 산악지대에 건축 중인 지하 군사시설물이 비밀 우라늄 농축시설이라는 것을 알려준 이도 아크바리였다. 그는 2012년에 영국 시민이 됐다.

아크바리가 이란 당국에 체포되고 1년 뒤인 2020년 11월27일 이스라엘은 테헤란 근처의 주말 집으로 직접 차를 몰고 가던 핵 과학자 모센 파크리자데를 암살했다.

파크리자데는 이란 핵의 중추적인 인물이면서도, 경호 프로토콜을 무시하고 ‘정상적인’ 삶을 살려고 애썼다.

이란 핵 아버지라 불리던 모센 파크리자데와 2020년 11월 그의 피살 현장. /자료사진

당시 암살 상황에 대해선, 길목에 AI(인공지능) 자동발사 로봇이 있었다, 폭발물이 터지고 앞에 가던 트럭에서 5,6명이 내려 파크리자데의 차에 난사(亂射)했다, 경호팀과 총격전이 벌어졌다는 등 여러 혼돈된 보도가 있었다. 분명한 것은 ‘킬러 로봇’이 있었고, 이스라엘 측 암살자 체포는 없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14년이 넘도록 파크리자데를 암살하려고 수차례 시도했었다.

◇러시아의 귀띔

아크바리는 2008년 공직에서 물러났고, 그해 말 처음으로 영국 첩자 의심을 받고 4개월간 구금됐다. 그러나 보석으로 풀려났고, 사건은 종결됐다. 다시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었고, 2010~2019년 세 차례 런던과 테헤란을 오갔다. 이란 정부 관리들은 계속 아크바리에게 조언을 구했고, 정책과 핵 협상에 대한 비공개 회의에 참석해 달라고 요청했다.

아크바리는 2019년에 알리 샴카니 이란 최고국가안보회의 의장의 요청을 받아 다시 이란을 방문했다. 국방ㆍ핵관련 문제에서 그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러나 도착 며칠 뒤에 그는 체포됐다. 이란은 어느 시점에선가 포르도 우라늄 농축 시설을 서방에 알린 범인이 아크바리인 것을 알았다. 러시아 정보부가 그의 정체를 이란에 알렸다.

2023년 1월 16일 제임스 클레벌리 영국 외무장관이 영국 의회에서 이란 정부의 알리레자 아크바리의 처형과 관련해 답변하고 있다./로이터 뉴스1

그는 왜 조국을 배신했을까. 이란 국영 TV가 아크바리가 처형된 뒤 공개한 신문 영상에선 그는 “탐욕과 권력에 이끌렸다”고 자백했다. 그러나 가족들은 강요된 허위 자백이라고 주장했다. 그가 왜 서방에 자국의 비밀 핵개발 프로그램을 알렸는지는 불분명하다.

이란 정부는 가족들에게도 아크바리의 체포 사실에 대해 함구하도록 했다. 또 영국 MI 6의 담당자를 속일 목적으로, 감금 중에도 아크바리에게 MI 6가 제공한 컴퓨터에 정기적으로 로그인하도록 했다.

이란은 수 개월에 걸쳐 반정부 시위가 계속되던 지난 1월, 갑자기 그동안 체포 사실도 알리지 않았던 아크바리 전 국방 차관의 간첩 혐의를 공개했다. 그리고 며칠 뒤, 교수형을 집행했다. 그의 시신은 가족도 모르게, 테헤란 외곽의 거대한 묘지에 묻혔다. 가족은 NYT에, 당국은 이슬람 의식에 따라 아크바리의 몸을 씻고 준비하는 영상만 보여줬다고 말했다.

사망 40일이 지나, 아크바리 가족은 이란 정부로부터 ‘추도식을 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가족은 모스크의 방 하나를 빌려서 아크바리가 이슬람 공화국을 위해 일했던 40년간 맺었던 친구, 동료들의 긴 행렬을 맞을 준비를 했다. 그러나 아무도 오지 않았다. 가족뿐이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