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후 일본 도쿄 하라주쿠역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의 다케시타 골목. 한 라면 가게 앞에 세워진 간판에 여름 메뉴 토마토 라면 그림과 함께 ‘진차 우마이(チンチャうまい), 좃토 메푸타(ちょっとメプタ)’라는 일본어가 적혀 있었다. ‘진차 우마이’는 우리말 ‘진짜’를 일본 문자 가타카나를 소리 나는 대로 쓴 ‘진차’에 일본어로 ‘맛있다’는 뜻의 ‘우마이’를 합한 말로 ‘진짜 맛있다’는 뜻이다. ‘좃토 메푸타’는 ‘조금’이라는 뜻의 일본어 ‘좃토’에 우리말 ‘맵다’를 가타카나로 나타낸 ‘메푸타’를 더해 ‘조금 맵다’라는 의미다. 둘 다 한국어를 섞어 쓴 일본어로 메뉴를 설명한 것이다. 이 라면 가게는 도쿄, 오사카 등에 있는 지점 16곳에서 여름 메뉴를 이렇게 광고하고 있다.

한국 드라마와 케이팝 등 한류 콘텐츠가 일본을 휩쓸면서 일본 10·20대를 중심으로 ‘한일 믹스어’가 확산하고 있다. 한일 믹스어는 일본어와 한국어를 섞어서 사용하는 신조어를 뜻한다. ‘아랏소데스(알았어요)’ ‘마지 고마워(정말 고마워)’ ‘진차 소레나(진짜 그럼)’ 등이다. ‘키요이(귀엽다)’ ‘데바이(대박)’ 등도 유행이다.

인터넷과 소셜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사용되던 한일 믹스어가 이제 길거리와 일상생활로도 영역을 넓히고 있다. 데즈카야마가쿠인대학의 이나가와 유키 교수는 겐다이비지니스에 “한일 믹스어의 확산은 일본에서 한국어라는 언어가 이미 대중화됐다는 의미”라며 “지금 일본의 Z세대는 드라마, 영화, 케이팝 가수의 인터뷰 등을 보며 일상의 한국어 속에서 자라고 있다”고 말했다.

전 세계 회원 5억명을 확보하고 있는 글로벌 외국어 학습 애플리케이션 듀오링고가 지난 4월 일본에서 발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일본 Z세대(15~24세)의 약 46.7%가 “평소 생활에서 자신 또는 주위 사람이 한국어 문구나 단어 등을 사용하고 있다”고 답했다. 특히 10대는 약 83.7%가 “학교 등에서 친구가 한국어 문구나 단어를 쓰고 있다”고 응답했다. 듀오링고 재팬은 “‘안녕하세요’ ‘사랑해요’ 등 기본적인 인사를 넘어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말들이 인기가 많다”며 “한국 콘텐츠가 일본인들이 매일 사용하는 말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했다. 자신이나 주위에서 자주 사용하는 한국어로는 ‘진차(진짜)’와 ‘옷톳케(어떡해)’ ‘싱기팡기(신기방기)’ 등이 꼽혔다.

한일 양국은 교류가 많고 두 나라 문법이 유사하기 때문에 그 전에도 말을 섞어 쓰는 사례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 일본에서 유행하는 한일 믹스어는 새로운 말을 만드는 방식이 이전과 다르다고 한다. 문법에 맞춰 한국어와 일본어를 번갈아 쓰는 정도를 넘어 한국어를 일본어 문법에 맞춰 형용사화하거나 동사화하는 식으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연구소가 발간한 일본연구는 “기존의 한일 믹스어는 재일 한국인이나 주한 일본인, 유학생 사이에서 사용됐기 때문에 문법 순서대로 연결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최근 유행하는 단어들은 문법 순서를 벗어난 형태를 자주 볼 수 있는데 이는 한일 믹스어가 젊은 사람들 언어로 역할이 강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