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현지 시각) 아프가니스탄 여성 운동가들이 수도 카불에서 열린 시위에서 현수막을 들고 있다. 이들은 아프간 여성을 위한 음식과 직업, 교육 등을 요구했다./EPA 연합뉴스

여성 인권 탄압으로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는 탈레반이 오는 3월부터 아프가니스탄 여학생들이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23일(현지 시각) 아프간 톨로 뉴스 등 외신에 따르면, 탈레반 정부는 오는 3월 21일부터 아프간의 모든 남녀 학생들에게 학교를 개방하겠다고 밝혔다. 3월 21일은 이슬람 헤지라 태양력에 따라 새해가 시작하는 날이다.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거리의 벽에 ‘일, 밥, 자유’라는 글귀가 파슈툰어와 영어로 쓰여 있다. 거리 시위 참가자에 대한 탈레반의 무자비한 폭력 탄압을 피해 아프간 여성들은 밤에 몰래 ‘담벼락 구호’를 적는 방식으로 저항하고 있다./아프간 톨로 뉴스 유튜브

이번 결정에 따라 작년 8월 탈레반 재집권 이후 학교에 다니지 못한 7~12학년 여학생들이 등교할 수 있게 됐다. 현재 아프간 34주(州) 중 10곳가량을 제외한 지역에서 중·고등 여학생들이 공립학교에 다니고 있지 못하다고 AP통신은 전했다.

미국 아프간특사를 맡은 토머스 웨스트는 최근 BBC 인터뷰에서 “탈레반이 여학생에게도 학교를 개방한다면, 미국과 국제사회가 교사들의 급료를 낼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탈레반 정부 관계자는 이번 결정이 국제사회 압박과는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16일(현지 시각)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여성 시위대가 여성 인권을 촉구하며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아프간 집권 세력인 탈레반은 이날 '여성의 인권', '자유, 교육·취업 권리' 등의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시위에 나선 여성들에게 최루액을 뿌렸다. 시위에 참여했다가 최루액을 맞은 일부 여성은 병원으로 옮겨지기도 했다./AFP 연합뉴스

탈레반은 작년 8월 아프간을 재탈환하며 “아프간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교육이나 경제활동 등 여러 방면에서 여성의 자유가 탄압되고 있음이 속속 나타나 국제사회로부터 비판을 받아 왔다. 작년 11월 탈레반은 아프간 여성의 드라마 출연을 금지하는 미디어 지침을 발표했다. 한 달 뒤인 12월 친척 남성의 동행 없이 여성의 72㎞ 이상 장거리 여행을 제한하는 조치가 나왔다. 거리 시위 등 반발에 나선 여성들을 상대로는 최루액을 뿌리는 등 제압에 나섰다.

국제사회 비판이 잇따르자, 탈레반은 여성 인권을 챙기겠다고 밝혀 왔다. 에나물라 사망가니 탈레반 부대변인은 “아프간 여성들에게 교육과 노동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방법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은 지난 15일 AP통신 인터뷰에서 “3월 21일부터 전국의 모든 여학생에게 학교를 개방할 수 있길 바란다”며 “다만 남녀 학생들은 학교 안에서 완전하게 분리되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