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 연합뉴스

방위비 증액을 위해 세금을 더 걷기로 해 ‘증세(增稅) 안경’이라는 별명이 붙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에게 ‘제니게바’(돈을 위해선 뭐든 하는 사람)라는 악의적인 별명이 추가됐다. 특히 일본 정부가 이스라엘에서 자국민을 대피시키는 과정에서 항공료를 받은 것이, 일본인도 무료로 수송한 한국 정부와 대비되면서 비판 여론이 커지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선 기시다 정권의 지지율이 출범 3년 차 최저 수준인 20~30%대까지 떨어져, 22일 국회의원 보궐선거 2곳에서 여당인 자민당이 야당 연합에 패배할 경우 기시다의 장기 집권 시나리오가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16일 일본 온라인 매체들은 “‘증세 안경’인 기시다에게 네티즌들이 다음 별명으로 ‘제니게바 안경’을 붙였다”고 보도했다. ‘안경’은 안경을 낀 기시다 총리를 가리킨다. 네티즌들은 기시다가 증세 정책을 편다는 것을 조롱하는 말로 ‘증세 안경’을 별명으로 만들고, 기시다를 야유할 때 쓰고 있다. 방위비를 늘리기 위해 법인세, 소득세 등 증세를 추진하는 것에 반발하는 표현이다. 일본 지지통신에 따르면 기시다가 지난 14일 일본 남부 도쿠시마현에서 참의원 보궐선거 자민당 후보 지원 유세를 할 때 한 남성이 “증세 안경”이라고 외치다가 쫓겨났다.

기시다를 일컫는 말로 이번에 추가된 ‘제니게바’는 일본어로 돈을 뜻하는 ‘제니(錢)’에다 독일어로 폭력 행위(Gewalt·게발트)를 일본식으로 부르는 ‘게바루트’를 합친 말이다. 몹시 가난했던 주인공이 돈을 위해서라면 살인도 서슴지 않는 배금주의자(拜金主義者)로 등장하는 동명(同名) 만화에서 유래했다.

이번에 일본 정부가 이스라엘에서 자국민을 대피시킬 때 보여준 모습에 실망한 이들이 제니게바를 기시다의 별명으로 붙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4일 밤 일본은 이스라엘로 전세기를 보냈는데,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로 자국민을 대피시키는 이 항공편을 1인당 3만엔(약 27만원) 유료로 운영했다. 이는 하루 앞서 한국 정부가 군 수송기를 이스라엘로 보내 자국민뿐만 아니라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일본인 51명도 태우고 온 것과 비교되면서, “국민 생명을 위해 쓰는 돈도 아까워한다”며 기시다에게 실망하는 일본인들이 늘었다는 것이다.

3만엔을 받는 일본의 두바이행 철수 비행기에는 일본인 8명만 탑승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는 아직도 약 1000명의 일본인이 남아 있다. 일본 소셜미디어 등에는 “제니게바 정부로는 안 된다. 한국이 자국민을 대피시키는 비행기에 일본인도 공짜라고 타다니 부끄럽다” “제니게바 안경, 다른 나라(우크라이나 등) 돕는다고 혈세를 아무렇지도 않게 쓰지만 말고 자국민한테도 써라” 같은 글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래픽=백형선

이날 아사히신문은 “14~15일 여론조사에서 내각 지지율은 전월 37%에서 큰 폭으로 하락한 29%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기시다 정권 출범 이후 역대 최저 지지율이다. 특히 ‘기시다 내각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60%에 달했다. 이 신문은 “2012년 자민당이 재집권한 이래, 3대로 이어진 정권(아베·스가·기시다) 가운데 가장 높은 불(不)지지율”이라고 보도했다. 기시다 총리를 신뢰하느냐는 질문에도 ‘신뢰할 수 없다’(62%)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같은 날 발표한 요미우리신문의 여론조사에서도 기시다 내각 지지율은 34%로, 지난달 조사보다 1%포인트 하락해 정권 출범 후 최저를 기록했다. 마이니치신문, 교도통신, 지지통신의 지지율 조사에서도 각각 25%, 32%, 26%를 기록해 모두 정권 출범 후 최저치를 경신했다.

지지율 하락 배경엔 경제 문제가 있다. 지난해 9월부터 12개월 연속으로 소비자물가가 3% 이상 오르면서 서민들의 생활을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40여년만에 가장 높은 물가 상승률이다. 그럼에도 기시다 정권이 예산 확보 계획은 정하지도 않은 채, 방위비 증강이나 인구 감소 대책 등에 연이어 수십조원 규모 지출 계획을 발표하자 반감이 커지고 있다. 결국 막대한 증세로 이어질 것이란 인식이 일본인들 사이에 팽배하다.

당장 22일 치러지는 나가사키 선거구(중의원)와 도쿠시마·고치 선거구(참의원) 보궐선거도 예상 밖 접전인 상황이다. 본래 이곳은 모두 자민당이 강세인 지역으로 낙승이 예상됐지만, “나가사키는 자민당 후보가 다소 우세하고 도쿠시마는 야당 계열 후보가 한발 앞서는 중”(요미우리신문)인 상황이다. 일본 외교가 한 관계자는 “한 곳만 야당에 뺏겨도 자민당으로선 패배로 봐야 하는 보궐선거”라며 “고(高)물가는 기시다 정권이 즉각적인 대책을 세우기 어려운 만큼, 당장 지지율 반등을 기대하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제니게바

제니게바

1970년 발간된 일본의 만화 제목으로, 돈을 뜻하는 ‘제니(錢)’에다 독일어 ‘게발트(Gewalt·폭력 행위)’의 일본식 표기 ‘게바루트’를 합친 말이다. 만화는 가난한 주인공이 돈에 집착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악행을 저지르는 주인공에 빗대, 자국민에게 쓰는 돈을 아까워한다고 비판하는 의미로 ‘제니게바’가 기시다 일본 총리 별명으로 오르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