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미 워싱턴 DC 백악관의 대형 접견실 이스트룸에서 열린 국빈 만찬에서 기시다 후미오(가운데) 일본 총리가 조 바이든(왼쪽) 미 대통령의 환영에 답사하고 있다. 기시다 총리는 이날 영어로 연설하며 “당신들 모두 누구도 가보지 못한 곳으로 대담하게 가시길 바란다”라는 미 인기 TV 시리즈 ‘스타트렉’ 대사를 인용해 참석자들의 박수를 받았다. 질 바이든 여사는 이날 만찬장을 일본을 상징하는 벚꽃과 비단잉어, 부채 등으로 꾸몄다고 밝혔다. /로이터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0일 워싱턴 DC에서 가진 정상회담을 통해 미·일 군사동맹의 대대적인 업그레이드를 선언했다. 미군과 일본 자위대의 지휘·통제 연계를 강화하고 호주·영국 등 미국의 다른 동맹과의 군사 협력도 강화하기로 했다. 1969년 닐 암스트롱 이후 미국인만 밟았던 달 표면에 일본 우주인을 보내는 프로젝트도 추진한다.

바이든과 기시다는 11일 정상회담 후 열린 기자회견을 통해 “글로벌 차원의 ‘행동하는 동맹’으로 거듭나기 위한 미·일 군사 동맹 업그레이드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기시다는 “미국의 친구들과 손잡고 인도·태평양 지역과 세계의 도전들에 맞서는 길을 주도하겠다”고 했다. 미국과의 군사 협력이 중국의 패권주의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등 권위주의 진영을 의식한 조치임을 시사했다.

아오야마 루미 와세다대 아시아·태평양 대학원 교수는 닛케이신문에 “이번 미·일 공동성명은 동맹의 제도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미·일 동맹 관계를 선거 결과에 영향을 받지 않는 방향으로 진화시켰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오는 11월 미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이 혹시 당선돼 동맹 구도를 흔들려고 하더라도 동맹이 굳건히 유지될 수 있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한 측면도 있다는 뜻이다.

그래픽=김현국

◇ 주일 미군과 자위대 한몸처럼 움직인다

두 정상은 주일 미군과 자위대의 상호 운용 체제를 더욱 긴밀하게 재편하기로 했다. 주일 미군과 자위대의 지휘·통제 구조를 현대화하고, 군의 상호 운용성을 개선하겠다는 뜻이다. 이 같은 체제 개편을 통해 현재는 주한 미군(2만8500명)의 후방지원 성격이 강한 주일 미군(5만명)의 유사시 대응 전력도 대폭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미국과 일본은 주일 미군 지휘구조를 업그레이드하는 것을 포함해 국방 협력에 관한 70여 개의 협력 사항에 합의했다고 미국의소리(VOA)가 보도했다. 바이든은 “이번 양국 간 군사협력 강화는 (1960년) 미·일 동맹이 체결된 뒤 가장 중요한 업그레이드”라고 했다.

두 정상은 기자회견에서 중국 견제 메시지를 잇따라 쏟아냈다. 대만해협·남중국해·동중국해에서 인접국과 영해·영토 분쟁을 벌이는 중국을 겨냥하겠다는 뜻을 숨기지 않았다. 바이든은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포함한 일본 전역에 대한 방위 공약에 흔들림이 없다”고 했다. 센카쿠열도는 2012년 일본의 국유화 선언 이후 중·일이 영유권 분쟁을 빚고 있는 지역이다. 미국은 이곳이 미국의 일본 방위 의무를 규정한 ‘미·일 안보 조약 5조’에 따른 보호 대상임을 분명히 했다.

기시다는 “미국과의 단단한 신뢰 관계 아래 중국이 대국(大國)으로 책임을 다하도록 계속 촉구하겠다”고 했다. 바이든과 기시다는 11일 중국과 심각한 해상 영유권 분쟁이 있는 필리핀과 사상 첫 3자 정상회의를 갖고 대중국 경고메시지를 재차 낼 전망이다.


◇ 미·일 동맹과 오커스, 사실상 연계

백악관은 이날 “(미국과의 무기) 공동 개발과 생산을 촉진하고 역내 (군사적) 억지력을 향상시키는 최근 일본의 ‘방위 장비 이전 3원칙’ 완화를 환영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 ‘방위산업 협력·획득·지원에 관한 포럼(DICAS)’을 신설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양국 간 미사일을 공동 개발·생산하고 미 군함과 항공모함을 일본이 보수하고 4세대 전투기를 일본에서 생산하는 등의 협력 강화를 DICAS를 통해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일본은 무기 수출 제한 규정을 담은 ‘방위 장비 이전 3원칙’을 조금씩 완화하는 방식으로 무기 수출을 최근 확대해 왔다.

아울러 미·일 동맹을 오커스(AUKUS, 미국·영국·호주의 안보동맹)와 연계함으로써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일본의 역할 확대가 예상된다. 앞서 오커스는 일본이 인공지능(AI), 자율 시스템 등 첨단 기술에 초점을 맞춘 ‘필러(pillar·기둥) 2′에 참여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고 발표했다.

한편 일본이 북·일 정상회담을 위해 고위급 접촉을 타진 중인 가운데 바이든은 이날 “북한과 대화를 시작하는 동맹들의 기회를 환영한다. 북한과 대화를 추구하는 것은 좋은 일이고 긍정적인 일”이라고 했다. 북한이 응답하지 않고 있지만 ‘전제 조건 없이 언제든 대화에 응할 수 있다’는 게 바이든 정부의 대북 정책 기조다. 이런 가운데 바이든이 “일본을 믿고 기시다 총리를 믿는다”며 일본의 대북 대화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바이든은 이날 공식 환영 행사에서 “지난해 기시다 총리는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모든 상처를 치유하고 우정의 새로운 장을 시작하기로 결정하면서 역대 가장 대담한 발걸음을 내디뎠다”며 한·미·일 삼각 동맹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 미국인만 밟은 달 표면, 일본인도 보내나

이날 미·일의 협력은 군사·안보 외에도 우주, 기후변화, 경제, 청정에너지, 인적 교류 등 다양한 분야를 망라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미 항공우주국(NASA)의 유인 달 탐사 프로젝트인 ‘아르테미스’ 계획에 일본인 우주 비행사 2명이 참여하기로 한 것이다. 바이든과 기시다는 공동 성명에서 “일본인 우주 비행사가 미국인을 제외하고 처음으로 달에 착륙하는 것이 우리 공통의 목표”라고 했다. 양국은 이날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달 표면 탐사를 위한 협정’에 서명했다.

이 계획에 따라 일본은 유인 월면 탐사차 ‘루나 크루저’를 개발해 제공하기로 했고, 이르면 2028년쯤 일본인의 달 착륙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NHK는 “지금까지 인류가 달에 착륙한 것은 미국인이 착륙한 사례뿐이다. 미국인 이외로서는 처음으로 일본인의 달 착륙이 실현되면, 일본 우주 탐사의 새로운 한 걸음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 우주 협력 프로젝트인 아르테미스 계획엔 한국·프랑스·캐나다·브라질 등 35국이 참여하고 있지만 ‘달 방문’이라는 특권은 일본에 먼저 부여한 셈이다.

한편 미국과 일본은 반도체와 AI, 에너지 등 첨단 기술과 공급망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 양국 기업이 1억1000만달러(약 1500억원)를 출연해 여러 대학이 AI 기술을 공동 개발하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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